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vs 인간’, 대결이 아닌 친구라고 말하다

최영균(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2.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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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공포 덜어주고 친근감 형성해줘

사진출처=방송캡처 사진출처=방송캡처


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이하 ‘AI vs 인간’)은 눈에 띄는 기획이다.

AI, 인공지능은 2016년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가 압승하는 모습을 통해 ‘복잡한 영역에서는 아직 인간에게 부족하다’는 세간의 인식을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공포감마저 안기면서 주요한 관심사가 됐다. 이후 바둑 외의 다양한 분야로 AI의 급속한 발전상이 확장되면서 인간의 삶에 AI가 미칠 영향은 계속 주목을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노래, 골프, 심리 인식, 주식 등의 분야에서 인간 최고수와 AI가 펼치는 대결을 다뤄보는 프로그램인 ‘AI vs 인간’은 매회 흥미진진한 결과들을 보여주고 있다. 박세리 김상중과 대결을 펼친 골프 편에서는 AI가 2:1로 승리를 거뒀다.

테러범을 찾는 대결을 벌인 심리 인식 편에서는 표정, 행동 등에서 부정 감정을 측정, 위험인물을 실시간으로 탐지하는 AI가 등장해 권일용 프로파일러와 무승부를 기록했다. 6일 방송에서는 100만 원을 70억으로 만든 전설의 슈퍼개미 마하세븐과 AI가 주식 투자 수익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주식 대결에서는 결국 인간이 승리하기는 했지만 초반 AI가 크게 앞서나가는 모습으로 긴장감을 높이기도 했다. 이외에 목소리에서 범인의 몽타주를 그려내기, 그리고 트로트 작곡 대결도 결과 공개를 남겨놓고 있다.

앞선 대결에 비해 첫 회로 방송된 노래 편에서는 승부가 쉽게 갈렸다. 옥주현이 부른 ‘야생화’를 AI도 옥주현 목소리와 창법으로 얼마나 잘 부르는지 판정단의 판결을 받아봤는데 45:8로 압도적으로 인간이 이겼다. 사실 이 경우는 대결이라 부르기가 좀 애매했다. AI가 옥주현의 노래를 얼마나 비슷하게 따라잡을 수 있을지를 따져보는 쪽에 가까웠다.

사진출처=방송캡처 사진출처=방송캡처

그래서 어쩌면 대결보다는 AI가 세상을 떠난 가수의 노래를 얼마나 흡사하게 현재에 되살려 내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 더 인상적이었다. 세상을 떠난 김광석이 사후 등장한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부르고 역시 고인인 록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한국노래 ‘야생화’를 부르는 순간 유사함과 자연스러움이 예상 이상으로 정교해진 AI의 기술력은 놀라웠다.

프로그램 마지막에 다시 등장한 김광석이 역시 생전에는 없던 노래 ‘편지’를 들려주는 AI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지금까지 추억은 김광석이 실재했던 순간들에만 근거해 되살려졌지만 AI는 김광석을 사후 현존하는 대상들과 연결시켜 추억하는 방법을 확장시키고 현재의 우리들에게 친근하면서도 신선하게 부활시켜줬다.

이런 AI라는 기술의 따뜻함은 MBC에서 방송된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시즌2’의 VR(가상현실) 기술과도 맞닿아있는 듯하다. 세상을 떠난 가족을 과학 기술을 통해 다시 만나게 해주는 ‘너를 만났다 시즌2’의 VR 역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AI와 VR은 상상으로밖에 만날 수 없는 그리움의 대상들을 실재하는 현실로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노래의 경우나, VR의 되살려진 고인의 모습과 행동에는 아직 어색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상당한 정도로 마음을 움직일 만한 완성도를 보여줬다.

‘AI vs 인간’은 대결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AI가 인간의 친구임을 깨닫게 해주고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고 있다. 알파고의 충격으로 디스토피아적인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인간이 AI의 지배를 받거나 AI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을 갖는 이들도 상당해진 상황에서 AI가 인간을 챙기고 돕는, 온기 있는 기술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진출처=방송캡처 사진출처=방송캡처
심리 인식이나 몽타주 작성 대결에서도 AI는 승부의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공포의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위협하는 테러범을 가려내는 기술로 인간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한편으로는 ‘AI vs 인간’는 AI가 아직 허술한 구석이 있고 발전할 여지가 많은 점을 보여줘서 친근하게 만들기도 한다. 골프 대결의 AI 엘드릭이 평지의 미국과 달리 산속의 한국 골프장의 바람에 적응 못해 인간에 비해 훨씬 힘들어하는 모습처럼 아직 완벽하지 못한 AI 기술은 발전에 동행할 마음을 인간이 갖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1회 노래 편에서 AI 개발자들이 ‘AI를 잡아내는 AI 기술도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AI가 인간보다 더 인간스러운 모습과 퍼포먼스로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덜어줬다. 결국 ‘AI vs 인간’은 대결을 외치지만 둘은 동반할 만한 대상임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사실 AI는 이미 외면하기 힘들 정도로 인간의 삶에 가깝게 존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AI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해소시킬 필요가 있다. ‘AI vs 인간’은 AI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사람들이 AI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챙겨 볼 가치가 있다. 대결의 재미는 덤이다.

최영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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