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삼성공장. /박닌(베트남)=김창현 기자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 A사 대표 김모씨의 전언이다. A사는 2000년대 초반 중국에 공장을 지었다가 10년만에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이미 중국에 투자한 돈을 생각하면 이전을 결정하기 쉽지 않았지만 베트남의 조건이 워낙 좋았다.
◇베트남, 과감한 稅감면·빠른 인허가 등 장점
현대차 인도 첸나이공장에서 직원들이 차량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베트남 하이퐁에서 사업을 하는 또 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는 "당장은 인건비 수준도 매력적이지만 저임금 노동력을 무한정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인은 없다"며 "인건비 자체보다 베트남 정부에서 기업하기 좋도록 도와주는 분위기가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은 해외 기업의 현지 투자에 대해 법인세를 면제해준다. 한국에선 두세 달 넘게 걸리는 인허가도 1주일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정부가 공장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이 시각 인기 뉴스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10대 그룹 계열사 임원은 "기업이 직원들에게 임금을 주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굳이 세금을 걷지 않더라도 남는 장사라는 게 베트남 정부의 판단"이라며 "정부 정책이 이런 기조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국가인데도 기업하기가 훨씬 좋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거치며 기업유치 눈떠…'당근' 흔드는 나라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가 2020년 10월20일 베트남 총리공관에서 협력 방안 논의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미국 앨라배마주 현대차 공장. /사진제공=현대차
중국에 이어 아시아의 경제대국을 꿈꾸는 인도도 이맘때부터 철도 같은 인프라부터 보험·유통 등 서비스업까지 개방하면서 해외기업 유치에 나섰다. 인도 정부는 2~3년 전부터 중국에서 빠져나오는 전 세계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현지 생산량을 목표 수준까지 달성할 경우 매출 증가분의 4~6%를 인센티브로 제공하는 생산연계인센티브(PLI) 정책도 펴고 있다.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19년 수석부회장 시절 미국 조지아 기아차 공장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기아차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초기 삼성전자 (77,600원 ▼2,000 -2.51%)와 LG전자 (91,200원 ▼1,400 -1.51%), 현대차 (235,000원 ▲4,000 +1.73%) 등 우리 기업에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면서 현지 공장 건설을 압박한 것도 기업 유치 정책의 일환이다.
더 나은 시장과 입지를 찾는 것은 기업의 본능이다. 세계 시장을 상대로 장사하는 글로벌 기업일수록 더 그렇다.
◇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생산법인(HMMA)의 프레스 공장 생산성이 2009년 경영컨설팅업체 올리버 와이먼의 조사(하버리포트)에서 토요타·혼다 등 글로벌 메이커를 제치고 북미 최고에 올랐다. 왼쪽부터 미쉘 힐 하버리포트 부사장, 존 루씨 하버리포트 파트너, 현대차 앨라배마 직원, 김회일 현대차 앨라배마 법인장이 당시 수상 트로피를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IT가 발달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한국도 글로벌 기업이 R&D(연구개발)센터로 탐낼 만한 조건을 갖췄다"며 "정부가 민간과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으로 손발을 맞춘다면 우리도 충분히 기업 유치의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현대차 공장 부지 717만㎡가 '1달러'…도시 운명 바꾼 기업유치전
월스트리트저널이 2009년 칼럼에서 현대차의 미국시장 돌풍을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
2005년 당시 14억달러를 투자해 연간 30만대 생산능력을 갖춘 완성차 공장의 입주는 이 소도시에 상전벽해의 변화를 몰고 왔다. 현대차 생산공장이 채용한 직원만 3000여명에 달했고 현대모비스 등 동반 진출한 협력사 직원까지 더하면 1만명 이상의 신규 고용이 이뤄졌다. 당시 현대차 직원 모집에만 2만명 이상이 몰렸다. 현대차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인구가 계속 유입되면서 몽고메리는 항구도시인 모빌을 제치고 앨라배마주 제2 도시로 부상했다.
자동차 산업에 의존했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가 포드와 크라이슬러, GM(제너럴모터스) 등 완성차 기업들의 잇단 이탈로 '유령 도시'로 전락하는 동안 앨라배마주는 남동부주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은 '모터시티'로 거듭났다. 제대로 된 기업 하나만 끌어와도 도시 전체의 스카이라인이 바뀐다는 것을 간파한 주정부 정책이 이끌어낸 변화다.
◇美앨라배마 '현대차 유치' 위해 법까지 바꿔
당시 주지사와 주정부 관계자들은 현대차 한국 본사까지 찾아와 기업 유치를 시도했다. 2005년 공장 준공식에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저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 주정부는 현대차 공장 준공 이후 주소를 한국의 현대차 울산공장 번지수와 같은 '700번지'로 배정했다. 현지인들은 이 길을 '현대길'이라고 부른다.
◇파격 세금 감면으로 기업 유치 사활
생산공장이 있는 앨라배마주로 옮겨가려던 현대차 디트로이트 기술센터도 12년 동안 세금 2200만달러(240억원)를 깎아주는 조건으로 이전을 무마시켰다. 미시간 주정부는 일본 토요타자동차에도 당시 1000만달러의 세제 혜택을 내세워 연구소를 유치했다.
파격적인 혜택을 쏟아내며 기업 유치에 올인하는 사례를 두고 당시 한국 재계에선 "평소 콧대 높은 미국이 맞나 싶다"는 말까지 나왔다.
◇한국은 제대로 된 입주 데이터 비교 시스템도 없어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한국 기업들 사이에선 50개 주의 투자 정보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하나만 봐도 한국과는 차이가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역별 입지 조건과 투자 혜택을 비교하려면 한국에선 각 지방자치단체나 관련 기관의 홈페이지를 일일이 찾아서 하나씩 확인해야 한다.
재계 한 인사는 "기업 유치 혜택이라고 하면 베트남이나 동남아처럼 우리보다 뒤처진 나라를 떠올리기 쉬운데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기업 하나를 유치하기 위해 법을 개정할 정도로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재계 인사는 "일목요연한 투자정보시스템 하나 구축하지 못한 채 특혜 시비와 규제 우선주의로 일관하는 한국의 아마추어 행정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멀었다"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