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장은 지난 19일 두 자녀를 포함한 친인척에게 1452억원을 증여했습니다. 증여로 김 의장의 카카오 지분율은 14.20%에서 13.74%로 줄었지만 여전히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5조원을 훌쩍 넘깁니다.
잘 다니던 삼성 때려치고 PC방 창업…'온라인 게임'의 가능성 엿보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 사진=임성균 기자 tjdrbs23@
1998년 대한민국은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한창이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인기에 힘입어 PC방도 우후죽순 생겼습니다. 김 의장은 여기서 '엉뚱한' 사업 기회를 엿봅니다. 대학을 재수로 들어간 보상심리 때문에 당구장에 살다시피 했던 김 의장은 PC방에서 가능성을 보고 잘 다니던 삼성을 퇴사합니다.
한양대 앞에 '미션 넘버원'이라는 이름의 PC방을 차린 김 의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시 PC방은 수기로 손님을 관리했습니다. 김 의장은 카운터에 앉아 이용 시간과 요금을 관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PC방 사장님들에게 팝니다. 이때 번 돈으로 김 의장은 한게임까지 창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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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창업한 한게임은 PC방 열풍과 함께 승승장구를 거듭합니다. 2000년에는 삼성 입사 동기였던 네이버의 이해진 의장과 한게임을 합병합니다. 바둑, 테트리스 등 웹보드게임 인기를 바탕으로 초기 네이버도 빠른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2009년 NHN 대표직 내려놓고, 미국행…아이폰 출시에 영감 받아
카카오게임즈가 코스닥상장 / 사진=한국거래소 제공
혁신적인 스마트폰의 출시는 김 의장을 다시 움직이게 만듭니다. 2009년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던 김 의장은 다시 가족에게 "출근 좀 해야겠다"고 말하고 카카오톡 출시를 준비합니다. 향후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에 스마트폰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한 것입니다.
카카오톡은 무료 메시지 전송으로 빠른 인기를 얻었습니다. 문자메시지 과금에 지친 소비자들이 당시 카카오톡을 쓰기 위해 스마트폰을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갑작스럽게 몰린 이용자에 속도가 느려지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2011년 '겁나 빠른 황소 프로젝트'로 다시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이후 카카오톡은 2013년 누적 가입자 1억명을 돌파할 정도로 승승장구합니다. 국내 2위 포털사이트인 다음과 합병, 택시, 은행 서비스를 출시하는 등 카카오의 성장에는 브레이크가 없었습니다. 재벌 2세도 아닌 김 의장은 국내 주식부자 10위 안에 드는 신화를 썼습니다.
김범수 의장의 성공 비결? 관점의 이동과 멈추지 않는 도전 정신
김 의장은 움직임의 근거로 '관점의 이동'을 강조했습니다. A라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발 앞서 사건 B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김 의장은 인터넷이 등장하자 온라인 게임에 뛰어들었습니다. 아이폰이 나오자 김 의장은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에 스마트폰이 있을 거라고 예견했습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선 시점을 김 의장은 '6개월'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김 의장은 2009년 NHN을 떠나며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구절을 남겼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는 이들에게 김 의장이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마치 '캐리비안 해적'의 잭 스패로우 선장 같은 도전 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