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반도체 부족의 실체…반도체 전쟁 다시 시작될까?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01.2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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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

TSMC의 12인치 팹 내부 모습./사진제공=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 Ltd.)TSMC의 12인치 팹 내부 모습./사진제공=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 Ltd.)


일부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부족을 두고, 자동차 업계는 물론 반도체 시장에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전반적인 반도체 공급부족의 전조가 아니냐는 걱정 때문이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자동차 강국 정부까지 나서 대만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rporation)에 더 많은 차량용 반도체를 요구하고 있다.

업체는 업체대로 파운드리 시장에서 공급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추가 투자에도 고삐를 죄고 있지만, 이마저 사정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5나노와 7나노미터(nm) 등 미세회로 공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네덜란드 ASML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의 공급이 제한적이어서 생산능력(캐파)을 늘리려고 해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현재 시스템LSI에만 사용하고 있는 EUV 장비가 2022년이면 D램에도 적용될 것으로 예상돼 장비 부족현상으로 향후 반도체 공급부족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당장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현상은 일시적일 수 있지만, 향후 반도체 시장의 흐름으로 볼 때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에 대비해 캐파 확장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반도체이야기 블로그. /출처=삼성전자 반도체이야기 블로그.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 이유는=자동차에는 약 2000개의 반도체 부품이 들어가는데 여기에 쓰이는 반도체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운전보조장치에 들어가는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 첨단 운전자 지원시스템)나 MCU(Micro Controller Unit) 등 자동차의 안전운행을 위해 특화된 제품들이 그 첫번째다.

이들 차선이탈방지센서나 거리유지 센서 등의 부품들은 고성능의 첨단 회로공정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다. 현재 25~45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의 오래된 공정 기술을 적용한다. 삼성전자나 TSMC의 200mm 구형 팹(생산공장)에서 생산 가능한 것들이다.

이에 비해 스마트폰용 첨단기술을 자동차용으로 전환해 탑재하는 스마트카용 AI(인공지능) 칩이나 자율주행칩 등 첨단 반도체의 경우는 5나노나 7나노 등의 초미세회로 공정이 적용되는 것들이다. 이는 EUV 생산라인을 갖춘 삼성전자나 TSMC 등 두 회사만이 전세계에서 양산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자동차용 반도체의 경우 네덜란드 NXP반도체, 일본 르네사스나 미국 TI, 독일 인피니언 등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이들이 자체 생산하는 것 외에는 TSMC에 위탁생산을 하는데 이 회사의 캐파(생산능력)가 부족해 공급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기업 A사 관계자는 "이번 차량용 반도체의 공급 부족현상은 첨단공정이 필요하지 않은 부품들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TSMC의 경우 전체 생산 제품 중 자동차 부품이 차지하는 것이 4%에 불과해 수익성 측면에서 자동차용 반도체가 우선순위에서 밀려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도 "뉴스를 통해 일부 완성차 업체들이 반도체 부품 조달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만 어느 회사가 어느 정도의 어려움을 겪는지 구체적으로 전해지는 게 없다"면서 "우리는 현재 생산에 문제가 없다는 정도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이로 볼 때 현재 파운드를 맡길 일부 차량용 반도체의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지만, 자동차 업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는 달리 반도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풀이된다.

2021년 글로벌 파운드리 매출전망(단위: 백만US달러)/자료출처: 대만 트렌드포스(TrendForce)2021년 글로벌 파운드리 매출전망(단위: 백만US달러)/자료출처: 대만 트렌드포스(TrendForce)
◇절대 부족한 파운드리 생산능력=전세계 파운드리 반도체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한 TSMC의 생산능력은 300mm 웨이퍼 기준 110만장 정도다. TSMC는 300mm(12인치) 라인 4개와 200mm(8인치) 4개, 150mm(6인치) 라인 1개 등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 20나노, 40나노, 60나노 공정도 적용되고 있으며, 60나노 이상 공정이 80만장 가량(약 73%)으로 아직도 오래된 기술들이 사용되고 있다. 첨단 공정인 5나노와 7나노 공정은 월 4만장 내외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 정도로 낮다.

TSMC가 밝힌 것처럼 이 회사의 매출 가운데 자동차용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4% 정도로 미미하다. 따라서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이 전체 반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과거 PC나 스마트폰 시대와 달리 자율주행과 AI, 빅데이터 시대에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 필요한 반도체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파운드리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말 대만 시장조사업체인 트렌드포스는 '파운드리 시장 전망' 자료에서 지난해 23.7% 성장하며 사상 최대의 매출(846억달러)을 올렸던 파운드리 시장이 올해도 6% 가까운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코로나19의 불확실성의 지속으로 재택근무를 위한 네트워크 제품 수요 증가가 지속되고, 글로벌경제가 2021년 반등해 스마트폰, 서버, 노트북, TV, 자동차 시장 등이 2~9%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결과 지난해 파운드리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올해 파운드리 시장은 6% 추가 성장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TSMC의 12인치 팹인 라인 18의 외부 전경/자료제공=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 Ltd.)TSMC의 12인치 팹인 라인 18의 외부 전경/자료제공=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 Ltd.)
◇TSMC vs 삼성전자 나노 기술경쟁 승자는?=반도체의 미세회로 기술경쟁은 원래 미국 인텔과 삼성전자, TSMC의 경쟁이었다. 어느새 주도권을 뺏긴 인텔은 경쟁에서 밀려나고 삼성전자와 TSMC의 기술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미세회로 공정 기술에선 삼성전자와 TSMC가 5, 7나노 기술로 치열한 선두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시장확보 측면에선 '파운드리' 비즈니스를 개척하고, 노하우를 익혀온 TSMC가 월등히 앞선다.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전체의 54%가 TSMC 몫일 정도로 절대적이다. 넘버2인 삼성전자는 17%로 TSMC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3위권은 대만 UMC와 미국 글로벌파운드리가 각각 7%씩을 차지하고 있다.

2020년과 2021년(예상) 파운드리 업체별 시장점유율/자료출처: 대만 트렌드포스(TrendForce)2020년과 2021년(예상) 파운드리 업체별 시장점유율/자료출처: 대만 트렌드포스(TrendForce)
TSMC는 기존 200mm 라인을 유지하면서 캐파가 더 필요할 경우 300mm 라인을 신규로 건설해 감가상각이 끝난 200mm 라인에서의 수익성이 월등하다. 영업이익률이 40%를 넘어서는 이유도 첨단 기술력도 있지만 감가상각이 끝난 노후 팹에서의 꾸준하게 생산하고 있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공정을 업그레이드 할 때는 기존 팹을 셧다운하고, 새 팹을 짓는 방식을 택해 올드팹이 많지 않다. 현재 올드팹인 200mm 라인에서 20만장 정도의 웨이퍼를 가공하고 있지만 TSMC의 올드팹의 규모에는 미치지 못한다.

TSMC는 2018년 4월 7나노 기술을 상용화해 수십개의 고객들의 제품 수백가지를 주문받아 10억개 이상의 부품을 생산했다.

고객으로는 애플과 엔비디아 등에 AI와 데이터 센터, 고급 운전자 지원 시스템, 고성능 컴퓨팅, 5G 통신, 스마트폰용 칩을 공급하고 있다. TSMC는 지난해 5nm 공정을 양산했고, 2022년에는 3nm의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10월 7나노 대비 전력 소비량을 최대 20% 절감하고 성능이 최대 10% 향상된 5나노 EUV 공정을 적용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 2100 칩을 양산했다.

이를 최근 출시한 갤럭시21을 포함한 갤럭시 시리즈 제품과 중국 비보의 5G 폰 등에 공급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4나노 파일럿 라인을 가동하고, 내년에는 3나노 양산을 계획하는 등 TSMC와의 파운드리 경쟁에 고삐를 죄고 있다.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인 트윈스캔 'NXE-3400C'. 이 장비 1대 가격이 2000억원 가량 된다. /사진제공=ASML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인 트윈스캔 'NXE-3400C'. 이 장비 1대 가격이 2000억원 가량 된다. /사진제공=ASML
◇관건은 ASML의 EUV 확보=이처럼 삼성전자와 TSMC가 첨단 기술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정작 두 회사의 명운을 쥔 곳은 따로 있다. 10나노 이하 미세회로 공정의 핵심 장비인 EUV 노광기를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이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EUV 노광기를 생산하는 ASML은 지난해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확대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지난 20일 2020회계연도 실적을 발표한 이 회사의 매출은 직전 해보다 18.6% 늘어난 140억유로(약 18조7000억원), 순이익은 38.5% 늘어난 36억 유로(약 4조8000억원)다.

이 가운데 대당 가격이 2000억원 내외(주변장치 포함시 3000억 내외)인 EUV 노광기는 31대(45억 유로: 대당 1억 4516만 유로)를 판매했다. 업계에서는 EUV 장비의 절반을 TSMC가 나머지 절반을 삼성전자와 인텔이 나눠 가져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ASML의 노광기 종류별 및 지역별 판매현황 /사진제공=ASMLASML의 노광기 종류별 및 지역별 판매현황 /사진제공=ASML
한 외국계 증권사의 반도체 전문 애널리스트는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월 300mm 웨이퍼 1만장 생산 기준으로 1조 2000억원 정도가, 로직의 경우 1만장당 2조원 이상의 시설투자비가 든다"며 "올해 TSMC가 30조원 가량을 투입하기로 한 것은 월 15만장 양산 기준 라인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30조원을 EUV 공정에만 투자할 경우 30대 정도의 EUV 장비가 필요하다. 내년에 ASML이 생산할 장비(40대)의 75% 가량을 TSMC가 독차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세회로 공정이 진화할수록 EUV 장비 투입 규모가 늘어나 첨단기술로 갈수록 ASML에 대한 의존도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일례로 7나노의 경우 EUV 장비 1대로 월 5000장의 300mm 웨이퍼를 가공해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으며, 5나노는 3500장을 커버할 수 있고, 4나노는 2000장으로 줄어든다. 회로공정이 미세해질수록 공정의 회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장비가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ASML이 올해 EUV 생산량을 지난해 31대에서 30%를 늘려 40대를 생산하더라도 필요한 수요를 충족하기 힘든 이유다.

특히 2022년부터는 시스템LSI 뿐만 아니라 D램에도 10나노 이하 공정에 EUV 장비를 써야 해서 노광기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업체 B사 관계자는 "누가 EUV 장비를 더 많이 확보하느냐가 시장에서 지배력을 넓힐 수 있는 핵심키다"며 "올해와 내년에는 삼성전자, 인텔, TSMC 등이 ASML의 문턱이 닳도록 찾아갈 듯하다"고 평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두번째)이 지난 1월 4일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 EUV(극자외선) 전용라인을 점검하고 있다./사진제공=삼성전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두번째)이 지난 1월 4일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 EUV(극자외선) 전용라인을 점검하고 있다./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에 대한 냉정한 평가=과거 인텔이나 삼성전자 (82,400원 ▲1,600 +1.98%)와 같은 종합반도체 회사(IDM)는 TSMC와 같은 파운드리 업체를 하청업체 정도로 인식했다. 자체 설계 기술 없이 돈 받고 남의 설계대로 칩을 생산해주는 위탁생산업체쯤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시스템LSI의 경우 D램이나 낸드플래시의 미세회로 공정보다 떨어지는 기술을 사용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PC와 노트북에 제한됐던 IT 업계의 패러다임이 모바일과 클라우드 컴퓨팅, AI와 자율주행 등으로 바뀌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반도체 설계회사는 넘쳐나는데 전문생산업체는 제한되면서 생산 전문기업의 가치가 높아졌다. 이제는 설계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생산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진입장벽이 높아지면서 미세회로 공정기술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는 '승자독식 현상'이 나타났고, 그 중심에 TSMC가 서게 됐다. TSMC(약 749조원)가 세계 1위 반도체 업체인 인텔(약 249조원)보다 시가총액이 높아진 이유다.

반도체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D램이나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기술과 달리 로직(logic) 반도체 설계는 또 다른 과정이다"며 "그 분야의 오랜 노하우를 가진 기업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TSMC와 삼성전자가 비슷한 수준의 미세회로 공정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수율 등에서 TSMC가 '한발' 앞선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앞선 기술투자와 패스트 팔로어로써 총력전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TSMC에 공격적 투자로 선전포고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분야에 공격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며, "현재 어드반스드 노드는 TSMC와 삼성전자 밖에 없기 때문에 팹리스 업체들은 둘 중 한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TSMC도 생산량을 한꺼번에 대규모로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반면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와 달리 파운드리 사업은 수주산업이어서 주문 없이 생산시설을 무한정 늘릴 수 없는 한계도 있다"며 "선발 업체가 치킨게임을 하듯 베팅을 했을 때 여기에 배포 좋게 따라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올해 TSMC의 공격적인 파운드리 투자에 삼성전자가 맞대응에 나서 치킨 게임이 진행될지 주목된다.

한편 삼성전자나 TSMC보다는 미세회로 공정에서는 뒤지지만 SK하이닉스 (183,000원 ▲4,800 +2.69%)의 파운드리 자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시스템IC)와 DB하이텍 (43,250원 ▼650 -1.48%)도 현재 파운드리 산업의 호황으로 생산라인을 풀가동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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