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낸 법안, 내가 반대?…찬·반도 제대로 못하는 국회의원

머니투데이 정현수 기자, 박종진 기자, 서진욱 기자, 이원광 기자, 권혜민 기자, 김상준 기자, 유효송 기자 2021.0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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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입법공장' 국회의 민낯]

[단독]'입법공장' 국회의 민낯…본인이 발의하고 '반·기'든 의원들
21대 통과법안 공동발의자 중 19명 '반대·기권'…"몰랐다" "실수다" 해명…"막중함 망각" 목소리

내가 낸 법안, 내가 반대?…찬·반도 제대로 못하는 국회의원


21대 국회가 최악의 '입법공장'으로 전락했다. 하루 평균 수십건의 법안이 올라온다.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과잉입법이다. 과부하가 걸린 국회의 입법 시스템은 법안을 제대로 심사하기 힘들 정도다. 입법공장으로 전락한 국회의 부작용도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정작 필요한 법안은 정쟁으로 제 때 통과되지 못하는 반면 불필요한 중복법안으로 과잉 규제 등 졸속 입법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4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21대 국회에서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을 전수조사한 결과 공동 발의자 중 반대나 기권 표결을 한 의원은 총 19명이다. 이들은 법안 발의자에 이름을 올려놓고도 정작 본회의 표결에선 찬성 투표를 하지 않았다.

◇"내가 낸 법안에 반대한다?"





공동 발의자로서 반대 표결을 한 의원은 3명이다.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이 공동 발의한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개정안에 반대 표결을 했다. 이 법안은 상임위원회에서 수정 없이 원안 가결됐다. 박 의원 측은 "공동발의를 했는데 반대를 누를 이유가 없다"며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도 공동 발의한 혈액관리법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혈액관리법 개정안은 전체 반대표가 1표였다. 유일한 반대표가 공동 발의자인 신 의원이었다. 신 의원 측은 "단순 실수"라며 "법안들이 워낙 많이 연이어 통과돼 반대를 누른지도 몰랐다"고 밝혔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원자력진흥법 개정안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한 의원은 의지를 가지고 반대표를 던졌다고 했다. 강원도 춘천·철원·화천·양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한 의원은 "강원도가 원자력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반대 표결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법안은 원자력진흥위원회의 심의·의결사항에 '원자로 수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을 추가한다는 내용이다. 한 의원은 반대 표결을 했음에도 공동 발의를 한 이유에 대해선 "전체 국가적으로 찬성하지만 강원도 의원 입장에선 반대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21대 국회에서 공동 발의자 중 본회의에서 기권표를 행사한 의원은 16명이다. 상당수 의원들은 "단순실수"라고 해명했다. "투표 과정에서 잘못 눌렀다"(이상직 무소속 의원), "회의 속도가 너무 빨라 찬성을 누른다는 게 반영되지 않았다"(박완수 국민의힘 의원) 등의 설명은 유사했다.

◇찬성·반대 버튼도 제대로 누르지 못하는 국회의원



본회의장 표결 시스템은 재석 버튼을 누른 후 찬성과 반대 버튼을 누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재석 버튼을 누르고 찬성과 반대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기권 처리된다. 간혹 의원들이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어 오작동에 대한 정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표결 결과는 본인의 단말기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국회 의사과 관계자는 "표결기 오작동과 표결기 조작 지체, 표결기 조작 착오 3가지 경우에 한정해 통상 본회의 산회 전까지 각 의원들이 '표결결과 정정신청'을 하면 표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에 한해 표결결과 정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절차를 숙지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의원도 있었다. "정정이 되는 줄 몰랐다"(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결과가 뒤집히거나 하지 않아 정정하지 않았다"(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정해달라고 했지만 직원이 오지 않았다"(유동수 민주당 의원) 등이 해당한다.

이 밖에 "회의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김은혜 국민의힘 의원), "급한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하영제 국민의힘 의원) 등 기권으로 처리된 사유도 제각각이었다. "다른 법안을 기권한다는 걸 착각했다"(박영순 민주당 의원)는 사례도 있었다.

실수라는 해명 외에 '합리적인' 해명을 내놓은 의원실은 한 곳 뿐이었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본인이 공동발의한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개정안에 기권했다. 개정안은 사학연금의 공매도 금지를 규정한다. 당초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등 다른 직역연금과 시리즈로 발의된 법안이었다.

허 의원 측은 "본회의에 다른 (시리즈)법은 안 올라오고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개정안 하나만 올라왔다"며 "다른 법안은 그대로 두고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에서만 제한을 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어 기권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낸 법안, 내가 반대?…찬·반도 제대로 못하는 국회의원
◇과잉입법이 만들어낸 '웃지 못할 현실'



전수조사는 공동 발의자를 대상으로만 진행했다. 따라서 공동 발의자를 제외한 의원들의 '표결 실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법안을 표결할 때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정치권에선 입법 시스템의 과부하가 만들어 낸 부작용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21대 국회가 시작된 지난해 5월30일부터 12월31일까지 발의된 법안은 총 6957건으로 20대 국회 같은 기간(4698건)과 비교해 48% 증가했다. 20대 국회는 가장 많은 법안이 발의된 국회였다.

법안 발의건수가 의정활동의 중요한 평가기준이 되면서 의원입법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를 위해 의원들끼리 공동 발의자 이름을 빌려주는 '품앗이 입법'도 일상이 됐다. 단순히 글자 하나만 바꾼 개정안도 수두룩하다. 의원들이 본회의에 올라오는 법안을 일일이 숙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입법권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의무이지만 의원들이 발의 경쟁을 하다보니 입법권의 막중함을 간과하고 있다"며 "자기가 발의한 법안까지 반대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건 입법권의 막중함을 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박종진 기자·서진욱 기자·이원광 기자·권혜민 기자·김상준 기자·유효송 기자

月 1000건 뚝딱 만든 법 '불량·폐기처분'…남는 게 없다
21대 '4만건' 폭증 전망…인력난·시간에 쫓겨 건당 10분대 부실심사…반영·가결률도 뚝뚝

내가 낸 법안, 내가 반대?…찬·반도 제대로 못하는 국회의원
21대 국회가 ‘역대급 입법공장’이라는 불명예 수식어를 예약했다. 여야 할 것 없이 각종 법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최악의 입법 성적표를 받은 20대 국회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양적 경쟁에 골몰한 입법권 남용은 과잉 규제, 졸속 입법 등 부작용을 초래한다. 입법 기능의 질적 저하를 가져와 국회 본연의 역할과 위상 위축을 자초한다는 지적이다.

◇‘역대 최다’ 발의… 4년간 ‘4만 건’ 육박하나

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 7개월(5월30일~12월31일) 동안 제출된 법안은 총 6957건으로 집계됐다. 20대 국회가 같은 기간 4698건 제출한 것과 비교하면 48% 늘었다.

발의 주체별로 보면 의원 법안이 대부분이다. 의원 발의가 6653건(의원 6463건, 위원장 190건)으로 전체의 96%를 차지한다. 나머지 4%는 정부 제출로 304건이다.

정부 발의가 28건 줄어든 반면, 의원 발의는 2287건 늘었다. 20대보다 의원 한 명당 7.6건씩 더 발의했다.

21대 제출 법안 중 1310건이 본회의 가결, 대안 및 수정안으로 법률에 반영됐다. 반영률이 18.8%로 20대(14.3%)보다 4.5%포인트 높아졌다. 국회는 반영률 상승을 고무적인 성과로 보고 있으나, 특정 현안에 치중된 '복사 입법' 사례가 늘어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반영률 상승이 얼핏 고무적 성과로 보여 지지만, 특정 현안에 치중된 ‘복사 입법’ 사례가 늘어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복사 입법은 이미 발의된 법안 중 극히 일부 내용만 바꿔 재발의하는 것을 말한다.

과다 발의 추세가 이어지면 21대는 역대 국회 중 가장 많은 법안을 쏟아낼 전망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은 21대의 법안 발의 건수가 4만 건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했다. 임기 4년간 매일 새로운 법안이 27건씩 쏟아지고, 의원 한 명이 평균 130건 이상을 발의하는 셈이다.

국회의 한 수석전문위원은 “양적 경쟁을 보여주는 과다 발의는 국회의 고질적인 문제”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직까지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지난해 9월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이 투표를 위해 줄을 서 있다. 2020.9.24/뉴스1(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지난해 9월2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이 투표를 위해 줄을 서 있다. 2020.9.24/뉴스1
◇17대부터 발의 ‘폭증’, 갈수록 낮아지는 ‘반영률’

민주화 이후 13대부터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는 지속적으로 늘었다. 입법 주도권이 정부에서 국회로 넘어온 결과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법안 발의가 폭증하면서, 국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초과한 지 오래다. 아예 심사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회미래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민주화 이전인 1~12대 국회에서 접수된 법안은 4563건이며, 13~20대 국회는 6만9663건에 달한다. 13대 938건, 14대 902건, 15대 1951건, 16대 2507건, 17대 7489건, 18대 1만3913건, 19대 1만7822건, 20대 2만4141건 등이다. 법안 발의가 폭증한 기점인 17대에만 1~12대보다 3000건에 가까운 법안이 더 발의됐다.

법안 폭증 여파로 법안 반영률은 떨어지고 있다. 17대 50.3%(3766건), 18대 44.4%(6178건), 19대 7429건(41.7%), 20대 8799건(36.4%)를 기록했다. 20대에서 반영되지 못한 법안은 1만5342건으로, 10건 중 6건에 해당한다. 20대가 역대 최악의 국회로 기록된 이유 중 하나다. 가결률도 하락 추세다. 17대 25.5%, 18대 16.9%, 19대 15.7%, 20대 13.2%로 떨어졌다.

◇'졸속·부실’ 입법 초래… 20대, ‘건당 13분’ 심사 불과

과다 발의는 졸속·부실 심사 문제를 야기한다. 폭증하는 법안을 제한된 입법 인력과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하는 탓이다. 개별 법안 심사에 투입되는 입법 역량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쟁점 법안이 아니면 속전속결로 처리되는 사례가 늘어나는 이유다.
18대를 기점으로 법안심사소위원회 개최 일수와 시간이 늘었다. 하지만 발의 건수 증가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소위에 상정되는 법안을 기준으로 한, 법안 한 건당 평균 심사시간 통계를 보면 이런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다. 17대 23분, 18대 19분, 19대 18분, 20대 13분으로 계속 줄고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발의 건수보다 법안을 만드는 절차가 부실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게 문제”라며 “부실 심사와 축조심사 생략으로 법안 앞뒤가 상충 되는 등 부실 법안을 양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원들이 발의 건수를 일종의 성적표라고 생각하니 쓸데없는 비용과 규제를 초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진욱 기자·권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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