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사 없는 보험회사 시대 온다…왜?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2020.12.2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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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화생명 사옥 전경사진=한화생명 사옥 전경


생명보험업계를 중심으로 영업 핵심 채널인 설계사 조직을 자회사로 떼어내는 이른바 ‘제판분리(제조와 판매분리)’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지금껏 국내에 도입된 적 없는 ‘설계사가 없는 보험회사’를 만드는 셈이다. 영업경쟁력 강화와 비용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만 기존 영업관리조직의 반발이 커 대형사들은 쉽게 동참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화생명은 ‘빅3’ 대형 보험사 중 처음으로 2만여명의 전속 설계사를 판매 전문회사로 분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내년 4월을 목표로 신설 판매전문회사인 ‘한화생명 금융서비스㈜(가칭)’를 설립하고 약 540여개의 영업기관, 1400여명의 임직원, 2만명의 전속 설계사들의 소속을 자회사로 옮기는 형태다. 판매전문회사는 판매, 즉 영업에만 집중하고 한화생명 본사는 상품과 서비스 개발 등 지원업무를 강화해 역할을 분담한다.

미래에셋생명도 내년 3월 자회사형 GA(법인대리점)인 ’미래에셋금융서비스’를 출범하고 전속 설계사 3300여명을 이동시킬 계획이다. 미래에셋생명은 9년간 회사를 이끌어 온 하만덕 대표이사 부회장이 아예 판매전문회사의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겨 제조와 판매 채널 분리를 진두지휘한다. 미래에셋생명의 경우 장기적으로 판매전문회사의 자본 증자와 유가증권시장 상장도 추진할 계획이다.



보험사들이 영업채널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설계사 조직을 떼어내는 작업에 돌입한 것은 역설적으로 설계사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다. 대부분의 보험사가 신입 설계사 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GA와의 수수료 경쟁 등으로 기존 경력 설계사들도 이탈이 잦은 형편이다.

특히 생명보험사의 경우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이 손해보험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돼 판매 경쟁력 차원에서도 조직을 분리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전속 설계사는 한 회사의 상품밖에 팔지 못하지만 판매전문회사가 되면 다른 보험사의 상품도 팔 수 있다.

김동겸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종신보험 등으로 상품이 제한된 생보사와 달리 손보사는 장기보험을 비롯해 상품이 더 다양하기 때문에 판매 기회가 많고 설계사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해외에서는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보험사가 아닌 판매전문회사가 지도록 하면서 판매전문회사가 늘어 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비용절감 차원에서도 유인이 크다. 인건비가 상당한 정규직 영업관리 인력을 판매전문회사 소속 계약직으로 전환할 수 있어서다. 메리츠화재의 경우 4~5년 전 대규모 구조조정 후 자사형GA로 전환했고, 미래에셋생명도 수년간 자사형GA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한 끝에 판매채널을 분리한다. 반면 한화생명의 경우 1000여명의 영업관리인력에 대해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이 현재와 같은 근로조건으로 이동시키기로 했지만 노조는 고용 안정성 등을 우려해 강력하게 반대한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판매채널을 분사하려면 영업관리 인력이 연쇄이동 할 수밖에 없고 대형사는 임직원에 대한 구조조정 문제 때문에 쉽사리 추진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라며 “중소형사가 속속 동참하더라도 대형사는 한화생명의 안착 추이 등을 보며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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