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버 드라이버와 쿠친의 시대[송정렬의 Echo]

머니투데이 송정렬 산업2부장 2020.11.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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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이방인에게 차량공유 플랫폼 우버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색다른 재미와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우선 ‘샐러드볼’로 불리는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인종과 나이대의 우버 드라이버들을 만날 수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닮은 듯한 백발의 백인 할아버지부터, 조수석에 하이힐을 벗어놓고 운전대를 잡은 젊은 히스패닉 여성, 거대한 덩치와 진한 향수냄새에 살짝 위축되는 흑인 아저씨까지.

캠리 등 일본차들이 대부분이지만, 여러 나라의 다양한 차를 타보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목적지 도착시간까지 펼쳐지는 우버 드라이버와의 프리토킹도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북한 핵부터 트럼프, 김정은, 한국음식까지 대화주제는 어디로 튈지 몰라 나름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가끔 우버 탑승시 가급적 말을 삼가는 경우가 있다. 우버 드라이버가 한국인일 때다. 타는 사람, 운전하는 사람도 모두 조심스럽다.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는 가급적 입을 닫는다. 한인 교포사회가 좁아 한 두 다리 건너면 알 수도 있어서다. 무엇보다 여전히 ‘직업엔 귀천이 있다’는 우리의 케케묵은 직업인식 때문이다. 우버 드라이버가 내놓고 자랑할 만한 일자리는 아닌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부끄러운 것도 아닌 데 말이다. 시대 역행적 풍경이다.

#코로나19(COVID-19)로 경기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0월 실업률은 3.7%로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청년실업률이다. 무려 8.3%에 달한다. 이들 청년들에게 '영끌'을 통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는 배부른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오늘도 실업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이 주목을 받는다. 최근 국내 기업 중에서 일자리 창출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기업이 있다. 바로 쿠팡이다. 쿠팡은 로켓배송만큼 빠른 속도로 직원 수를 늘리고 있다. 쿠팡과, 쿠팡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쿠팡풀필먼트코리아는 9월말 국민연금 가입자 수 기준으로 무려 4만3171명을 고용하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분야 대기업인 삼성전자(10만4723명)와 현대차(6만8242명)에 이어 당당히 3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LG전자(4만500명)를 앞질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쿠팡이 비정규직을 양산한다고 비난한다. 정규직보다는 계약직이나 단기직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쿠팡의 배송직원인 ‘쿠친’(옛 쿠팡맨)의 정규직 비율은 20% 미만으로 알려졌다. 이를 고려하면 일면 타당한 지적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이른바 임시직 중심의 긱(Gig)경제의 고용 특성을 무시한 비판이다. 기존 정규직 중심의 고용형태를 고집하는 경직된 시각의 반영일 뿐이다.

기술발전에 따라 산업구조와 비즈니스모델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당연히 이에 맞춰 고용형태도 바뀌고 있어 고용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해야만하다. 주로 대학생이나 코로나19로 당분간 가게 문을 닫은 자영업자들이 쿠팡 등 플랫폼에서 계약직, 단기직으로 일하기를 선호한다. 회사가 정규직 전환을 권유해도 꺼린다. 상시직 전환은 결코 그들의 목표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노동력을 제공하기를 원한다.


플랫폼 시대다. 국내 플랫폼 노동자수는 이미 2019년 기준 53만8000명을 넘어섰다. 더욱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플랫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더불어 기술혁신 등으로 인한 노동환경변화는 ‘9 to 6’로 상징되는 원잡보다는 투잡, 쓰리잡이 보편화되는 시대를 앞당길 것이다. 그 시대를 대비하는 첫 단추는 여전히 일자리를 ‘귀한’ 정규직과 ‘천한’ 비정규직으로 구별하는, 낡고 고정된 사고를 탈피하는 것이다.
우버 드라이버와 쿠친의 시대[송정렬의 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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