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외교'→'판다 외교' 태도 바꾼 中…떨떠름한 미국

머니투데이 윤여창 기자 2020.11.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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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시진핑 방한의 정치경제학 <上>

편집자주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비상한 관심 속에 일본과 한국을 연달아 찾았다. 트럼프 시대 4년 동안 중국과 연일 충돌하던 미국은 조 바이든으로의 정권 이양 작업 속에도 한중일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관심은 코로나19 유행 속에 당장 성사 가능성은 낮다고 하지만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문(특히 방한) 여부다. 혈맹 미국과 최대 교역상대국 중국에 끼인 한국에게 시진핑의 방한(또는 가능성)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中외교 '늑대'에서 '판다'로…시진핑 방한하나 안하나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왼쪽)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6일 회담을 가졌다. /AFPBBNews=뉴스1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왼쪽)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6일 회담을 가졌다. /AFPBBNews=뉴스1


한국을 방문한 중국의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6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 가능성에 대해 코로나19가 통제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최근 한국내 코로나19 확산세가 매서운 점을 감안하면 연내 방한 가능성이 멀어졌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지만, 시 주석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진 방한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권력 공백기를 최대한 이용할 외교 적기이기 때문이다.

26일 산케이신문은 한중 모두 시 주석의 방한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산케이는 이날 왕이 부장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후 "왕이 부장의 방한은 내년 1월 바이든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전 한국을 중국측에 끌어들여 한미일 관계에 쐐기를 박으려는 목적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이어 "문재인 정권은 남북대화의 정체, 악화한 일본과의 관계 개선 전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시 주석의 방한을 실현시켜 외교적 성과로 내세울 것을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고 전했다.



재팬비즈니스프레스는 중국의 거친 '늑대 외교'의 수장이었던 왕이 부장이 '스마일'을 전면에 내세운 '판다 외교'로 태도를 바꾼 것은 미국 정권 교체기 두달반을 집중 공략하겠다는 외교전략이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동맹과 연대 강화를 선포한 만큼 같은 전략으로 맞설 계획이라는 얘기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효과적인 외교는 타이밍에 달려 있다"면서 "왕이 부장이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 연달아 일본과 한국을 방문한 것은 미중 라이벌 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SCMP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레임덕 시기에 중국이 최고위 외교 간부를 처음으로 해외로 보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외교 관계자를 인용해 "왕이의 방문은 중국과 가까운 위치에 자리잡은 미국의 두 동맹을 끌어당기는 데 있다"고 전했다.

왕이 부장이 이날 시 주석의 연내 방한 가능성에 대해 "방문 여건이 성숙돼야 한다"면서 코로나19 문제를 언급하긴 했지만, 늦어도 바이든 전 부통령의 대통령 취임 전까지는 방한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SCMP는 시 주석은 지난 대선에서 중국이 범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고도 분석했다. 당시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된지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그에게 축하 메시지를 건넸지만 양국 관계의 첫 단추를 완전히 잘못 뀄다. 당시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2017년초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측 관계자들을 만났지만, 대만 문제 관련해선 중국측에게 유리한 약속을 전혀 받아내지 못했다. 이는 험난한 4년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SCMP는 전했다.


다만 한국내에서 최근 반중정서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시 주석의 방한에 부담이 되는 요소로 꼽힌다.

한편 왕이 부장은 27일 박병석 국회의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직접 방한한 것에 대해 "한국이 코로나19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데 대한 신뢰를 보여주고, 또 포스트 코로나 시기에 조만간 전략적 신뢰 강화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남북 양측이야말로 한반도 주인이고, 한반도 운명은 양측 손에 쥐어져야 한다"는 언급이다. 원론적인 입장 표명이지만 미국이 남북한 관계 개선 등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 대해 회의적인 중국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중요한 이웃으로서 우리는 지속적, 건설적인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는 왕 부장의 추가 언급은 향후 중국의 역할론에 힘을 싣기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가 돌아왔는데' 왜 中이 한일에? 떨떠름한 미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사진=AFP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사진=AFP
조 바이든 미 대선 당선자가 "미국이 돌아왔다"며 동맹 관계 복원을 천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대중국 견제'라는 목적은 같으나, 동맹 관계를 긴밀히 해 '전선'을 구축하겠다는 게 바이든 정부의 기조다. 이를 위해 동아시아 내 한국 및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25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방한 때 감지됐다. 왕 부장 방한과 동시에 미 국무부는 '6.25전쟁'과 관련해 중국 정부를 비판했고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한국과 미국은 피로 맺은 혈맹"이라고 강조했다.

왕 부장은 바이든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후 일본과 한국을 차례로 방문했다. 그는 26일 '한국 정부와 여권이 미국 편에서 대중국 압박에 동참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려는 거냐'는 한국 취재진에게 "세계에 미국만 있는 건 아니다"며 "중·한은 가까운 이웃으로 친척처럼 자주 오가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 미국에 지나치게 기울지 말라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미 국무부는 6·25전쟁을 두고 “북한이 중국의 지원을 받아 한국을 침공해 시작됐다”며 이에 대한 중국의 역사관은 ‘공산당의 선전’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왕 부장 방한에 맞춰 견제구를 던진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중국은 6·25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 전쟁이라 부르며 책임을 회피해왔다. 이날 케일 브라운 미국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70년간 중국 지도부는 책임을 피하려고 자국민에게 6·25전쟁을 호도해왔다”며 “중국 당국자들, 언론, 심지어 교사들은 여전히 6·25전쟁을 ‘항미원조’라 부른다”고 꼬집었다.

미 국무부가 장진호 전투가 발발한 11월 27일보다 이틀 앞선 25일 추모 메시지를 올린 건 왕 부장을 겨냥한 거란 분석이 우세하다. 왕 부장 방한이 바이든 차기 정부의 한·미·일 삼각공조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란 시각에서 한·미동맹을 강조해 중국의 역사 왜곡을 지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해리스 대사도 이날 미국 민간단체 ‘아시아 소사이어티’가 개최한 화상회의에서 “오늘날 한·미 동맹은 여러 세대에 걸친 사람들의 깊은 관계에 의한 공동 관심사와 공유 가치, 경제적 이익을 통해 강화되는 다차원적 파트너십”이라고 강조했다.

대사는 "올해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국의 형제·자매와 함께 싸운 유엔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한·미 양국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의 방한도 조율 중이다. 날짜는 내달 초쯤일 것으로 예상된다.

왕 부장의 방한 직후 비건 부장관의 방한이 확정되면 약 2주 간격으로 미·중 고위급 외교 사절이 한국을 찾게 된다. 미 정권 교체기 미국과 중국의 동아시아 외교 시계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것.

26일 미국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바이든 정부가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비전에 필수적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비전에 있어 한국이 방어벽 역할을 할 잠재력이 있는데도 한미동맹은 20세기 유산의 수렁에 빠져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래를 향한 미국의 비전에 필수적 역할을 하게 하면 양국은 북한 등 동북아 지정학적 위험에 더 잘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국의 비전에 필수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을 지우려는 미국에게 한국은 어떤 스탠스를 취할 수 있을까.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방한 여부와 시기에 대해 저울질하고 있을 한국 외교당국에 '한미동맹이 수렁에 빠져있다'는 미국 연구기관의 날선 지적은 고민의 무게를 깊게 한다.

'다시 물밑으로'시진핑 방한론…美·中경쟁 속 고차방정식

(베이징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현지시간)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코로나19 방역 공로자 표창대회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 AFP=뉴스1(베이징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현지시간)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코로나19 방역 공로자 표창대회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일단은 유보다. 코로나19(COVID-19) 확산에 대한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여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여건이 성숙하자마자 방문이 성사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언급처럼
조 바이든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과 중국 간 전략경쟁이 변곡점을 맞게 된 상황에서 시 주석 방한이 갖게 될 다각적 의미를 두고 득실 계산이 치열하게 이뤄질 걸로 보인다.

중국이 시 주석 방한을 추진할 이유는 많다. 내년 1월 들어설 바이든 정부는 동맹 복원에 주안점을 두고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는 구도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으로선 바이든 정부 구성 전 한중·중일 관계 관리 필요가 커진 상황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외교적 고립을 겪어 온 중국이 이를 타개하기 위한 활로로 시 주석 방한을 추진할 수도 있다. 바이든이 후보 시절 밝힌 것 처럼 내년 미국 주도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열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고립이 더 부각 될 걸로 보인다.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과의 양자 관계 부각으로 이른바 서방세계의 체제 우위론을 희석하려 할 수 있다.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을 시 주석이 방한하는 외교 이벤트는 한중 양자 관계를 넘어 미중 전략경쟁 속 분명한 대미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한국은 중국이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에 앞장서는 국가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기에도 더할 나위 없는 외교 파트너다. 여기에 시 주석 방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에 대한 답방이라는 자연스러운 형식을 취할 수 있고, 기업인 신속입국제도 등 기존 성과로 방역협력을 내세울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은 시 주석 방한이 국제사회에서의 외교적 고립을 벗어나려는 조바심으로 읽힐 수 있는 측면을 고려할 수 있다. 미국의 동맹국과 틈을 벌리려는 시도로 해석돼 미국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면 잃는 게 더 많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미 일본을 거쳐 한국에 오는 왕 위원의 행보를 두고 '한미일 협력 견제'란 해석이 뒤따른다.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이 중국 입장에서 시 주석 방한 카드를 현시점에 쓸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전직 외교 고위당국자는 “중국은 철저하게 현실주의적인 외교를 한다”며 “시진핑 주석 방한 역시 자국에 대한 득실을 따져 결정할 것”이라 했다.

(도쿄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4일(현지시간) 도쿄에서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기자회견을 마치고 떠나고 손을 흔들고 있다.  ⓒ AFP=뉴스1(도쿄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4일(현지시간) 도쿄에서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기자회견을 마치고 떠나고 손을 흔들고 있다. ⓒ AFP=뉴스1
실무적인 차원에서의 고려요소도 남아있다. 한중 양국이 실무협상과 고위급 회담을 통해 어떤 의제를 어느 수준에서 합의할 수 있느냐 여부도 변수다. 중국은 한국에 남북·북미관계 공조와 경제협력 강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갈등 후 중국이 비공식적으로 가해 온 대 한국 규제, 이른바 한한령의 완화 정도를 줄이는 계기와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

또 중국이 미국의 역내 영향력 확대 견제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중 양국이 사드 갈등을 봉합한 이른바 3불(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가입, 한미일 협력의 군사동맹화)의 구속력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정부는 이른바 이 3불이 중국 당국과의 '약속'이 아니란 입장을 밝혀 왔다.

공식 성명 등 공개적으로는 언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의제들이나, 일각에선 중국이 한국에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를 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한중간 세부 의제에 대한 합의 수준에 따라 정상회담 성사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한중 모두 국내적인 '성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일 300명대를 이어가는 등 3차 유행이 현실화된 점도 변수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의 경우 어느 경우에든 '명분'이 될 수 있다. 한중 양국의 합의를 이행하지 못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만약 시 주석 방한이 성사된다면 코로나19로 어려운 와중에도 한중 양국이 고위급 교류를 이어갔다는 긍정적 측면을 부각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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