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이들을 다시 한번…AI에 휴머니즘 입히다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1.2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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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났다' '다시 한번' , TV의 미래를 보여주다

사진출처=MBC '너를 만났다' 방송캡처 사진출처=MBC '너를 만났다' 방송캡처


지난 21일 MBC에서는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의 두 번째 시즌 첫 화를 방송했다. 지난해 2월 혈액암으로 딸을 잃었던 엄마의 사연을 공개했던 방송에 이어 거의 1년 만이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함께 다섯 자녀를 뒀지만 아내를 사별한 남편이 등장했다. 꿈에서라도 한 번만 보고 싶은 그 얼굴이 완벽한 기술로 깨어날 때 시청자의 눈시울은 그것이 기술인지 실제인지를 판별하게 앞서 젖어들었다. 이러한 설정으로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상 TV 다큐멘터리부문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지난해에는 잊혔던 두 사람의 목소리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엠넷의 프로그램 ‘AI 음악 프로젝트 다시 한 번’에서는 2008년에 고인이 된 혼성그룹 거북이의 터틀맨(임성훈)과 1990년 세상을 떠난 가수 김현식을 되살렸다. 제작진은 두 사람의 생전 음성파일과 사진, 동영상 등 소스를 취합해 이를 가상현실(VR)의 형태로 부활시켰다. 단순히 예전에 불렀던 노래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의 학습능력을 통해 새로운 노래에 도전했다. 개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노래를 선보이자 고인의 유족과 팬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4차산업’으로 대표되는 여러분야들이 경계를 넘어 방송으로 찾아오고 있다. 가장 앞선 것은 AI다. ‘너를 만났다’와 ‘다시 한 번’ 등의 프로그램은 VR이나 AI로 대표되는 첨단기술을 통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새로운 모습을 소개하면서 감동을 주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눈앞에서 살아난다는 설정 자체가 이들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시청자들의 마음에도 울림을 준다.

사진출처=Mnet '다시 한번' 방송 캡처 사진출처=Mnet '다시 한번' 방송 캡처
SBS는 29일부터 AI와 인간이 대결한다는 컨셉트인 예능 ‘세기의 대결! AI 대 인간’도 편성했다. 앞서 밝힌 음성학습 AI 기술을 통해 이미 세상에 없는 가수가 새로운 노래에 도전하고 기존 가수를 모창하기도 한다. 이미 고인이 된 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한국어로 노래를 한다. 또한 골프선수 박세리와 골프대결을 펼치고, 주식투자의 귀재와 투자대결을 펼친다. 2016년 펼쳐져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이 더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한 모습이다.

AI 기술은 이미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음원사이트를 이용할 때 사용자가 자주 듣는 노래의 장르를 학습해 큐레이션을 해주는 서비스가 이에 기반하고 있고, 수많은 모빌리티 역시 자율주행의 단계다. 또한 가정에서도 사물인터넷(IoT)와 연결된 가전이나 전기기기들이 알아서 움직인다. 이만큼 생활에 들어온 AI를 방송가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것도 어불성설로 여겨질 정도다.

제작진은 AI라는 어감에서 느껴질 수 있는 인공적이고 차가운 느낌을 훌륭한 연출을 통해 상쇄하고 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구현됐지만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사실 세상에 없는 소중한 가족의 얼굴이라면, 또는 꼭 한 번 더 듣고 싶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라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이 상상을 이뤄주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흥미위주의 접근을 배제하고 사람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접근하는 모습이 AI 예능에 대한 반감을 부쩍 줄여주고 있다.

사진출처=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사진출처=SBS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
AI 프로그램은 다양한 플랫폼에 그 자리를 뺏기고 있는 TV가 그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다. AI 예능은 ‘너를 만났다’나 ‘다시 한 번’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그 기획과 제작에 있어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지금처럼 짧은 기획과 저렴한 제작비로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영상 콘텐츠와는 차이가 있다. TV가 이러한 숏폼 콘텐츠들과 차별화를 하려면 결국 고급기술과 정교한 기획 밖에는 방법이 없는데 AI 예능은 이 변별점을 확실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비용과 제작기간 문제만 조금씩 해결한다면 TV가 더욱 경쟁력 있는 플랫폼으로서 다시 서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미러’의 단편 ‘돌아올게’에는 이와 비슷한 설정이 진행된다. 하지만 막판에 결국 고인의 만들어진 모습에 과하게 몰입한 주인공은 스스로 불행한 선택에 내몰리고 만다. AI로 이러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에게도 이러한 고민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출연자가 마음의 큰 상처를 입지 않을지,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길이 힘들지 않을지 살필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이러한 기획이 너무 우후죽순격으로 진행돼 출연자들을 단순한 시청률의 도구로 인식하는 상황도 배제해야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대도 변했고, 기술이 인간으로 향하는 방식도 변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인간이 기술을 통제할 수 있었지만 앞의 사례들은 기술이 한 인간의 감정을 송두리째 사로잡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선이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더욱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가 있어야 함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신윤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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