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김정일 'NLL 대화록' 삭제…유죄로 뒤집힌 이유는

뉴스1 제공 2020.12.1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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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심 "수정 지시라 결재 전"→대법 "열람·서명, 결재완료"
대법 "노무현 전 대통령 결재로 대통령기록물 요건 갖춰"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명균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 .2018.4.12/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명균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 .2018.4.12/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삭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명균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잘못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정상회담 회의록이 작성된지 13년만에 나온 대법원 선고다.



대통령기록물이 공문서의 성격을 띠는 경우에는 결재권자의 결재가 이뤄져야 비로소 대통령기록물로 생산되기 때문에, 재판에서는 회의록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결재가 있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2015년 12월 사건을 접수한 대법원은 5년의 심리 끝에 사건을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사라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2007년 10월 2~4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조 전 비서관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이에 진행된 정상회담의 회의록을 작성한 후 2007년 10월9일 오후 3시13분쯤 청와대 통합업무관리시스템인 ’e지원(e知園)시스템‘으로 ’문서관리카드‘를 생성해 필요한 문서 정보를 기재하고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hwp' 제목의 회의록 파일을 첨부해 결재를 상신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결재 상신된 문서관리카드에 첨부된 회의록 파일을 열어 내용을 확인한 다음 ‘문서처리’ 항목을 선택해 ‘열람’ 항목을 눌러 결재를 생성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와 별도로 ‘회의록 파일의 내용을 수정·보완해 e지원시스템에 올려 두고 '총리, 경제 부총리, 국방장관 등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보고서의견-남북정상녹취록.hwp' 파일을 작성해 문서관리카드에 첨부했다.

문서관리카드는 조 전 비서관에게 하행 처리됐고, 조 전 비서관은 이에 대해 ‘종료처리’ 항목을 선택하지 않은 채 2008년 1월 20일 문서관리카드를 ‘계속검토’로 처리했다. 이후 e지원시스템의 메인테이블에서 문서관리카드에 대한 정보가 삭제됐다.

2012년 정문헌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NLL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여야 공방 끝에 이듬해 7월 대통령기록관에서 열람하기로 합의했지만 회의록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자 새누리당은 참여정부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수사 끝에 비정상적 방법으로 기록이 삭제됐다고 판단하고 2013년 11월 백 전 실장과 노 전 비서관을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및 공용전자기록손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결재 전이므로 대통령기록물 아니다" 1,2심 무죄 선고

2015년 2월 1심 재판부는 "문서관리카드에 '결재'가 되어야 대통령기록물로 생산된다"며 최종결재권자인 노 전대통령의 결재가 없어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없다며 백 전 실장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문제의 파일을 열람한 것만으로도 결재가 이뤄졌다"는 검찰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파일을 열람할 당시 노 전대통령의 의사는 파일의 내용을 승인해 공문서로 성립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파일을 작성자인 조 전비서관에게 반환해 재검토·수정하도록 지시하겠다는 것이 명백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용전자기록 손상 혐의에 대해서도 '폐기돼야 할 대화록 초본'이었다는 이유로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녹음자료를 기초로 해 대화내용을 녹취한 자료의 경우 최종적인 완성본 전 단계 초본들은 독립해 사용될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완성본과 혼동될 우려가 있으므로 폐기되는 것이 맞다"며 "공용전자기록을 '손상'한 것이 아니라 '정당한 권한에 의해' 폐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11월 2심 재판부도 "노 전 대통령은 '수고 많았습니다, 내용을 다시 다듬어봅시다'라며 재검토 지시를 첨부했기 때문에 NLL 대화록 초본이 공문서로 성립하는 것에 대해 승낙하거나 동의하지 않은 게 명백했다"며 "노 전 대통령의 명백한 결재 의사가 표시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공용전자기록손상 혐의에 대해서도 "이 사건 회의록 파일은 초본에 불과하다"며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전자기록이라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접수 5년만에 판결 뒤집은 대법원

2015년 12월 사건을 접수한 대법원은 2016년 6월 선고기일을 지정했다가 돌연 선고를 연기했다.

사건을 심리하던 대법원 2부는 이 사건에 대해 대법관 전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올해 3월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 전원합의체 논의결과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했고, 대법관들이 올해 9월 이 사건을 소부에서 선고하기로 합의해 사건은 다시 2부로 내려왔다.

사건 접수 5년만인 9일,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대통령기록물관리에관한법률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백 전 실장과 조 전 비서관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1,2심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이 회의록을 열람했을 때 결재를 한 것이고, 이에 따라 문서관리카드가 대통령기록물로 생산됐다고 판단했다. 또 수정지시가 결재의사를 부정하는 근거로 쓰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결재권자의 결재가 있었는지 여부는 결재권자가 서명을 했는지 뿐만 아니라 문서에 대한 결재권자의 지시사항, 결재의 대상이 된 문서의 종류와 특성, 관련 법령의 규정 및 업무 절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회의록은 개최된 회의의 일시, 장소 및 회의에서 이루어진 발언 내용 등 객관적인 정보를 담은 문서로서 이에 대한 결재의사는 그 내용을 열람하고 확인하는 의사로 보아야 하는데, 노 전 대통령은 이 사건 회의록의 내용을 열람하고 그 내용을 확인하였다는 취지로 '문서처리' 및 '열람' 명령을 선택해 전자문자서명 및 처리일자가 생성되도록 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 문서관리카드를 공문서로 성립시킨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이 서명 생성 과정에서 ‘대화의 내용을 한자 한자 정확하게 확인하고, 각주를 달아서 정확성, 완성도 높은 대화록으로 정리한 뒤 e지원시스템에 등재해, 해당 분야 책임자들에게 공유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사정이 결재의사를 부정할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 기타 전자기록'에는 공문서로서의 효력이 생기기 이전의 서류라거나, 정식의 접수 및 결재 절차를 거치지 않은 문서, 결재 상신 과정에서 반려된 문서 등이 포함된다"며 "회의록이 첨부된 이 사건 문서관리카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결재의 의사로 서명을 생성함으로써 대통령기록물로 생산되었고, 첨부된 '지시사항'에 따른 후속조치가 예정되어 있으므로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전자기록'에 해당한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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