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중국발 한류스타 논란 어떻게 봐야 하나?

박만옥(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0.11.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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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스타에 대한 공격은 여전한 관심의 표현

지난 10월 BTS의 리더 RM이 밴 플리트 상 수상 소감으로 “(한·미)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 일부 중국 누리꾼들이 “중국군 희생을 무시했다”고 비난했고, 환구시보 등 매체가 논란을 부추겼다. 사진출처=영상캡처 지난 10월 BTS의 리더 RM이 밴 플리트 상 수상 소감으로 “(한·미)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 일부 중국 누리꾼들이 “중국군 희생을 무시했다”고 비난했고, 환구시보 등 매체가 논란을 부추겼다. 사진출처=영상캡처


#1. 한국 교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중국 베이징 동북부 왕징(望京)의 한 한식당. 간판에는 ‘해장국’이라고 쓰여 있지만 인기 많은 메뉴는 따로 있다. 곱창구이다. 식당 문 열기 1∼2시간 전부터 줄을 서기 시작해 좁은 복도가 꽉 찬다. 손님들은 거의 다 중국인들이다. 한국 교민들이 해장하러 찾았던 이 곳이 중국인들의 곱창 성지가 된 것은 화사 덕분이다. 2018년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혼자 곱창집에 방문해 맛있게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됐고, 이에 중국 인플루언서들이 가세하면서 폭발적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덕분에 이웃 고깃집도 메인 메뉴를 곱창으로 바꿨다.

#2. 중국 최대 평점사이트인 도우반(豆瓣)에는 올 2월 종영한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8.2점(10점 만점)으로 ‘고득점’을 받았다. 평점에 참여한 이들만 무려 17만명이 넘는다.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라이브온' '산후조리원' '펜트하우스'도 이미 평점 리스트에 올라있다.



2016년 7월 한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확정된 후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 콘텐츠 제한)가 본격화된 지 4년이 넘었다. 이듬해 10월 양국이 사드 봉합에 합의한 이후에도 한류 콘텐츠 제한 벽을 허물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중국은 한한령 아래에 있지만 한류에 대한 수요가 수그러든 것은 아니다. 중국의 ‘한국 드라마’를 뜻하는 ‘한쥐(韓劇)’ TV, 한쥐왕(韓劇網) 등 사이트를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한류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중국에서는 판권만 판매되고 개봉은 되지 않았지만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공청단) 베이징시 위원회 산하의 베이징청년보에서 관련 논평을 내놓았을 정도다.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에서 주목받은 “꽃길만 걷자”는 중국에서 ‘조우화루(走花路)’로 직역돼 자리잡았다. 한류 콘텐츠 인기와 이로 인한 파급력은 한한령 하에서도 여전한 셈이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중국에서 공식 방영된 적이 없지만 중국 최대 평점사이트 도우반에는 이미 17만명의 누리꾼들이 평가에 참여했다. 사진제공=CJ E&M <br>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중국에서 공식 방영된 적이 없지만 중국 최대 평점사이트 도우반에는 이미 17만명의 누리꾼들이 평가에 참여했다. 사진제공=CJ E&M
최근 몇 달 새 불거진 중국 내 방탄소년단(BTS), 이효리, 블랙핑크 논란은 역설적으로 한류의 파워를 보여준다.


지난 10월 BTS는 한·미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밴 플리트 상’을 받았다. 리더 RM은 수상 소감으로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한·미)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많은 이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일부 중국 누리꾼들이 “중국군의 희생을 무시했다”고 비난한 것이다. 앞서 8월에는 가수 이효리가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예명을 고민하다 “마오 어때요”하고 한 것을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을 비하한 것이라고 몰고 가기도 했다. 최근에는 걸그룹 블랙핑크가 중국 ‘국보’로 꼽히는 희귀 동물 판다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장갑을 착용하지 않았다”고 공격했다.

한류 스타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중국 누리꾼들이 얼마나 주목하고 있는지, 또 한류 스타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한편으로는 이 논란을 부추긴 매체의 특성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일부 누리꾼들의 불만에서 그칠 수도 있었던 BTS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중국 환구시보다. 이 매체는 BTS의 수상 소감이 중국 네티즌의 분노를 일으켰다며 ‘BTS 불매운동’ 분위기를 보도했다. 강경 누리꾼들의 발언을 위주로 보도한 이 매체 보도를 연합뉴스 등 한국매체가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 누리꾼들을 한국 매체들의 기사에 달린 반중 성향 댓글을 번역해 SNS(소셜네트워크미디어)로 퍼 나르며 반한 감정을 부추겼다.

“한국 걸그룹 블랙핑크가 희귀 동물인 판다의 건강에 위험을 끼칠 수 있는 화장한 차림으로 아기 판다를 만지는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되고 있다”고 먼저 보도한 것도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다. 환구시보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로 극단적 애국주의 성향의 매체다. 국수주의 마케팅을 전면에 내세우며 성장했다. 사드 갈등이 한창이었을 당시에도 자극적인 보도로 중국 누리꾼들을 자극했다.

중국 주요 매체까지 나서 중국 누리꾼들의 반응을 일일이 중계하는 것은 한류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식석인 루트가 막힌 상황에서도 문화 콘텐츠 자체는 물론이고, 음식, 유행어 등 파생 영향력을 가지는데 대한 두려움을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워싱턴포트스트(WP)는 중국의 BTS 때리기를 두고 “중국이 BTS에 도전했다가 완전히 패했다”, “중국이 BTS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고 꼬집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으로 반중 감정이 올라가자 중국 당국은 애국주의를 더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코로나19에다 미국의 대중 압박이 높아지자, 그 불안감을 애국과 단결로 해소하려는 것이다. 6·25전쟁의 중국식 표현인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 70주년인 올해 중국은 예년보다 더 강하게 항미원조 정신을 강조했다. 미국의 압력이 높아진 상황에 “미국 제국주의에 대항했던 항미원조 정신”으로 맞서자는 의미다. 이 애국주의 광풍 속에서 BTS 수상소감으로 불똥이 튄 것으로도 해석된다.

문제는 앞으로 다. 중국 공산당은 제19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 회의(19기 5중전회)에서 14차 5개년(2021∼2025년) 계획으로 “문화 산업 발전으로 소프트파워를 키우겠다”고 선포했다. 문화 강국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한류 인기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처럼 중국 내 애국주의가 비정상적으로 한껏 고취된 상황에서는 어떤 것도 빌미가 될 수 있다.

한한령 해제 같은 한류 콘텐츠의 본격적인 교류에 앞서 리스크 관리도 요구된다. 갈수록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한류는 문화교류의 일등공신이 될 수도 있지만 첨예해지는 문화대립의 촉매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만옥(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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