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호복 입고 와 집값 떨어진다' 면박”…코로나 의료진 새해 소망

뉴스1 제공 2021.01.03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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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코로나 상생이 희망] 광주 북구보건소 간호공무원 박선영씨
1년째 방역 최일선…"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한해 됐으면"

[편집자주]신축년 새해가 밝았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짙은 그림자는 걷히지 않고 있다.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소중한 일상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위드코로나시대'. 뉴스1광주전남본부는 어려움 속에서 다시 일어서는 '시민'들을 통해 희망을 찾아보고자 한다.



2일 오후 광주 북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간호 공무원 박선영씨가 검체 채취를 진행하고 있다.2020.1.2/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2일 오후 광주 북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간호 공무원 박선영씨가 검체 채취를 진행하고 있다.2020.1.2/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방호복을 입고 와서 집값 떨어진다며 호되게 욕을 먹기도 했죠. 올해는 코로나와 의료진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일 오후 광주 북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만난 간호 7급 공무원 박선영씨(34·여)의 소원 아닌 소원이다.



박씨는 신축년 (辛丑年) 새해 이틀째인 이날도 어김없이 면봉을 들었다. 오전 일찍 자가격리자 불시점검과 방문 채취에 이어 오후에는 선별진료소에서 검체 채취를 진행했다.

벌써 1년째. 손놀림이 익숙하다. 검체 채취 시간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레벨D 방호복은 여전히 불편하다.

그는 북구보건소 보건행정과에서 지역 보건 의료 계획과 희귀질환자 의료비 지원 업무를 맡아오다 코로나19가 확산한 지난해 초 급히 코로나19 검체 채취 업무에 투입됐다.


당시만 해도 긴급 업무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박씨는 선별진료소에서 한해를 꼬박 보냈다.

"한여름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고, 동료들과 눈물을 훔치고, 한파에 핫팩을 들고 발을 동동 구르다 보니 어느새 한 해가 다 지났네요."

의료진의 업무가 끊임없이 가중되자 타 부서에서 지원 인력이 오기도 하고 신규 기간제 직원을 채용하면서 업무 부담도 줄여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과도한 업무량에 기간제 직원들이 연이어 일을 그만두면서 근무 시간표는 안정적이지 않다.

선영씨는 "지금도 업무가 많은 편이지만 지난해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야근하면서 선생님들과 같이 운 적도 있다"며 멋쩍은 듯 웃었다.

북구는 광주가 4차 코로나 대유행을 겪으면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자치구다. 5개 자치구 중 주민이 43만명(동구 10만, 서구 29만, 남구 21만, 광산구 40만)으로 가장 많고 인구 밀집도도 높아 확진자 발생 시 2차, 3차 감염 확산도 빨랐다.

"일곡중앙교회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가장 힘들었어요. 교회, 병원, 학교는 한번 확진자가 나오면 검체 채취 대상자가 수백 명으로 확 뛰는데 7월쯤 교회와 학교들이 연이어 나와 매일 야근을 했죠. 야근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당시 대전 방문판매업체에서 시작한 감염이 광주를 강타하며 금양오피스텔, 광륵사, 일곡중앙교회 등에서 확진자가 속출했다.

일곡중앙교회를 중심으로 7월 초부터 교인의 가족이 다니는 학교와 병원, 학원 등으로 지역감염이 확산해 하루에만 1000여명의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눈물 날 정도로 힘든' 7월이 지나자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흐르는 8월이 왔다. 의료진들은 선풍기 앞에 서 있어도 더운 영상 35도의 날씨에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쉴 새 없이 검체 채취를 해야 했다.

"올 여름에 엄청 더웠는데 방호복 밖으로 땀이 나오더라구요. 신기하기도 하고 방호복에 맺힌 땀을 보니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어요. 땀 범벅으로 일하던 게 불과 몇 달 전인데 이제는 핫팩에 의지하며 덜덜 떨고 있으니 새삼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죠."

광주는 지난달 30일부터 눈이 내려 선별진료소 밖은 여전히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그는 "진료소 내에 의료진을 위한 온열기가 있지만, 검체 채취를 하다 보면 온열기로 다가갈 시간조차 없다"며 "핫팩을 몸 여기저기 붙이고 손난로를 검사 중간중간 만지면서 몸을 녹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해 검체 채취를 하며 수많은 시민을 만났는데 '진상'을 만나 힘들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편지로 위로를 받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박씨는 "참 서럽기도 했는데 방호복을 입고 방문 채취를 하러 가니 '왜 방호복을 입고 집에 오느냐. 집값 떨어지면 책임질 거냐'며 소리 지르던 분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코로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아 그런 분들을 종종 만나기도 했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매번 '민폐꾼'들을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의료진을 위해 직접 손편지를 써서 보내왔는데 박씨는 이때를 지난해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꼽았다.

"아이들이 '코로나가 곧 끝날 거니깐 조금만 더 힘내세요'라며 삐뚤빼뚤한 글씨로 손편지를 보내왔는데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다섯 살 난 아들이 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로 많이 못 놀아준 게 생각나 미안하기도 하고 편지를 보니 아들 생각도 나서 참 고마운 선물로 기억돼요."

2일 오후 광주 북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2020.1.2/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2일 오후 광주 북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2020.1.2/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박씨의 올해 소망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제가 보건소 직원이다 보니 남편과 아이들을 더 밖으로 못 나가게 하고 정말 집에만 있게 했다. 매일 야근하느라 남편이 육아를 전담하고 아들과도 많은 시간을 못 보낸 게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는 코로나가 많이 진정돼 가족들과 마주 앉아 밥 먹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우리 모두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자제해서 올해는 국민 모두가 일상을 점차 찾아가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 의료진 여러분들도 모두 힘내시길 바란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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