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판결 확정' 연쇄효과…'합병의혹' 삼성물산에 빨간불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임찬영 기자 2021.01.2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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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 '1대 0.35에 배신감' 일성신약, 합병비율 재산정 사건서 유리해질 듯…'합병무효'까진 안 갈듯

이재용 부회장./ 사진=뉴스1이재용 부회장./ 사진=뉴스1


이재용 부회장 구속 판결 확정의 여파가 삼성물산 합병을 둘러산 민사사건까지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성신약이 제기한 합병비율 재산정 사건, 합병무효 청구 사건이 삼성물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성신약 회장, 1:0.35에 심한 배신감…'합병무효' 소송 제기
25일 이 부회장은 변호인을 통해 재상고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변호인은 "이 부회장은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에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재상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냈다. 징역 2년6개월 형량이 가볍긴 하지만 상고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현행법 상 형량이 너무 가볍다거나 무겁다는 양형 상의 이유만으로는 대법원에 상고할 수 없다.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 확정은 현재 법원에서 진행 중인 불법 경영권승계 의혹 재판, 일성신약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재판에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일성신약이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제기한 민사사건은 주식매수가격 결정 사건과 합병무효 확인 사건 2개다.

윤병강 일성신약 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과의 오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옛 삼성물산에 장기투자를 해 2.11% 지분을 확보하고 있었다. 고 이건희 회장(1.37%)보다 도 많았다.



2014년 12월 제일모직 상장으로 합병설이 나돌자 윤 회장은 김신 당시 삼성물산 사장, 이영호 부사장과의 골프모임에서 "삼성물산에 손해가 가지 않는 한도에서 합병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2개월 뒤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 1:0.35 합병비율을 발표했고, 윤 회장은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게 산정된 것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일성신약은 합병을 결정하는 주주총회에서 반대 표와 함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삼성이 제안한 매수가격 5만7234원은 너무 낮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원에 적정한 가격을 산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주식매수청구가격과 합병비율은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매수가를 다시 산정해달라는 말은 합병비율이 공정한지 살펴봐달라는 말이기도 하다.

주식매수청구가 재산정 사건 1심에서 패하자 일성신약은 합병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주식매수청구가 사건 2심에서 매수청구가격을 최소 6만6602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결정을 받아냈다. 2심 재판부는 "옛 삼성물산의 실적부진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됐을 수 있다는 의심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며 당시 주가를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합병무효 소송 1심에서는 일성신약이 패소했다. 현재 주식매수가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합병 무효소송은 2심 심리가 진행 중이다.

'불법승계' 재판서 불리해진 이재용 부회장
이달 선고된 박근혜 전 대통령 뇌물 사건 재판에서 이 부회장은 경영권승계 작업은 존재하지도, 추진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됨에 따라 '이 부회장의 '경영권승계 작업은 실재했고, 이를 빌미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부정청탁을 주고받았다'는 검찰의 청사진은 완성됐다.

이는 별도로 진행 중인 이 부회장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재판은 박 전 대통령 뇌물 재판과 궤를 같이 한다. 뇌물 재판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최서원씨(옛 이름 최순실씨) 모녀의 승마훈련 지원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재판은 삼성 내부에서 벌어진 일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재판에서 검찰은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비율을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뽑아내기 위한 주가조작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뇌물 사건 재판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경영권승계 작업은 없었다는 삼성 측 주장은 힘을 잃게 된다.

주식매수청구가격 사건서 지면 삼성물산 '막대한 책임' 불가피
현재 검찰은 미전실에서 주가를 관리했음을 입증할 만한 자료 상당수를 확보했다며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연루됐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주가관리 혐의가 유죄로 판단된다면, 일성신약이 제기한 주식매수청구가격 사건에서 삼성물산이 더욱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이 사건에서 패한다면 삼성물산은 막대한 액수를 부담해야 한다. 적정 주식매수청구가격은 6만6602원이라는 2심 결정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일성신약에만 약 310억원을 물어줘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합병무효 소송에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1심은 일성신약에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주가조작 행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었다. 만약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재판에서 주가조작 행위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합병비율은 조작이므로 무효라는 일성신약 쪽 주장이 힘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그렇다 해도 삼성물산 합병을 무효화하는 판결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상법 제189조, 제240조는 주주들이 합병무효의 사유로 제기한 문제가 뒤늦게나마 정정된 경우 그대로 합병무효 청구를 기각할 수 있는 권한을 법원에 부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법원은 이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회사의 상황을 참작해 합병무효 청구를 기각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어떤 회사든 판결로 합병이 무효가 될 경우 회사와 관련된 다수가 상당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회사의 합병을 무효화하는 것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현 삼성물산의 지위를 고려하면 일성신약의 합병무효 청구는 대법원 해석에 따라 재량기각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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