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도 투자자, 그래서 ESG한다

머니투데이 대담=박재범 증권부장, 정리=황국상 기자 2021.01.04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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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ESG가 경제 시스템을 바꾼다]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인터뷰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국민연금이 2021년 새해를 맞이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고삐를 바짝 죈다. 지난해까지 기금 전체 자산의 10%에 그쳤던 ESG 투자규모를 내년까지 50%로 늘리고 ESG 투자대상 자산도 현재 국내주식 일부에서 국내채권, 해외주식·채권에까지 확대하겠다는 포부다.

지난해 ‘적극적 주주권 가이드라인’ 도입 이후 본격화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영역도 넓힌다. 그간 주로 G(지배구조) 관련 활동을 펼쳐왔다면 올해부터는 E(환경)와 S(사회) 관련 주주활동도 본격화할 계획이다. 피투자기업의 실적과 주가 뿐 아니라 이제는 ESG 리스크까지 따지는, 까탈스러운 국민연금이 되겠다는 얘기다.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머니투데이와 신년 인터뷰에서 ESG 관련 “투자자로서 리스크를 줄이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투자자라면 누구나 투자대상 기업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두기 마련이다. 국민연금도 투자자인 만큼 재무적 리스크 유무는 물론이고 ESG 리스크 유무여부까지 따져서 꼼꼼하게 투자하겠다는 선언이다.

다음은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가진 일문일답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국민연금은 자타공인 ESG 선도기관으로 꼽힌다. ESG 투자를 확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국내의 ESG 투자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는가.



▶ 저출산·고령화 심화로 인한 인구구조 심화와 저성장·저금리 기조의 고착화, 적게 내고 많이 받도록 설계된 국민연금 구조 등 다양한 이유로 국민연금 기금소진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 2219만명에 수급자 521만명에 이르는 등 성과를 달성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노후보장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문제도 여전하다. 피투자기업의 장기적인, 지속가능한 성장세가 뒷받침돼야 국민연금기금도 그만큼 소진시기를 늦출 수 있다. 이를 위한 열쇠 중 하나가 바로 ESG다.

기업도 기본적으로 사회 구성원이다. 사회와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와 기업의 수익창출이 함께 갈 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ESG 경영과 수익성은 상충관계가 아니라 정(正)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실증분석도 이미 많다.


국민연금은 국내에서는 ESG 이슈가 아직 생경하던 2006년부터 위탁운용을 통해 책임투자(최종 수혜자의 이익을 목적으로 재무적·비재무적 리스크·기회요인을 모두 반영하는 자산수탁기관의 투자방식) 펀드를 운용한 이후 2013년 3월 책임투자팀을 설치하면서 ESG투자 자산군 확대와 투자내실화를 도모해왔다.

- 지난해 ‘적극적 주주권행사 가이드라인’ 도입에 따라 국민연금의 주주총회 행보도 본격화됐다. 한 해 동안 성과는 어땠나.

▶국민연금은 2019년 123개 기업과 236회의 대화를 진행해 이 중 일부를 비공개 대화 대상기업으로 지정한 바 있다. 지난해에도 더 많은 기업을 비공개 대화대상 기업으로 선정해 소통을 지속 중이다. 현재 공개 중점관리기업, 주주제안 단계에 있는 기업은 없지만 시간이 갈수록 국민연금의 강화된 주주권 행사 사례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국민연금은 운용규모상 국내 경제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합의를 바탕으로 마련된 투명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신중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및 적극적 주주권 가이드라인에 따라 중점관리 사안과 예상치 못한 우려사안에 대해 비공개 대화 대상 기업을 선정해 비공개 대화 등을 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에도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기업과의 대화를 진행해왔지만 (지난해 적극적 주주권 가이드라인 제정 등을 통해) 기업과의 소통방식을 알리고 공식화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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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에 개입·간섭하려 한다는 우려도 크다. 대기업에 비해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중소기업들은 ESG 경영을 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주주로서 당연한 권리로 국민의 노후자금 수탁자로서 주주가치 제고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 혹자는 ‘종이 호랑이’, 다른 한 편으로는 ‘거수기’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소수의견이 될지라도 지속적으로 국민연금의 의견이 표출돼야 하며 이것이 결국 연금재정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의결권 행사에만 국한하지 않고 스튜어드십 코드와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에 따라 주주활동을 단계적으로 성실히 이행할 것이다. 지속적인 비공개 대화에도 개선이 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공개서한, 주주제안 등 적극적 주주활동을 단계적으로 이행하겠다. 상대적으로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들이 ESG 경영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지만 기본원칙에 충실하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 전체 운용자산의 37%가 해외에 투자돼 있다. 해외에서의 국민연금 ESG 활동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나.

▶이미 해외 기업을 대상으로도 제품 관련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등 주주가치 훼손의 우려가 큰 기업에 대해 기업과의 대화 등을 통해 주주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통해 2025년까지 전체 기금에서 해외투자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2020년말 기준 37%에서 올해 41%로 늘리고 2025년까지는 55% 수준으로 다시 끌어올리겠다는 중기자산배분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

국민연금 기금이 향후 10년간 가파르게 규모를 키워나가는 것을 감안할 때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자산의 규모도 2020년말 293조원에서 2025년말 60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ESG 전략을 적용한 해외투자 규모도 자연스레 늘어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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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최근 AIGCC(기후변화 관련 아시아 투자자 그룹)에 가입하는 등 국제 협의체에 잇따라 가입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어떤 이유에서인가.

▶ 앞서 국민연금은 2009년 UN PRI(유엔 책임투자원칙), 2019년 ICGN(국제 기업지배구조 네트워크)에도 가입한 바 있다. 최근 기후변화 등 환경 이슈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AIGCC에도 가입하게 됐다. 책임투자와 주주권 행사에 대한 이해증진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 국내외 기관투자자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정보습득이 첫번째 목적이지만 이와 더불어 바로 이들 협의체와 기구 등에서 ESG와 관련된 원칙, 기준들이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본시장을 비롯해 미국, EU(유럽연합) 등에서 ESG 정보공개와 관련한 압박이 규제의 형태로 가시화되고 있다. 이미 세계 1위 운용사 블랙록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ESG 정보공개 요구를 강화하고 ESG 관련 주주활동도 더 강화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2020년말 기준으로 기금규모가 800조원을 돌파하면서 규모 측면에서 글로벌 3대 연기금 반열에 올랐지만 신규투자 여력 측면에서는 독보적 글로벌 1위다.

1988년 설립돼 이제 33년째에 접어드는 국민연금은 아직 연금보험료 수입이 지출보다 연간 25조원 이상 많은 데다 수익금까지 더해 매년 50조원 이상의 투자여력을 갖춘, 세계에서도 보기 힘든 젊은 연금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자본시장과 연기금 중에서 단연 눈에 띈다. 글로벌 원칙과 기준을 형성하는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우리가 글로벌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국민연금공단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1961년생 △행정고시 30회 △충북 세광고 △성균관대 교육학과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석사수료) △기획예산처 정책총괄팀장 △기획재정부 공공혁신기획관 ·대변인·사회예산심의관 △한국동서발전 사장 △기획재정부 제2차관 △제17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2020년 8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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