아스트라 흔들린 사이…'러시아 백신' 사려 줄선 나라들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 2021.02.1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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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측, 지난달 말에는 '스푸트니크V' 유럽의약품청에 등록 신청도

사진=AFP사진=AFP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 개발 성공을 선언했지만 안정성에 의심을 받던 러시아 백신 '스푸트니크V'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저명한 국제 학술지에 91.6%의 코로나 예방 효과가 있었다는 연구가 실리면서다. 20개 넘는 나라가 이미 스푸트니크V 긴급 승인을 허가했고 유럽에서도 승인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V라는 이름의 코로나19 백신 성공을 선언했다. 임상시험에 돌입한 지 2개월도 안돼 나온 결과에 의료계는 의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러시아가 백신 효과보다 백신 개발 경쟁에서 첫 테이프를 끊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분위기가 바뀐 건 지난 3일 세계적인 의학저널 랜싯에 스푸트니크V 백신의 코로나19 예방효과가 91.6%에 달했다는 3상 임상결과가 실리면서다. 스푸트니크V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마찬가지로 아데노바이러스 벡터 기반의 백신이지만 예방효과에선 60% 수준인 아스트레제네카를 능가한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의 95%에 육박하지만 초저온 보관 대신 일반 냉장 보관이 가능하며 2회 접종 비용도 약 20달러로 저렴하다.

스푸트니크V 개발을 지원한 국부펀드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의 키릴 드미트리예프는 "러시아 백신이 분수령의 순간을 맞이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각국에서는 스푸트니크V를 공수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 주간지 포천은 "세계 각국이 스푸트니크V를 확보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면서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헝가리를 포함해 멕시코, 아르헨티나, 이란, 몽골, 파키스탄 등 20여개국이 스푸트니크V의 긴급사용을 이미 승인했다고 전했다.

효과를 의심하던 서방 국가에서도 스푸트니크V를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3일 "오늘 러시아산 백신에 대한 좋은 자료를 읽었다. 모든 백신은 EU에서 환영받을 것"이라며 러시아 백신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탈리아의 감염병 전문가 프란체스코 바이아 소장도 현지 언론을 통해 당국이 스푸트니크V 사용을 조속히 승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RDIF는 지난달 29일 EU의 의약품 승인당국인 유럽의약품청(EMA)에 백신 등록 신청서를 내고 세계보건기구(WHO)가 주도하는 국제 백신 공동구매 프로젝트 '코백스 퍼실리티'의 백신 목록에 스푸트니크V를 포함시키기 위해 협상을 진행하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포천은 세계가 백신 확보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막대한 사회적·경제적 피해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가운데 "러시아가 냉전 시대 이후 가장 큰 과학적 성과를 올림에 따라 외교적 배당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셉 보렐 EU 외교안보담당 고위대표는 지난 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의 구금을 항의하기 위해 5일 모스크바를 찾았을 때 스푸트니크V 개발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포천은 전했다.

컨설팅회사 컨트롤리스크의 옥사나 안토넨코 이사는 "스푸트니크V가 서방 정부에서 푸틴에 대한 적대적 정서를 바꿀 순 없겠지만 백신 경쟁에서 밀려난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 러시아의 지정학적 위상을 강화해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두 달 안에 스푸트니크V 2400만도스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한 푸틴 대통령에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는가 하면 루이스 아르세 볼리비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스푸트니크V를 맞이하러 직접 라파스 국제공항을 찾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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