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또 버텼는데…” 마지막 12월 남기고 쓰러지는 카페 사장님들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20.12.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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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로드]<77>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는 자영업자들의 신음

편집자주 i-로드(innovation-road)는 기업이 혁신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가족과 직원들에게 조금만 더 버티자고 말합니다.”

올해 3월 중순 서울 도심 한복판 청계천을 바라보는 자리에 카페를 오픈한 40세 L사장에게 코로나19 사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블랙스완 사건이었다. 점심시간이면 주변 빌딩에서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과 유동 인구로 붐볐던 광화문 거리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난 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한산한 거리로 바뀔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올해 갑자기 닥친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힘든 직종이 바로 자영업자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갈수록 매상은 뚝뚝 떨어졌고 한 달 임대료도 못 버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했다.



카페 등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방역 조치로 매장 내 테이블과 의자를 치워야 했고, 식당은 밤 9시에 문을 닫아야 했다. 직장인들의 재택근무가 늘어날수록 식당과 카페를 찾는 고객들의 발길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때마다 광화문 카페 L사장은 가족과 직원들에게 “조금만 더 버티자”고 말했다. L사장을 걱정하는 단골고객에겐 “그럭저럭 버티고 있습니다”며 쓴웃음을 지으며 답변하곤 했다.



#“어머, 가게 문 닫으세요?”

지난 8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처음으로 2.5단계로 격상되면서 카페 내 영업 금지로 L사장은 테이블과 의자를 치워야 했는데 그의 모습을 본 한 고객이 걱정스런 말투로 “어머, 가게 문 닫으세요?”라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당시 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임대료는 고사하고 직원 월급을 줄 형편도 못 되는 한계 상황에 빠진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가게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다.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10여 년간 식당을 운영하던 유명 연예인도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했다는 뉴스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상황은 자영업자들에게 최악으로 치달았다.


L사장은 다행히 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받으면서 겨우겨우 여름철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럴 형편이 못 되는 자영업자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대체로 자영업자들은 신용도가 낮거나 소득 확인이 제대로 안돼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가 어렵다.

지난 4~5월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된 1차 긴급재난지원금 덕분에 자영업자들이 적지 않은 혜택을 입었다. 그리고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2차 긴급재난지원금이 선별 지급됐을 때 자영업자들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광화문 카페 L사장은 150만원을 지급받았다. 8월 코로나19 2차 대확산이 왔을 때 매상이 크게 감소했지만 L사장은 그래도 버터냈다.

아니 버텨야만 했다. L사장은 포기하기 어려웠다. 오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한 터라 1년도 안 돼 포기할 순 없었고, 또 카페를 오픈할 때 들어간 투자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대한민국의 많은 자영업자들이 L사장과 같은 처지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올해 12월은 정말 버티기가 힘듭니다.”

그런 L사장도 올해 마지막 달은 더 버티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12월 수도권을 중심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시 2.5단계로 격상되면서 카페 내 영업이 금지되고 L사장은 또다시 테이블과 의자를 치워야 했다.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연말에 한창 붐벼야 할 광화문 거리가 눈에 띄게 썰렁해졌다. 그동안 계속 찾아주던 단골고객들도 발길이 뜸해졌다. 매출은 카페를 오픈한 이래 최악으로 떨어졌다. 12월에 닥친 코로나19 3차 대확산은 자영업자들을 벼랑 맨 끝으로 매몰차게 몰아부치고 있다.

결국 L사장은 지속적인 매출 감소로 인해 직원을 줄이고 알바로 대체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L사장의 건강에도 이상신호가 왔다. 코로나19 스트레스가 주원인이었다. 목디스크가 심하게 재발해서 온종일 보호대를 끼고 손님을 맞이해야 했고, 최근엔 치아 2개를 발치하는 고통을 겪었다.

급기야 L사장은 브랜드 프랜차이즈 가맹점 계약을 해지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L사장도 이제 코로나19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 지금 수많은 자영업자가 올해 마지막 달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지난 1,2차 대확산 때와 달리 연말엔 3차 재난지원금도 없다. 사정은 더 나쁜데도 말이다. 지금 정치인들은 자영업자들의 고통과 신음에 눈과 귀를 모두 막고 있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어요.”

L사장은 그래도 내년엔 상황이 달라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1년 가까이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건강도 많이 상했지만 처음 카페를 오픈할 때 품었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최근 해외에서 들리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 뉴스는 L사장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만드는 유일한 희망이다.

L사장은 내년엔 브랜드 프랜차이즈 가맹점 계약을 해지하고 독립 브랜드로 새출발을 계획하고 있다. 창업자들이 처음 구상했던 모델이 아닌 새로운 비즈니스모델로 방향을 트는 것을 피벗(pivot)이라고 부르는데, L사장도 카페를 오픈한 지 1년여 만에 피벗을 하는 셈이다. 보통 창업 후 위기의 순간에서 피벗을 하게 되는데, 오히려 위기가 큰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광화문 카페 L사장도 피벗을 통해 내년엔 성공하기를 꿈꾸고 있다. 물론 내년에 코로나19가 극복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희망이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올해 1년 내내 버티고 또 버텨왔다. 솔직히 버티는 것외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수많은 자영업자가 한계 상황에 내몰렸고 일부는 어쩔 수없이 폐업을 결정했다. 그리고 남은 자영업자들은 올해 마지막 달에 더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며 신음하고 있다. 부디 L사장을 포함한 모든 자영업자들이 올 연말을 무사히 버티고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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