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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세]혁신은 청바지에서 오지 않는다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0.1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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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제임스 다이슨과 다이슨 전기차 컨셉트 그래픽. /머니투데이DB제임스 다이슨과 다이슨 전기차 컨셉트 그래픽. /머니투데이DB




최근엔 과거 명성만 못하지만 맞벌이 부부에게 여전히 구세주 같은 기업 중 하나가 다이슨이다. 다이슨의 주가가 절정기였던 시절은 대표제품인 무선청소기를 처음 내놨을 때가 아니라 전기차 프로젝트를 발표했을 때였다. 재작년 다이슨이 청소기 모양을 한 전기차 컨셉트의 광고를 냈을 때 뒷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이런 게 4차 산업혁명이구나" 했던 선배가 있었다. 자동차 내연 엔진이 전기모터로 바뀌는 기술의 진보 앞에서 청소기 모터를 만드는 회사조차 자동차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네번째 산업혁명의 핵심이구나 했단다.

어느 분야에서든 혁신을 이룬 이들은 이미 이뤄진 무언가에 자그마한 모래 한 알을 얹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혁신이 손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지 않음을 지적하는 얘기다. 무선청소기와 날개없는 선풍기, 헤어드라이어로 잇따라 혁신의 성공 사례를 쓴 다이슨이나 여전히 매년 혁신의 기대감을 품게 만드는 애플 모두 '새롭지 않은 새로움'으로 세상을 놀래킨 기업들이다. 호사가들이 아이폰을 두고 '기존 기술의 짬뽕'이라고 깎아내릴 때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다"고 받아쳤다. 혁신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지난해 다이슨이 전기차 프로젝트를 접었을 때 실망한 이들이 다이슨 직원이나 주주에 그치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다이슨의 좌절은 시장이 얼마나 냉혹한지와 더불어 역설적으로 '자그마한 모래 한 알'을 올리는 그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다이슨의 전기차 프로젝트는 대표적인 혁신 기업이 경험한 혁신의 실패로 회자된다. 다이슨의 전기차가 성공했다면 코앞까지 다가온 듯하면서도 여전히 잡히지 않는 4차 산업혁명 혁신의 또다른 거대한 사례가 됐을 터다.



한때 우리 기업들에서도 해외 혁신기업 따라잡기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복장 자율화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해외기업들처럼 직급을 없애고 호칭을 바꾸는 것을 혁신을 위한 금과옥조인냥 떠받드는 기업이 적잖다. 그나마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테지만 평가가 호의적이진 않다. '청바지 입은 꼰대', '무늬만 혁신' 같은 냉소적인 반응이 넘실댄다. 복장 자율화를 내걸었던 4대 그룹 한 계열사는 사무실 에어컨을 고치러 온 수리기사가 청반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출입을 가로막은 일이 알려지면서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수박 겉핡기식 혁신의 해프닝이다.

모래 한 알 얹는 작업이라고 해서 혁신이 하루 아침에 이뤄질 리는 없다. '아마존을 이긴 혁신 스타트업'으로 유명한 미국 모바일 결제업체 스퀘어의 창업자(짐 맥겔비)는 올초 언론 인터뷰에서 "스퀘어는 애초 혁신을 추구한 기업은 아니었다"며 "'승리'의 과정 또한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거칠고 좌충우돌이었다"고 돌이켰다. 보이는 결과는 혁신의 승리지만 실제 스퀘어를 살아남게 한 것은 '이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소한 문제 해결의 연속이었다는 고백이다.

아마존 매출의 100만분의 1에도 못 미쳤던 이 작은 스타트업은 혁신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문제들, 이를테면 약간의 수수료와 약간의 디자인, 약간의 소프트웨어를 개선하는 지난한 과정 끝에 아마존을 밀어냈다. 아마존이 막강한 자본력과 인지도를 발판으로 스퀘어 따라잡기에 나섰을 때 스퀘어를 살린 것도 축적된 혁신의 힘이었다.


보여주기식 혁신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한번의 혁신이 성공한 혁신 기업을 만들지도 않는다. '청바지'를 앞세우는 한 혁신은 여전히 먼 얘기다. 혁신은 절대 청바지에서 오지 않는다.

[우보세]혁신은 청바지에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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