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명함이 없습니다[웰빙에세이]

머니투데이 김영권 작은경제연구소 소장 2020.11.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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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에세이] 빼기:道 -5 / 명함을 주고받는 사이와 명함 없이 만나는 우리

나에겐 명함이 없습니다[웰빙에세이]


왕년에 기자할 때는 넘치도록 명함을 주고받았습니다. 지금은 그럴 일이 없습니다. 그런 일이 있어도 난감합니다. 나에겐 명함이 없습니다.

어떤 분이 명함을 탁 내밉니다. 어떤 것은 눈에 쏙 들지요. ‘흠, 이거 책갈피로 쓰면 좋겠군!’ 대개는 그저 그렇습니다. ‘이거 어디에 쓰나?’ 명함을 받았으니 나도 드려야 하는데 드릴 게 없습니다. 조금 미안하지요. 나는 엉거주춤 이름을 중얼댑니다. 전화번호라도 드릴까 살핍니다. 그리곤 속으로 생각하지요. ‘나도 명함을 하나 팔까?’



그렇다면 명함엔 뭐라고 쓰나요? 이름과 전화번호만 달랑 쓰나요? 이 에세이 칼럼엔 ‘작은경제연구소장’이라는 직함을 써왔는데 이를 옮기고 싶진 않군요. ‘작은경제’를 지향하는 건 맞지만 그걸 연구하면서 살지는 않으니까요. 책을 서너 권 냈으니 ‘작가’라고 쓰면 어떨까 싶은데 역시 내키지 않습니다. 나는 평소에 ‘작가’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기 때문이지요. 사실은 누구나 자기 삶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선 나만 작가인 것도 아닌데 굳이 나만 작가인 척할 이유도 없습니다.

기자 시절에는 한 달에 명함 한 통이 부족했습니다. 그만큼 받는 명함도 많아서 명함철이 넘쳤습니다. 주기적으로 정리하고 관리하고 되새김하는 것도 일이었지요. 그러지 않으면 얼굴과 이름이 따로 놀아 얼굴은 알겠는데 이름이 안 떠오르거나, 그 반대가 되곤 했습니다. 이 명함이 어디서 굴러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았지요.



명함으로 만나는 사이는 대개 금방 끝납니다. 일 때문에 서로 필요해서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용무가 사라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물론 어떤 만남에서도 배울 게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다들 너무 바쁘고 여유가 없습니다. 마음을 열고, 정을 나누는 관계로 키울 수 없습니다. 아파트에 콕 박혀 살고, 성적과 실적에 매달려 살고, 일에 파묻혀 사는 우리들! 우리 관계는 겉으로만 넓고 얇게 퍼집니다.

도시를 떠나 산골로 오니 그 반대가 되는군요. 일로 얽힌 번다한 관계가 떨어져나가는 대신 이웃과 사귀는 친밀한 관계가 생겨납니다. 관계가 좁고 깊어지는 거지요. 이웃끼리 만나는 데 구태여 명함을 주고받지 않습니다. 계급장 떼고 그냥 맨몸으로 만납니다. 그런데 나에겐 그게 어색했지요. 내세워 광고할 것도 없고, 매너나 교양 같은 것으로 가릴 것도 없는 내남 없는 만남들이 부담스러웠지요. 일 말고 정으로, 고객 말고 이웃으로, 남남 말고 우리로 만나는 일에 나는 무척 서툴더군요. 나의 만남은 늘 용무를 밝히는 자리였지 나를 드러내는 자리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로 그 자리, 나를 드러내는 자리에 서서 나를 돌아봅니다. 당신과 만나려는 나, 그 나는 누구인가? 명함 한 장 없는 나는 누구인가? 당신과 만나기에 앞서 나는 나를 만난 적이 있던가? 내면의 나를 만나 사귀고 이해하고 사랑한 적이 있던가? 당신을 만났을 때 버벅대는 것은 드러낼 내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이 아닌가?


하여 당신이 나를 막막하게 하는 건 얼른 나부터 만나라는 신호군요. 당신을 통해 나를 끄집어내고 당신의 거울에 비추어보라는 뜻이로군요. 당신, 고맙습니다. 명함에 가려 우리는 만날 틈이 없었습니다. 명함이 뻐근해질수록 나는 나를 잊었습니다. 명함이 나인 줄 알았습니다. 이제 명함을 내려놓고 내가 누구인지 묻습니다. 번지르르한 명함을 다 던져 버리고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노바디’가 될 때 그때 비로소 내 안에서 나만의 ‘섬바디’가 드러나지 않을까요. 그때 비로소 당신과 나의 진정한 만남이 시작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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