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오늘 운명의 날…KCGI 가처분 심문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박광범 기자 2020.11.2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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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사업부 팔고 오너일가 사의...대한항공 25일 회생고비 넘을까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인수(자료사진) / 사진=인천=이기범 기자 leekb@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인수(자료사진) / 사진=인천=이기범 기자 leekb@


대한항공은 올초부터 경영권 분쟁과 코로나19(COVID-19) 직격탄을 맞았다. 곧바로 사업부를 분리해 매각하고, 유휴 부동산을 팔았다. 조원태 회장을 제외한 오너 일가는 경영에서 퇴진키로 하고, 이번엔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으로 정부의 경영감시라는 족쇄를 달아야 했다. 기업사(史)에 유례를 찾기 힘든 대한항공(한진그룹)의 시련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가운데 25일엔 법원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회사 정상화의 큰 고비를 맞는다.

아시아나항공에 가려져 있지만 대한항공 위기도 쉽게 볼 수 없다. 그런데도 대한항공-KDB산업은행 간 '아시아나항공 빅딜'은 특혜논란을 계속 낳고 있다. 항공업계는 물론 재계에선 "대한항공이 부채 덩어리 아시아나항공을 떠안고 경영권 감시까지 받게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가 10조원에 달하는 데다 산업은행이 '경영진 불신임'을 전제로 한진그룹 경영능력을 매년 평가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지난 1년은 혹독한 경영정상화 시간이었다. 경영권 분쟁의 반대편에 있는 KCGI의 공격에 시달리는 와중에 코로나19로 국제선은 순식간에 손님들이 끊겼다. 고육지책으로 유상증자와 함께 알짜 사업부인 기내식·기판사업을 9906억원에 매각했다. 제주도 호텔 부지도 팔았고, 종로구 송현동 부지 매각 작업도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화물 수송량을 늘리며 가까스로 적자는 면했지만 자금 유동성은 최악이다.

여기에 아시아나 채권단의 경영간섭도 이미 시작됐다. 산은의 요구에 따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제외한 오너 일가는 지주회사인 한진칼을 포함한 한진그룹 항공 계열사 경영에서 물러나야 한다. 고 조양호 회장의 미망인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막내딸 조현민 한진칼 전무도 연말 인사에서 타이틀을 내려놓는다.



25일 법원에서 진행하는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은 또 하나의 큰 고비다. 법원이 이 신청을 인용할 경우 아시아나항공과 딜은 무산되며 한국 항공업계 구조개편은 끝내 무산될 수 있다. 자회사들인 LCC(저비용항공사)들은 더 큰 경영난에 휘말리며 고사 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다.

대한항공으로선 자체 생존은 물론 항공업계 구조조정의 핵심 역할에 대한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거버넌스(지배구조) 개선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여기에 왕산레저개발 등 남은 자산 매각도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 회생의 고비를 아직도 넘고 있다는 의미다. 특혜라고 보기엔 남은 과제들이 너무 많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항공업계 전체가 내부 문제를 푸는데 집중해야 할 상황에서 대한항공은 여러 가지 외부 변수에 휩쓸리게 됐다"며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차질없이 재무구조와 지배구조 개선작업을 진행하자는 게 내부 분위기"라고 말했다.


우경희 기자

KCGI 가처분신청 오늘 첫 심문…"딜 깨질라" 산은도 총력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항공기가 인천공항에 주기돼있다./인천=이기범 기자 leekb@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항공기가 인천공항에 주기돼있다./인천=이기범 기자 leekb@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 통합의 '첫관문'인 KCGI(강성부펀드)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 소송을 앞두고 KDB산업은행(이하 산은)이 거래성사를 위해 여론에 호소하고 의원들을 설득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24일 금융권과 항공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이승련 수석부장판사)는 25일 오후 5시 KCGI가 제기한 가처분신청 첫 심문기일을 연다. 산은의 한진칼 유상증자 납입기일이 12월 2일이므로 법원은 이르면 이번주 KCGI의 신청을 인용할지, 기각하지 결정을 내릴 전망이다.

산은은 거래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두 차례의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연 뒤 추가로 입장문을 냈다. 산은은 한진칼 제3자 배정 방식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게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백기사'가 되려는 것이 아니냐는 KCGI 측의 주장에 대해 조 회장의 경영권 보호 목적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산은은 현 경영진의 윤리경영과 건전경영을 감시하기 위해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사외이사 3인 지명권, 계열주 일가의 한진칼과 항공 관련 계열사 경영참여 금지 등 강력한 견제장치를 마련해 둔 점을 내세운다. 실제로 조현민 한진칼 전무는 최근 전무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경영권을 노리는 KCGI가 거래의 본질을 경영권 분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본다. 허희영 항공대 교수는 "본질은 경영권 분쟁이 아니라 국민세금을 제대로 쓰면서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을 처리하고 항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KCGI가 경영권에만 욕심을 내니 백기사 프레임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국회 정무위 여당 의원들이 이번 딜을 두고 조 회장에 대한 '특혜 의혹'을 제기하자 국회를 찾기도 했다. 정무위 여당 관계자는 "산은이 조 회장에 대한 특혜가 아닌 점을 적극 설명했고, 정무위원들은 일단 지켜보기로 한 상태"라고 했다.

'대한항공+아시아나' 오늘 운명의 날…KCGI 가처분 심문
이처럼 산은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건 법원 판결 전에 여론전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KCGI가 연일 성명 배포 등을 통해 여론전을 펼치는 상황에서 자칫 가만히 있다간 법원 판결에 불리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법리적 판단을 중시하는 법원은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여지면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이고 산업적 중요도를 감안해 산은으로서도 여론전에서 밀리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원이 만약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 그 후폭풍은 상당할 전망이다. 2차례 매각 시도가 불발되는 아시아나항공은 기존 계획대로 채권단 관리 하에서 재매각을 노려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에는 작년과 올해 3조6000억원의 정책자금이 지원됐다. 채권단 주도로 회생할 수 있을지, 국민들의 혈세가 얼마나 더 투입돼야 할지 불투명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한 '국내 항공산업 재편을 통한 국제 경쟁력 확보'라는 정부의 구상 자체도 틀어질 가능성이 높다. 항공산업 종사자 10만여명의 일자리도 흔들릴 수 있다.

박경담 기자

한진그룹 "가처분 인용시 대안없다…KCGI 심각한 왜곡·거짓주장" 반박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인수(자료사진) / 사진=인천=이기범 기자 leekb@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인수(자료사진) / 사진=인천=이기범 기자 leekb@
한진그룹이 한진칼 신주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 "가처분 인용으로 인수 무산시 대안이 없다"며 KCGI(강성부펀드)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KDB산업은행과 이면합의가 있다는 KCGI의 주장 역시 "명백한 거짓"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보탰다.

24일 한진그룹은 입장문을 내고 "법원에서 가처분 인용 시 거래 종결의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인수는 무산된다"며 "(KCGI의 주장은) 연말까지 아시아나항공에 자본확충이 되지 않을 경우 자본잠식으로 관리종목 지정이 되는 것은 물론 면허 취소까지 발생하는 등 심각한 상황임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은이 한진칼 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인수 절차가 이뤄지는 것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지분 유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산은이 통합절차의 건전한 견제와 감시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한진그룹측은 "만약 가처분 신청 결과에 따라 이번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될 경우 그로 인한 항공산업의 피해, 일자리 문제 등의 책임은 모두 KCGI에 있다"고 강조했다.

산은과 경영권 보장을 위한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KCGI의 주장에 대해서는 "명백한 거짓"이라며 "경영권 보장, 이면 합의를 운운한 근거를 명명백백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한진그룹은 "투자합의서 내용은 경영권 보장이 아닌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감시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며 "산은도 항공산업 구조 개편 작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독립적 의결권 행사를 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고 했다.

산은이 비항공계열사 경영을 방치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항공산업 경쟁력’을 위한 것이므로 비항공 계열사의 사업에 관여할 이유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항공사 감독을 포기했다는) KCGI의 주장과 달리 산은은 한진칼 및 항공사 통합의 주체인 대한항공에 대해 동일하게 사외이사, 감사위원 선임의 권리를 갖고 있으며 진에어의 경우 사전 협의 및 동의권을 바탕으로 견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채권자의 지위에서도 산은이 제시한 7대 의무 등 경영감시가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주주 지위에서의 회사 경영감시는 단순히 채권자의 지위에서의 회사 경영 견제와 완전히 다르다"고 반박했다. 한진그룹은 "산은은 이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총 4조8000억원의 정책자금을 투입한 상황"이라며 "책임있는 역할 수행 방안이 없으며 항공산업 구조 재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주주로 참여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진그룹은 이어 KCGI가 "부실항공사 통합이 절박하다면서 구조조정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통합 후 직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이자 시세 차익만 추구하는 전형적인 사모펀드의 전형이라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한진그룹은 "그간 KCGI에서는 일본항공(JAL) 회생을 모범사례로 제시해왔는데 실제로는 일본항공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약 수조원의 채무면제와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전체 인력의 34%에 해당하는 1만6000여명의 인력이 대량 해고됐다"며 "KCGI는 일본항공의 경우와 같은 고통분담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해 대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진그룹은 "증자대금의 규모를 합병까지 소요가 예상되는 2~3년간 아시아나항공이 독립된 회사로 유지·운영하는데 필요한 재무구조와 현금흐름을 감안해 산정했다"며 "추후 실사과정을 통해 더욱 세부적인 현황을 파악하고 통합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진그룹은 "존폐 위기의 항공산업이 처한 시급성을 감안해 진행된 이번 인수 절차를 ‘투기자본행위’로 모는 KCGI의 주장은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이 어찌되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이기적인 행태로 밖에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주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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