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서울상공회의소 회장단 정기회의를 마친 뒤,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상의 회장단은 이날 최태원 SK 회장을 차기 서울상의 회장으로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두산그룹 총수로서 처음 대한상의 회장을 맡았던 박 회장은 두산그룹 총수에서 물러난 후에도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두산 이사회 의장 등의 업무를 함께 했다. 거기에 가톨릭수도회 봉사단체 회장까지 서너 가지 일을 동시에 해왔고, 이번 상의 후임자 추대로 큰 짐을 덜었다.
박 회장은 2일 상의회관에서 열린 '샌드박스 2주년 성과보고회'에서 "상의 회장 7년여 동안 가장 성과가 많은 일을 꼽는다면, ‘샌드박스’가 그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규제샌드박스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시켜주는 제도다.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신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의 열쇠 역할을 하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해 8월 취임 7주년의 소회를 묻는 상의 직원의 질문에 "내가 (7주년을) 돌아봐야 뭐하나, 자네가 돌아보고 말해줘!"라고 평가를 유보했지만, 이날 '샌드박스 보고회'에선 '샌드박스'의 성과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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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최근 후임 회장이 규제샌드박스 만큼은 잘 이어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도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M16 준공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D램 제품을 주로 생산하게 될 M16은 축구장 8개에 해당하는 5만 7000㎡(1만7000여평)의 건축면적에 길이 336m, 폭 163m, 높이는 아파트 37층에 달하는 105m로 조성됐다. SK하이닉스가 국내외에 보유한 생산 시설 중 최대 규모다./사진제공=SK하이닉스
박 회장은 2700여일 동안 전세계를 다니며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활동을 하고, 국회를 20여차례 방문해 경영계 목소리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주제를 던졌지만, 그 중에서도 핵심적으로 신경을 썼던 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규제완화였고 그 결실이 '규제샌드박스'였다.
세계 최초 민간 샌드박스 지원기구인 '대한상의 지원센터'가 출범한 후 9개월간 223건의 규제과제를 접수해 '자율주행' 등 91개 혁신사업자의 시장 진출을 지원했다. 민관이 평균 매일 1건의 혁신을 지원해 매주 2.5건을 시장에 내놓은 것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규제샌드박스 외에 박 회장이 최 회장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으로 리더로서의 균형감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올 초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이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로 리더의 조건을 설명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평소 "재계 2~3세들의 경우 주변에서 싫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보니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특히 우리 사회의 상대적 약자에 대한 균형감을 강조하곤 했다. 쪽방촌 도시락 봉사나 노총위원장과의 호프데이 등 적극적인 교류를 통한 화합의 길을 열어가는 것이 균형감의 시발점이라는 것.
최태원 SK회장(오른쪽)과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지난달 29일 경북 포항시 남구 송도동 솔밭에 있는 한 식당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확산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소외계층을 위해 도시락 포장 봉사활동을 마친 후 유니폼을 바꿔입고 있다./사진제공=뉴스1
이런 측면에서 최태원 회장이 SK에서 16년간 이어온 도시락 나눔 행사에 더해 지난 1월부터 시작한 온(溫)택트 프로젝트는 좋은 균형감을 갖춘 리더의 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영세식당에 도시락을 주문해 끼니를 거르는 취약계층을 돕는 상생 모델이다.
오는 3월 24일 대한상의 총회에서 박 회장이 2773일간(만 7년 7개월 3일) 맡고 있던 대한상의 회장직을 내려놓으면, 최 회장은 제24대 회장으로서 재계를 대표해 정부, 노동계와의 조정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최 회장도 이제 SK 회장과 대한상의 회장의 두 가지 직업을 갖게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