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투자" 기업들 M&A로 바쁠 때 삼성만 조용했다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21.01.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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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운명의 날']③

"미래 투자" 기업들 M&A로 바쁠 때 삼성만 조용했다


2020년은 전 세계적으로 '포스트 팬데믹'(Post Pandemic·대유행 이후)을 대비하기 위한 메가딜이 어느 해보다 많았다. 하지만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이렇다 할 인수 소식이 단 한 건도 들리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여 있다보니 미래를 위한 인수가 여의치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실제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지난 5년간 기업 인수합병(M&A)을 전혀 발표하지 못했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 M&A '역대 최대', 하지만 삼성은…
17일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체결된 인수합병 규모는 1180억달러(130조2000억원)로 역대 1년 중 가장 많았다. 코로나19(COVID-19)가 전 세계를 휩쓸었지만 반사이익을 얻은 반도체 업계는 하반기 이후 굵직한 거래들을 쏟아냈다.



이 중에는 '조(兆)' 단위가 넘는 메가딜도 만만치 않게 목격된다. 대표적으로 미국 GPU(그래픽처리장치) 제조사 엔비디아가 반도체 설계회사 ARM을 400억달러(44조원)에 인수한 것이 한 예다. 21세기 반도체시장의 M&A 중 최대 규모로 꼽힌다.

주요 국가 승인 절차만 남겨둔 이 딜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엔비디아가 얼마나 미래 준비에 힘을 쏟고 있는지 보여준다. 엔비디아는 이미 강점을 갖는 GPU는 물론 CPU(중앙처리장치)로 사업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위기감에 이 딜을 성사시켰다.



SK하이닉스가 10조원을 주고 인텔의 낸드 사업을 인수한 것도 메가딜로 꼽힌다. SK하이닉스는 주력사업인 D램에 비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낸드 부문을 꼭 키워야 한다고 판단해 사활을 걸었다는 후문이다. 이로써 SK하이닉스는 낸드 부문 시장 지위가 5위에서 2위로 껑충 뛴다.

씨티그룹 글로벌 M&A 부문 대표인 캐리 코프만은 "코로나바이러스는 CEO들이 '5년 내지 10년 후'를 계획하기 보다는 '지금 당장' 변화하도록 강요했다"며 글로벌 기업들이 그만큼 지난해 빠른 속도로 미래 대비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국내 한 재계 관계자도 "팬데믹 때문에 저가에 기업 매물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 데다 언택트와 친환경 등으로 기업들이 미래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며 "4차 산업혁명의 불확실성을 준비하려면 기업들로서는 오히려 지금이 투자하기 좋은 기회"라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지난해 이런 투자 기회를 전혀 잡지 못했다.


전기차·수소·로봇…다른 4대 기업은 투자 '잰걸음'
삼성전자는 2016년 미국 전장업체 하만을 80억달러(8조8000억원)에 인수한 이후 5년 간 제대로 된 M&A 소식을 내놓지 못했다. 스타트업 투자 사례가 간간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미래를 준비하기에는 태부족이었다. 이는 지난해 국내 4대 기업들이 공격적인 M&A에 나선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단적으로 현대차는 1조원을 들여 미국 첨단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했다.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초석이었다.

LG전자도 M&A는 아니지만 캐나다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손잡고 1조원을 투자해 전기차 파워트레인 분야 합작법인을 설립한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LG전자는 2018년 1조원을 투입해 오스트리아 차량용 프리미엄 헤드램프 기업 ZKW를 인수한 것에 이어 이 딜로 전장 사업을 더욱 가속화 할 수 있게 됐다.

SK그룹도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 인수 외에 바이오기업 로이반트에 2200억원 투자했고, 미국 수소기업 플러그파워 지분을 1조6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미래 성장동력 마련에 어느 때보다 치중했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코로나 격변기는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시장을 선점하는 M&A를 하기에 중요한 시기였다"며 "그러나 삼성전자는 오너의 사법 리스크로 과감한 의사결정을 사실상 못하면서 상당한 시간을 흘려보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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