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는 모습. 왼쪽부터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ASML CTO, 이재용 부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피터 버닝크(Peter Wennink) ASML CEO. / 사진제공=삼성전자 제공
일각에선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을 동일시 해선 안된다"는 주장을 내놓지만, 기업의 경영 현실은 그렇지 않다. 총수 리더십의 부재는 좋지 않은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규모 투자를 수반하는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이사회 아래서 과감하게 투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주도권을 잡은 이병철 삼성 회장의 전례가 딱 그렇다.
반도체 사업을 맡고 있는 담당 사장이 결정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장(사장)이 전결로 할 수 있는 투자 규모는 3000억원에 그친다. 어지간한 중견기업의 1년 매출과 맞먹는 규모이지만 반도체 미래 투자 규모와 비교해 보면 1/100에 불과하다.
TSMC 팹 14B 전경 / 사진제공=TS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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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CEO가 현상 유지를 위한 정기 투자는 할 수 있지만, 차세대 투자 등 대규모 투자는 오너 경영자의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다"며 "이재용 부회장만이 갖는 네트워크와 브랜드가 부재하면 기업에게는 마이너스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도체 전문가는 투자의 타이밍을 강조한다. 그는 "반도체 투자는 적기에 투자하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구속 상태에서 미래에 대한 투자는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총수 부재를 비상 경영시스템으로 뚫고 가기도 쉽지 않다. 예전처럼 미래전략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장단 협의체를 만들어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것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삼성 내부 관계자는 "매우 당황스럽다"며 "예상치 못한 결과여서 앞으로 일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 눈이 내리는 가운데 AP, AFP 등 전세계 주요 언론들이 이 부회장을 비롯한 전직 삼성 고위 임원들의 출석 모습을 전 세계에게 중계했다.
팀 쿡 애플 CEO와 특허 분쟁을 벌이던 최지성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장충기 미래전략실차장을 비롯해, 폭스바겐과 BMW 등에 2차 전지 배터리를 주문 받으러 다녔던 박상진 사장 등 30~40년을 기업에 헌신했던 사람들이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재구속되거나 집행유예 형을 선고받는 모습이 전 세계에 타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