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숙의 의미를 모르는 Mnet의 오디션 프로 재개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2.0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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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s Planet 999' 통해 글로벌 아이돌 그룹 결성

사진제공=Mnet사진제공=Mnet


Mnet이 아이돌 오디션에 다시 뛰어들었다. Mnet은 지난달 새로운 글로벌 프로젝트 ‘Girls Planet 999(이하 걸스 플래닛)’ 개최 소식과 하께 지원자 모집을 공고했다. 올해 안 방송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걸스 플래닛’은 IT기업 NC소프트와 함께 한국과 중국, 일본의 참가자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다. 장차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를 결정한 아이돌 그룹이 탄생할 예정이고, 그 안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 시청자 및 온라인 투표에 나서는 네티즌들의 성원이 따를 것이다.

물론 방송사가 아이돌 오디션을 제작한 일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Mnet이 아이돌 오디션을 다시 한다는 소식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그들에게는 아직 ‘프로듀스’ 시리즈의 조작 파문이 남겨놓은 상처가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막을 내렸던 Mnet ‘프로듀스X101’은 데뷔조를 구성하고 방송이 끝난 이후 네티즌들로부터 참가자 투표수 사이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의혹은 커졌고 경찰의 수사가 진행됐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조작에 제작진이 참여한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메인 연출자인 안준영PD를 비롯해 김용범CP에게 1심에서 실형이 내려졌고 지난해 말 선고된 2심에서도 이들의 실형은 바뀌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각

시즌별 ‘프로듀스’ 시리즈에서 피해를 입은 연습생의 이름이 거명됐다. Mnet을 소유하고 있는 CJ ENM에서는 대오각성하겠다며 시청자위원회 구성, 음악산업 활성화 기금 출연, 피해자 보상 등을 골자로 한 대책도 내놨다. 그렇게 조작 오디션 파문이 일어난 지 이제 막 1년, Mnet은 다시 아이돌 오디션에 손을 대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CJ ENM은 약속대로 케이블채널로는 이례적으로 시청자위원회를 만들었고, 253억원 규모의 음악펀드를 출자했다. 그리고 공정성과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도 자제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은 것도 많다. 아직 프로그램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보상이 다 이뤄지지 않았으며 ‘캡틴’ ‘포커스’ 등 모양만 달리한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도 계속됐다. 심지어 ‘캡틴’의 경우에는 투표에 부자연스러운 흐름이 발견돼 제작진이 관련 데이터를 반영하지 않는 조치를 취했다. n.CH엔터테인먼트와 공동으로 참여한 프로젝트로 데뷔한 그룹 TOO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업무를 종료하는 갑질논란도 일으켰다.

1년이라는 시간을 결과적으로 엠넷, 즉 CJ ENM이 제대로 된 오디션 프로그램을 운영할 주체로 거듭나는데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던 셈이다. 물리적으로도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아직 채 보완되지 못한 문제점을 남겼다. 그러나 이 모든 부조리는 새로운 글로벌 오디션이라는 조명의 뒤 켠 어둠으로 다시 사라질 상황에 처했다.

사진제공=Mnet사진제공=Mnet

Mnet은 전통적으로 오디션의 명가로 불렸다. 음악채널로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겸해 제작하던 모습은 2009년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가 나오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대국민 오디션이라는 틀에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으면서 급격하게 대중음악계는 오디션 광풍에 빠져들었다. 많은 유망주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를 노렸으며 각 방송사에는 우후죽순격으로 대국민 오디션이 설립됐다. 그 흐름은 한 때는 록이었고, 한 때는 힙합이었다.

대국민 오디션이라는 틀의 시한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Mnet은 아이돌 분야로 눈을 돌렸다. 2016년 시작된 ‘프로듀스 101’ 첫 시즌이 신호탄이었다. 대국민 오디션, 경쟁이라는 장치는 남겨둔 채로 일반 참가자보다 훨씬 사연이 많고 가수 데뷔에 절박한 아이돌 가수 연습생들을 자양분으로 삼았다. 훨씬 상향된 실력과 경쟁 그리고 공고한 팬덤의 기반 위에 ‘프로듀스’ 시리즈는 고속성장을 했다. 이후 ‘아이돌학교’ ‘아이랜드(I-LAND)’ 등 비슷한 유형이 등장했다.

아이돌 오디션의 성공은 Mnet에게 단순한 시청률이나 문자투표로서 가지는 수익이 아닌 산업의 기반을 쥐고 흔드는 힘을 줬다. 방송사가 가수를 기획하고 연습시켜 데뷔시키고, 방송을 통해 홍보한 다음 음반을 내고 콘서트를 열며 세계를 도는 유통의 줄기를 모두 가지게 된 것이다. CJ ENM은 시작부터 갖고 있던 방송의 권한에 공연과 음반 관련 사업에까지 영향력을 확장했고, 마침내 중소기획사에서 아이돌 가수 자원들을 위탁받아 기획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줄기가 주는 수익은 단순한 시청률이나 100억~200억원의 수익으로 비교할 수 없다. K팝의 시작부터 끝을 모두 갖게 된 것이다.

프로그램은 나왔다 없어질 수 있지만 음악 생태계를 가진 힘은 영원하다. Mnet이 꿈꿨던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계속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필요했던 것이고, 비판과 비난이 있어도 이 형식을 포기할 수 없는 셈이다.
지금 Mnet을 향하고 있는 많은 의구심과 비판은 막상 오디션이 시작되면 출연자들의 매력과 프로그램의 긴장감에 의해 상당부분 희석되고 말 것이다. 지금까지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우려했던 많은 시선 역시 그러했다.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인 제작진이 있는 채널의 오디션 도전은 1년의 자숙으로는 한참 멀어 보인다. Mnet은 지금 자신들이 음악산업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을 어느 정도 가중시켰는지 제대로 판단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코로나19로 방송이나 공연, 음악계는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역시 이를 타개할 방법은 스타들의 출연이며 대중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이 산업의 토대가 비위와 부정으로 얼룩진 부끄러운 잔해라면 스타는 있으나 마나다. ‘프로듀스’ 시리즈에서 이름만 바꾼 Mnet의 새로운 오디션 프로그램, 그 도전에 아직은 박수를 보내줄 수 없는 이유다.

신윤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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