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에게 수출사업 공짜로 넘긴 KPX…과징금 16억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2021.01.1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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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2020.12.16. mangusta@newsis.com[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2020.12.16. [email protected]


중견 화학그룹 KPX가 총수 장남이 소유한 회사에 수출 영업권을 무상 제공하는 방식으로 부당 지원한 사실이 밝혀졌다. 총수 장남 소유 회사는 이를 바탕으로 그룹 지주회사 지분을 매입, 경영권 승계 발판을 마련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KPX 계열사 진양산업과 씨케이엔터프라이즈 간 부당지원을 적발해 과징금 총 16억3500만원을 부과했다고 10일 밝혔다.



진양산업은 스폰지 제조에 필요한 원부자재를 국내에서 매입, 이윤을 더해 베트남 현지법인 비나폼(진양산업이 100% 지분 보유)에 수출해왔다. 비나폼은 진양산업에서 수입한 원부자재로 스폰지를 생산해 베트남 현지의 한국 신발제조업체(창신, 태광실업 등)에 납품한다.

그런데 진양산업은 2012년 4월부터 비나폼에 수출하던 원부자재 중 폴리프로필렌글리콜(PPG) 물량 일부를 씨케이엔터프라이즈에 이관하기 시작한다. 씨케이엔터프라이즈는 KPX 그룹 총수(양규모 KPX홀딩스 회장)의 장남(양준영 KPX홀딩스 부회장)이 지분 88%를 보유하는 등 총수 일가가 지분 100%를 갖고 있는 부동산임대회사다. 진양산업은 2015년 8월부터는 모든 PPG 수출 물량을 씨케이엔터프라이즈에 이관했다.



이런 PPG 수출 물량 이관은 두 회사에서 동시에 임원을 맡고 있던 직원에 의해 결정됐고, 관련한 계약이나 상응하는 대가 지급은 없었다. 공정위는 진양산업이 PPG 수출 영업권을 씨케이엔터프라이즈에 무상 양도한 것이며, 이에 따른 지원금액은 총 36억77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2019년 말 기준 기업집단 KPX 지분도/사진=공정거래위원회2019년 말 기준 기업집단 KPX 지분도/사진=공정거래위원회
이런 부당 지원을 통해 씨케이엔터프라이즈는 사업 기반, 재무 상태를 대폭 강화했다. 2011년 씨케이엔터프라이즈의 매출은 부동산임대업에서 발생한 3억2700만원에 불과했지만, PPG 수출 물량이 이관되기 시작한 2012년부터는 종전의 12~22배에 달하는 매출이 PPG 수출 거래에서 발생했다. 연평균 영업이익은 부당 지원이 이뤄지기 전인 2007~2011년 7700만원이었지만, 2012~2019년에는 14억600만원으로 18배 이상 증가했다.

충분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한 씨케이엔터프라이즈는 해당 수익을 KPX 그룹 지주회사인 KPX홀딩스 지분 확보에 활용, 총수 장남의 경영권 승계 발판을 마련했다. 씨케이엔터프라이즈의 KPX홀딩스 지분은 2011년 말 0.92%에 불과했지만, 2015년 말 4.99%, 2019년 말 11.24%로 확대됐다.


공정위는 이번 부당 지원에 총수가 직접 관여한 증거는 찾지 못했으며, 공소시효(위법행위로부터 5년)가 만료돼 고발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공정위가 ‘중견그룹 부당 지원 감시’ 의지를 밝힌 후 세 번째로 적발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7월과 10월 각각 SPC, 창신을 제재했다.

민혜영 공정위 공시점검과장은 “내·외부 감시와 견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하지만 경쟁저해성은 대기업집단에 못지않은 중견 기업집단의 위법 행위를 적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장남에게 수출사업 공짜로 넘긴 KPX…과징금 16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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