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사진=머니투데이DB
해방 1년이 지난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하면서 건설업의 잠재력에 눈떴다. 이듬해 현대건설의 전신 '현대토건사'를 설립, 이를 기반으로 6.25 전후 복구사업을 수행하면서 한국 경제사 전면에 등장했다. 이후 자동차와 중공업, 전자 등 국가 기간산업분야에 과감히 진출했고 명실공히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주역 기업인 중 한명으로 올라섰다.
왕회장의 바로 아랫 동생인 고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은 1920년생으로 2006년 타계했다. 1951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해 1961~1976년 현대건설 (33,250원 0.00%) 사장을 맡아 맏형과 함께 그룹의 초석을 다졌다.
1976년 현대건설 사장직 내놓고 퇴사해 중공업 중심의 '한라 (2,015원 ▲5 +0.25%)그룹'을 창업했으며 시멘트와 건설, 조선소, 제지, 중장비 등 생산 계열사를 잇따라 설립해 한 때 한라를 재계 12위 그룹으로 키우기도 했다.
범 현대가 1세대 중 3남인 고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은 2005년 83세 일기로 별세했다. 1970년 현대건설 부사장까지 올랐고 이후 현대건설에서 떨어져 나온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았다. 이를 모태로 성우그룹을 키웠는데 1987년에 자동차 부품회사 성우오토모티브를, 1995년에 성우종합레저를 설립했다.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사진=머니투데이DB
1957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큰 형의 일을 돕다 1967년 현대차 (237,000원 ▼7,000 -2.87%)를 설립한 뒤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자동차 외길 인생이 시작됐는데 1968년 현대차 1호차인 코티나를, 1974년 국내 최초 고유모델 '포니'를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1999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으로 취임해 건설인으로 제 2의 인생을 걸었다.
왕 회장의 여동생 고 정희영 여사는 1925년생으로 지난 2015년 타계했다. 남편은 고 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이다.
한편 범 현대가 1세대 중 5남 신영씨는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다 1962년 30대 초반 이른 나이에 독일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외아들이 현재 정몽혁 현대코퍼레이션그룹 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