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교사 A씨의 말이다. A교사는 "가벼운 사람들도 근육을 키우는 노력을 해 수평을 맞추고, 전체 총량도 늘어나면 모두가 위너(승자)가 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으면 학생들은 생각치 못한 해법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고 밝혔다. 그는 "학생들이 경제에 대해 좀 더 유연한 사고를 가지며 성장하기를 바라지만 현행 교과서는 은연중에 분배의 정의에 치중된 것 같아 사뭇 아쉽다"고 덧붙였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 교육이 마치 보수 대 진보의 가치를 대변하는 수단으로 여겨지며 중립적 관점에서의 기업가 정신에 대한 교육은 번번이 뒤로 밀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외환위기(IMF) 이후 불거진 반기업 정서도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된 경제 교육을 못하게 한 주 원인"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시장은 돈이 투표한다는 점에서 경쟁적이고 비인간적이다'는 내용이나 '1960~70년대 경제성장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이룩된 것'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린 내용으로 꼽힌다. 전경련은 한발 나아가 2008년에는 '차세대 중학교 경제 인정교과서'를 발간한다. 시장경제 원리와 사례를 대폭 보완한 교과서였다. 그러나 이 교과서는 '좌편향 교과서를 바로 잡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움직임과 함께 묶이면서 진보단체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는다.
반대 사례도 있다. 2016년 서울시와 서울시 교육청이 만든 인정교과서 '사회적 경제'에는 '돈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경제교육'을 명분으로 내세워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을 다뤘다. 이 교과서는 "대기업이 이익을 더 많이 가져간다"는 식의 내용을 담아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과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코드정책'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 두 사례 모두 거센 정치적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자료사진으로 기사의 직접적인 내용과는 무관/사진=머니투데이DB
특히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태는 정경유착 문제로 이어지며 경제 교육을 재차 정치의 덫에 갇히도록 한 사건이다. 이후 재계단체가 학생들과 교사들을 상대로 진행한 시장경제 교육은 "보수정권을 뒷받침하는 산물"로 비약되며 크게 위축됐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기업가 정신 자체는 중립적이고 경제 발전의 토대를 강화하는 것이어서 선진국에서는 활발히 논의되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기득권을 정당화하는 도구'라는 편견을 갖는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논쟁에 발이 묶여 미래를 향한 긍정적 논의를 언제까지 하지 못해야 하는 건지 아쉽다"고 덧붙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지금부터라도 기업가 정신에 대한 교육은 꼭 필요하다는 제언들도 들린다.
사단법인 기업가정신학회장을 맡은 이춘우 서울시립대 경영대 교수는 "대부분의 교과서가 기업가 정신 언급 전에 기업 혹은 기업가에 대한 정확한 정의조차 못 내리고 있다"며 "기업의 본질적 기능과 역할보다는 이윤 창출이나 사회적 환원 같은 결과에만 방점을 찍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기업가란 기술과 아이디어, 도전의식을 갖고 새로운 사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인물"이라며 "이윤 추구만이 아니라 창조적 파괴와 혁신을 통해 미래 가치를 만들어내려는 것이 바로 기업가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추격 모방형 개발도상국에서 선도형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미래를 예측하고 시장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혁신적으로 개발하려는 한국형 기업가 정신이 절실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