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새우깡 신화' 신춘호 농심회장, 56년 만에 현역 은퇴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2021.02.0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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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 사진제공=농심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 사진제공=농심


농심그룹의 창업주 신춘호 회장(90)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고령의 나이에 더 이상 경영에 관여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회장직을 이어받을 전망이다.

5일 농심은 다음달 25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의 등기이사 재선임 안건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신 회장이 빠진 자리는 이영진 부사장이 새롭게 합류한다. 신 회장의 임기는 다음달 16일까지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은 56년간 이어온 등기이사직을 내려놓게 된다. 1932년생인 신 회장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얼마전까지도 회사에 자주 출근해 굵직한 결정에 관여해왔다. 현재 신 회장은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고 있지만 건강은 양호한 것으로 전해진다.

농심2014리뉴얼신라면 / 사진제공=오승주농심2014리뉴얼신라면 / 사진제공=오승주
농심예전새우깡 / 사진제공=오승주농심예전새우깡 / 사진제공=오승주
라면의 신(辛), '깡' 신드롬의 모태
신 회장은 '라면의 신'이라 불릴만큼 입지적 성과를 올린 인물이다. 1965년 롯데공업을 설립하고 라면사업에 첫 발을 내딛은 뒤 1980년대 들어 연이은 히트작을 내놨다. 너구리, 안성탕면, 짜파게티, 신라면은 이 때 탄생한 효자 상품들이다. 이들 상품의 매출은 지금의 농심을 지탱하는 든든한 자금줄이 됐다.



특히 신라면은 신 회장을 상징하는 상품이다. 자신의 성을 딴 네이밍 뿐 아니라 농심이 수십년간 라면업계 1위를 수성하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100여개가 넘는 국가에서 팔리고 있다.

신 회장을 수식하는 또 다른 말은 '작명의 달인'이다. 성공한 라면 이름 뿐 아니라 '새우깡', '백산수' 등 농심 제품 대부분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특히 새우깡은 막내딸의 발음에서 착안해 아이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깡을 붙여 시리즈로 만들었다고 한다. 최근 깡 신드롬이 분 것도 이런 네이밍이 작용했다.

그는 소비자에게 상품이 어떻게 인식되느냐가 제품의 성패를 가늠하는 핵심으로 보고 관련 사안을 직접 챙기기도 했다. '너구리 한마리 몰고 가세요'나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같은 광고 카피가 대표적인 그의 아이디어다. 신 회장이 이런 부분까지 살뜰히 챙기다보니 농심의 광고제작을 주력으로 하는 농심기획 대표 자리는 내부에서는 가장 힘든 자리로 인식되곤 했다.


업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워낙 마케팅에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 농심의 광고 기획 실무자들의 고충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이런 배경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한 것 아니겠나"라고 평가했다.

22일 오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콘서트홀에서 엄수된 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영결식에서 헌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22일 오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콘서트홀에서 엄수된 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영결식에서 헌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풀지 못한 형 '신격호'와의 앙금
사업으로는 승승장구한 신 회장이지만 형과의 갈등은 끝내 풀지 못했다. 신 회장은 지난해 작고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신 회장이 형과 갈라선 계기는 지금의 농심을 있게 한 라면사업 때문이었다. 신 회장은 일본에서 신 명예회장을 돕다 국내에서 라면사업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형에게 전했다. 이 때 신 명예회장은 "아직 이르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신 회장이 고집을 꺾지 않자 신 명예회장은 "롯데 사명을 쓰지말라"고 엄포를 놨고, 결국 롯데공업은 지금의 농심으로 사명이 바뀌게 됐다. 이를 계기로 왕래를 끊었고 제사도 따로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월 신 명예회장이 작고하면서 신 회장의 조문 여부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고령이었지만 건강에 이상이 없어 극적 화해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었다. 하지만 신 회장은 끝내 빈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 회장의 장남 신동원 농심 부회장과 차남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이 빈소를 지켰지만 신 회장은 형과의 앙금을 마지막에도 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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