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한 정리' 미니멀리즘, 이제 쇼핑은 노잼

김수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1.1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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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방송캡처 사진출처=방송캡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비우고 나자 인생이 달라진 두 남성이 등장한다. 친구 사이인 두 사람은 가족의 암투병,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은 뒤 인생에 있어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문한다. 그것은 넓은 집, 화려한 옷, 고액 연봉도 아니었다. 과연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이 다큐의 원제는 ‘미니멀리즘, 중요한 것에 대한 다큐(Minimalism, a documentary about the important things)’이다. 즉,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비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중요한 가치를 찾고 추구하는 일련의 행위라는 것.

다큐멘터리에선 물건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에 대해 언급한다. 소비자로 하여금 내가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물건에 복종하게 하는 광고들, 뭐든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24시간 내에 배송받을 수 있는 아마존. 이처럼 우리는 빠르고, 화려한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매일 같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며 장바구니에 물건을 채운다. 내게 있지도 않은 돈으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일. 당장 1년만 지나도 지겨워질 물건을 잔뜩 쌓아놓느라 이 집이 물건의 집인지, 사람의 집인지 분간이 안 가는 일.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일이다.



필자 역시 미니멀리스트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는 요즈음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자, 내가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물건들을 이고 지고 살고 있는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쾌적하고 넓은 집에서 머물고 싶고, 그러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물건을 버리는 길뿐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입겠지, 라며 잔뜩 쌓아놓은 옷가지들. 언젠가 한 번은 읽겠지, 라며 버리지 못한 책들. 언젠가 한 번은 음식을 담겠지, 라며 찬장 가득 쟁여놓은 접시들. 이 좁은 집에 이렇게나 많은 물건이 있었나 스스로에게 놀라며 비우고, 또 버렸다.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진제공=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진제공=넷플릭스


그렇게 한 달 정도 매일 조금씩 비워나갔다. 일부는 중고 애플리케이션에 팔고, 정말 재사용 가치가 없는 일부는 미련 없이 버렸다. 그제야 필요 이상으로 꽉 차 숨을 못 쉬던 옷장 사이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찬장 안에 어떤 그릇들이 놓였는지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읽고 싶은 책만 언제든 가뿐히 꺼내 읽으며 마음의 짐을 덜었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니, 내가 어떤 물건을 좋아하고 무엇을 중요히 여기는지 알게 되었다. 더는 필요도 없는 물건을 쇼핑하며 찰나의 행복을 즐기지 않는다. 어쩌다 SNS 광고에 눈길이 머물러도 금세 스크롤을 내린다. 이 물건이 진정 필요한 것인지 열 번 이상 고민하고, 집안에 그 물건이 놓였을 때를 상상해 본다. 애써 비운 이 공간에 아무 물건이나 들일 수 없지. 물건을 소유하며 생긴 만족감의 유효기간보다, 비우며 얻은 해방감의 유효기간이 훨씬 길었다.

지난 18일 방송된 tvN ‘신박한 정리’를 보고 나서도 비움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무려 3대가 30년을 함께 한 농촌 대가족의 역대급 맥시멀리스트 살림살이에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혹한의 날씨와 곤궁한 생활, 질병의 위기에 늘 비상식량을 쟁여놓는 것이 일상이던 우리 시골 할머니가 떠올라서다. 더군다나 한국은 4계절이라 계절마다 다른 옷과 신발을 사야 하고, 계절마다 다른 생활용품들, 계절마다 다른 음식을 마련해야 하지 않나.


사진출처='신박한 정리' 방송캡처 사진출처='신박한 정리' 방송캡처
그럼에도 농촌 총각 한태웅의 집은 비움이 절실해 보였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불편한 동선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비움은 필수였다. 그렇게 제작진은 포화상태였던 이 집을 오로지 정리만으로 환골탈태시켰다. 무려 6대의 냉장고와 함께 살던 할머니가 냉장고 안을 싹 비우셨을 때는 짜릿한 희열마저 느껴졌다.

물론 미니멀리즘만이 정답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온갖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극단적 미니멀리즘은 지양하고 싶다. 미니멀리즘을 위한 미니멀리즘이 아닌, 필요최소주의를 추구하고 싶다. 내가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소유하고 이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일. 궁극적으로는 미니멀리즘을 통해 내 삶에 따뜻하고 잔잔한 바람이 깃들었으면 한다. 더는 쇼핑이 재미없다. 물건보다 ‘내’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김수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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