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비밀을 침해한 장간과 채부인…통신비밀보호법위반죄의 무서움

머니투데이 남민준 변호사 2020.11.2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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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남 변호사의 삼국지로(law)]38

편집자주 게임과 무협지, 삼국지를 좋아하는 법률가가 잡다한 얘기로 수다를 떨면서 가끔 진지한 내용도 말하고 싶어 적는 글입니다. 혼자만의 수다라는 옹색함 때문에 약간의 법률얘기를 더합니다.

대화의 비밀을 침해한 장간과 채부인 그리고 통신비밀보호법위반죄의 무서움(?)
연의에 등장하는 인물 중 아주 잠깐 스쳐가는 인물이라 기억하기도 쉽지 않은 채부인과 장간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타인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점인데요.

채부인은 후사 문제에 관해 얘기하는 유표와 유비의 대화를 엿들었고(이후 채부인과 채모는 유비를 죽이려 합니다),



조조의 간자였던 장간은 이를 알아 챈 주유의 계략에 빠져 오히려 자신이 주유를 속이는 것으로 생각하여 주유와 채모 사이의 편지를 몰래 읽고 주유와 부하 사이의 대화를 엿들어 조조에게 전달하였습니다(사실 채모의 편지, 주유와 부하의 대화는 모두 주유의 계략이었고 이후는 익히 아시는 것처럼 채모가 처형되고 수전에 익숙치 않은 조조의 군대는 적벽대전에서 대패하게 됩니다).

현행법상 단순히 타인간의 대화를 엿듣는 행위를 범죄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주 예전이야 오늘날과 같은 전자기기들이 없으니 대화를 녹음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지만 요즘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필요에 따라 대화를 녹음하기도 하는데,


자신이 화자로 참여 중인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현행법상 죄가 되지 않지만 자신이 참여하지 않는 대화, 그러니까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위반죄가 됩니다.

앞서 이런 저런 이유라고 적었지만 사실 굳이 대화를 녹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증거확보 차원이겠죠.

일단,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한 통신비밀보호법위반죄의 법정형에는 벌금형이 없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유죄로 인정되면 곧바로 ‘금고이상의 형선고’에 해당하는 경우인데요.

공무원의 경우라면 위와 같은 사유가 결격사유 또는 퇴직사유에 해당할 수 있어 행위(타인간 대화녹음)로 인한 처벌을 제외하더라도 행위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법정형에 벌금형이 없는 비슷한 예로 ‘뇌물죄’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형사처벌은 물론 공무원의 신분, 나아가 퇴직연금에까지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간단히 퇴직연금 중 자기기여분만을 받을 수 있어 연금의 절반 가량이 지급되지 않는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최근에는 검사장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과정에서 현직 차장검사가 ‘독직폭행’으로 기소된 일이 있었습니다.

‘독직폭행죄’ 역시 법정형에 벌금형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독직폭행’으로 기소한 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입니다. 위 죄는 수사기관이 고문 등으로 피의자의 자백 등을 받아 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규정된 것인데 휴대전화를 뺏는 과정에서 유형력이 사용되어 ‘폭행’이라 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행위자가 그 당시 검사장이었던 피의자에게 폭행을 가해 진술을 확보하려는 의사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례를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공무원인 아내가 남편의 불륜을 확신하고 몰래 남편의 차에 i) 녹음기 ii) 동선을 파악하기 위한 GPS를 설치한 후,

이혼소송에서 남편의 불륜증거로 차에서 나눈 남편과 상간녀의 대화, GPS 자료에 바탕한 남편의 위치정보를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혼소송만 놓고 본다면 남편의 불륜증거는 요즘 자주 쓰는 표현으로 ‘차고 넘치니’ 공무원인 아내가 승소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남편은 아내가 제출한 증거에 관해 통신비밀보호법위반죄(타인간 대화녹음)와 위치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죄(GPS를 이용한 위치추적)로 공무원인 아내를 고소할 수 있는데,

아내 입장에서는 이혼소송을 이긴다 하더라도 남편의 형사고소에 의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직장을 잃게 되면 이혼소송에서의 승소가 별 의미가 없게 됩니다(아내에게 대리인이 있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 대리인 혼 좀 나야겠죠…).

실제 사례에 있어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어 억울하지만 이혼소송의 원고가 이혼 및 위자료 청구를 포기하고 오히려 피고에게 금전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소송을 마무리한 경우가 있었습니다(물론 피고도 통비법위반행위에 관해 문제 삼지 않기로 하여 고소취하 후 원고에게 기소유예처분이 내려졌습니다만).

휴대폰마다 녹음기능이 있고 휴대폰의 종류에 따라 전화통화 자체를 녹음하는 기능이 있는 앱도 있어 타인의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가 삶에 미치는 영향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타인의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됨은 물론이거나 어떤 경우에는 행위자의 상황이나 직업에 따라 그 행위로 인한 여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한 번 짚어 보기 위해 이 글을 적었습니다.
대화의 비밀을 침해한 장간과 채부인…통신비밀보호법위반죄의 무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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