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팬이 연쇄살인마? 전종서가 살려낸 2시간

김수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11.3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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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 영화 내용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충현 감독의 단편영화 ‘몸 값’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원조교제를 위해 만난 남자와 여고생이 ‘몸값’을 흥정하는 장면을 15분 롱테이크로 찍어낸 이 영화는 막판 충격적인 엔딩으로 관객의 허를 제대로 찔렀다. ‘몸 값’이라는 제목에 담긴 이중적 의미와 형식과 관계를 비틀어내는 대담한 연출력,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더해져 영화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괴물 감독이 탄생했다며 입소문이 자자했다.



때문에 이충현 감독의 첫 장편 상업영화 ‘콜’은 기대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더군다나 영화 ‘아가씨’, ‘럭키’, ‘뷰티 인사이드’ 등 작품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용필름의 손맛이 더해진 영화이니 당연히 한 방 제대로 날릴 스릴러가 탄생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렇게 서두에 기대감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몸 값’이 형식 면에서 엄청난 충격을 안겼고 그것이 1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도 강렬한 파장을 이끌어냈다면 ‘콜’은 상당 부분 캐릭터에 기대는 영화였다. 바로, 전종서가 연기한 ‘영숙’ 캐릭터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영화는 물론 해외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20대 여성 사이코패스 캐릭터. 그것도 서태지를 좋아하는 사이코패스라니. 말 그대로 듣지도, 보도 못한 캐릭터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영숙을 연기한 전종서는 단연 ‘콜’의 가장 큰 수확이자 ‘콜’을 이끈 원동력이다. 그가 날카로운 눈빛을 희번덕거릴 때마다 간담이 서늘한 통에 몇 번이나 등 뒤를 돌아봤다. 영화 중반엔 결국 온 집안 불이란 불은 다 켜야 했다. 전종서는 서태지를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얼굴에서 무자비한 살인마까지의 넓은 스펙트럼을 가뿐히 품어냈다. 물론 디테일한 연기에서는 종종 어색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가 풍겨내는 신비로운 듯 섬뜩한 분위기가 그 부족함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아쉬운 지점은 빌런 영숙이 워낙 강하다 보니, 상황에서 오는 스릴이 다소 약하다는 점이다. ‘콜’은 한 통의 전화로 연결된 서로 다른 시간대의 두 여자가 서로의 운명을 바꿔주면서 시작되는 파국을 그린다. 영숙은 1999년을 살고 있는 인물. 신엄마(이엘)에 의해 집안에 갇혀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던 영숙은 우연히 20년 후 미래를 살고 있는 서연(박신혜)의 전화를 받게 된다. 영숙은 미래의 서연이 알려준 한마디에 목숨을 구하고, 그 보답으로 죽은 서연의 아버지를 살려낸다.


영숙은 서연의 과거를 바꿔준 후 조금씩 서연에게 집착한다. 자신의 도움으로 다시 화목한 가정을 갖게 된 서연. 영숙은 “왜 내 전화 안 받아”라고 이를 갈며 집착에 광기를 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광기의 과녁은 서연에게로 향한다. 잠재돼 있던 살인마 본능이 폭주한 것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꽤 자주 답답한 가슴을 두드리곤 했는데, 서연의 눈치 없는 입방정(?) 때문이었다. 서연은 영숙에게 결코 해선 안 될 괜한 이야기를 하며 서연을 자극한다. 스릴러를 즐겨 보는 관객에겐 다소 답답한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을 듯한 대목이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사진제공=넷플릭스
서연의 눈치 없음을 차치하더라도 이미 영숙과 서연의 대결은 영숙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돼 설명할 순 없겠지만, 과거의 영숙은 서연의 현재를 언제든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서연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물을 흘리며 영숙의 전화를 기다리거나 크게 도움이 안 되는 (영숙의 생명력은 정말이지 길다.) 단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할 따름이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콜’은 2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지루함 없이 관객을 끌어당긴다. 앞서 언급했듯 영숙을 연기한 전종서의 힘이 컸다. 딸기를 먹는 장면일 뿐인데도 화면 한가득 그로테스크한 기운을 뿜어내는 힘. 존재 자체로 작품의 ‘뉘앙스’가 될 수 있는 힘. 전종서는 데뷔작 ‘버닝’(이창동 감독)에 이어 ‘콜’까지 단 두 편의 영화로 그 힘을 증명해 보였다. 이토록 살인마 캐릭터를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더불어 전종서가 차기작에서는 또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벌써 흥미롭다.

김수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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