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비밀의 방’이 나에겐 아직 없다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2020.11.21 07:00
글자크기

<221> 조용숙 시인 ‘어디서 어디까지를 나라고 할까’

[시인의 집]‘비밀의 방’이 나에겐 아직 없다


2006년 ‘시로 여는 세상’으로 등단한 조용숙(1971~ )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어디서 어디까지를 나라고 할까’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당당히 살고자 하는 열망과 살아가면서 겪는 애환 그리고 아픈 상처를 풀어놓고 있다. 시인은 “태초의 웅녀처럼/ 빛도 없는 동굴”(이하 ‘시인의 말’)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산 외할머니, 엄마와 나까지 여성 3대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여성성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남의 요리를 흉내 내는 기술은 없”(‘내 시의 레시피’)다는 조용숙의 시는 ‘걸판지다’는 말이 어울리는 사설 한마당 같다. 어쩌면 마당에서 각설이가 풀어놓는 해학과 풍자 같고, 주막 평상에 털퍼덕 주저앉아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며 “내 말 좀 들어보소” 하면서 풀어놓는 주모의 인생사 같고, 또 어쩌면 밭에서 김을 매는 아낙네의 구성진 소리 같고, 늙은 부모가 장성한 자식들에게 들려주는 가족사 같다.



‘조곤조곤’이나 ‘담담히’보다는 ‘당당히’ 가족사를 풀어놓고 있는 시인은 힘든 상황에서도 “기댈 곳을 구걸하지 않”는다. 늘 “해맑게 웃”고, 곰처럼 우직하게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가지만 “언제 튀어오를지 모를 용수철”(이하 ‘나이테’) 같은 서러움과 슬픈 자신이 드러날까봐 “제 안에 꾹꾹 눌러놓”는다. “썩어 도려낸 가슴 한 쪽에 돌멩이를 채워넣”고도 안 아픈 척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다.

“서슬 퍼렇게 날이 서 있던// 성질머리”(‘녹는점’)에 “한번 이치에 어긋난다 싶으면/ 여과 없이 발랑 뒤집히는 천성”(‘물구나무서기’)이지만 실상은 사랑하는 사람 “곁에 새색시처럼/ 살포시 눕”(‘동침’)고 싶은 천상 여성이다. 이런 시인을 드세게(드센 척하게) 만든 것은 “세상에 내던져놓고”(이하 ‘아모르 파티’)는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가난한 살림”(이하 ‘물구나무서기’), 불합리한 사회구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똑똑히 보란 듯이” 세상을 향해 발차기를 날린다.



추석날 오후
혼잣말을 되뇌는 엄마
니들 외할머니 성묘는 다녀갔것지
외할머니 성묘는 꼭 해야 쓴다
니들 사남매 다 니 외할머니가 받았어

큰애 너 듣고 있냐
너 낳을 적에 산도는 작은디 애는 크고 워쩌것냐
니 위로 죽은 자식을 둘이나 쏟았으니
외손자를 살려야 딸자식이 살것다 싶었것지
그래서 사금파리로 좁은 산도를 쫙 찢은겨
큰애 너 낳고 얼마나 쓰라리고 아프던지
한 이레는 쭈그려앉을 때마다 애를 또 낳는 것 같더라

워디 그뿐인 줄 아냐
장손 집안에 시집와 애도 하나 못 난다고
시집살이를 얼마나 시켰것냐
백마강 난간에 서서 강물을 빤히 보는디
울고 있는 니 외할머니 얼굴이 강물 위에 떠 있더라
그래서 못 죽고 돌아왔어


딱 칠 년 만에 목숨 걸고 아들 하나 겨우 낳았는디
고생했다는 말은커녕 순 꽁보리밥만 주니께
니 외할머니 마음이 또 워쩌것냐
사부인! 혹시 쌀 좀 없슈
독일 간 아들 치성 드릴 것밖에 없는디유
니 외할머니 딸 가진 죄인이라
암 말도 못하고 조용히 돌아서더니 날마다
쌀밥 한 그릇 품에 넣어와
나한테 멕이는겨

다 부모 맘이었것제
그땐 엄청 아프기만 했는디 지금 되돌아보니
니 아버지랑 밤을 십수 년이나 보내면서도
단 한번도 좋은 걸 몰랐응께
아마 그때 큰애 너 낳은 채로
둘째 셋째 넷째 낳고 그라고도 둘은 더 흘렸으니
뭐가 더 있었것냐

- ‘받아쓰기’ 전문


일찍이 이정록 시인은 “쏟아지는 어머니의 말씀을 받아 적”은 시집 ‘어머니 학교’를 냈다. 이정록 시인의 어머니처럼 조용숙 시인의 어머니 말씀도 한마디 한마디가 시(詩)로 태어난다. 시인은 생활 속에서 몸으로 익힌 어머니의 언어를 받아 적어 “집밥”(이하 ‘내 시의 레시피’) 같은 시를 쓴다. 하여 “자연에서 따온 바람과 이슬 맛을/ 최대한 살린 날것”이면서 향신료나 “조미료도 쓸 줄” 모르는 “자연이 준 가정식 요리” 같은 시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정품으로 제작되어 산골에서 평생/ 한 남자만 바라본 한살림 유기농”인 엄마를 “역시즌 초특가”(이하 ‘엄마를 팝니다’)로 판다고 한다. “음식 솜씨” 좋고, “홀시어머니 10년 똥오줌 수발”한 효부이고, “죽는 날 받아놓은 웬수 같은 남편” 죽는 날까지 “보살핀 의리파”이고, “유지 비용도 아주 경제적”이고, 3남 1녀 자식들은 덤이란다. 물론 엄마 자랑이다.

그런 엄마가 “추석날 오후/ 혼잣말로 되뇌”인다. 아버지 산소에만 가지 말고 “외할머니 성묘”도 다녀오라는 것이다. “니들 사남매” 낳을 때 “다 니 외할머니가 받았”기 때문이다. 역시 엄마의 잔소리는 “큰애”에게 먼저 향한다. 엄마는 “니 위로 죽은 자식을 둘이나 쏟았”다는 것을 담담히 풀어놓는다. 그때는 다 그랬다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마음이 “쫙 찢”어진다. 그게 엄마 마음이다.

외할머니 성묘로 시작한 엄마의 혼잣말은 어렵게 큰애를 낳은 이야기, 혹독한 시집살이로 백마강에 갔다가 “울고 있는 니 외할머니 얼굴이 강물 위에 떠 있”어 차마 죽지 못한 이야기, “칠 년 만에 목숨 걸고 아들 하나 겨우 낳았는”데도 시어머니가 구박한 이야기, “둘째 셋째 넷째 낳고”도 둘은 더 흘렸다는 이야기 등 끝없이 이어진다. ‘또 시작됐네’ 하며 딴청을 하는 자식, 받아적는 자식… 그래서 늙은 엄마의 추석은 더 쓸쓸하다.

1년 계약직 사회복지사 면접
합격자 발표날

소녀에게는 아직 한 달 반의
실업급여가 남아 있사옵니다
한껏 여유를 가장한 얼굴로 꼭두새벽부터
합격 통지서를 기다린다

떨어지거나 붙거나
알 수 없는 변곡점 앞에서
1년 시한부 수인을 자청하며 스스로를
가두는 시간

탈옥을 꿈꾸기엔
대출 고지서를 피해 몰래 숨어 있을
비밀의 방이 나에겐 아직 없다

- ‘그날이 오면’ 전문


먹고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실직 중인 시인은 “1년 계약직 사회복지사 면접”을 보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린다. “한 달 반의/ 실업급여가 남아 있”다며 여유로운 척하지만 “꼭두새벽부터” 눈이 저절로 떠진다. “비밀의 방”에 “몰래 숨어” 들어 시를 쓰며 살고 싶지만 “대출 고지서”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하여 시인은 “1년 시한부 수인을 자청”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다. 삶의 변곡점이다.

한밤중에 아들 내외 자는
방문 앞 서성이다
화장실 가는 아들 바짓가랑이 붙잡고
저기 혼자 사남유? 그럼 저랑 같이 살아유?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라
어느새 육순 바라보는 아들은
여보 어디 갔다 이제 왔남유
묻는 치매 걸린 어미 말에
지아비 먼저 보낸 젊은 아낙의
긴긴 독수공방을 상상하다가
늦어서 미안햐
무심하게 한마디 툭 던져놓고는
어미 방 화목보일러에 애매한 장작만
미어터지게 밀어넣는다

- ‘생로병사 6 ―공범’ 전문


사회복지사 일을 하며 겪은 것을 쓴 ‘생로병사’ 연작으로 봐서 “1년 계약직 사회복지사”는 합격한 모양이다. “수인” 생활을 자청한 시인은 삶의 벼랑에 서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양아들 등살에 떠밀려/ 요양원”(이하 ‘생로병사 1 –환생’)에 가는 정림 여사, 치매에 걸린 아흔세 살 기초생활 수급자 할머니(‘생로병사 2 –버퍼링’), “주간보호센터에 오시는/ 아흔다섯 구름이 할머니”(‘생로병사 3 –잔설을 녹이다’), 자식 먼저 보내고 혼자 “목사님 집에 얹혀사는 이쁜이 할머니”(‘생로병사 4 –민들레 홀씨 되어’) 등 쓸쓸한 노년을 보내는 분들이다.

‘생로병사 6 ―공범’은 치매를 앓고 있는 노모를 모시고 사는 “육순은 바라보는 아들” 내외의 사연을 다루고 있다. 젊어 혼자된 노모가 “한밤중에 아들 내외”가 자는 “방문 앞”을 서성거린다. 아마 밤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아들은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것으로 봐서 유복자이거나 갓난쟁이 때 아버지를 여의었을 것이다. “저기 혼자 사남유? 그럼 저랑 같이 살아유?”, “늦어서 미안햐” 이 대화에 60년 세월의 애환이 다 들어 있다.

시인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엄마에 대한 연민으로 작용한다. 부재와 연민 사이에 조용숙의 시가 자리를 잡고 있다. ‘부러’라는 부사를 절로 떠올릴 만큼 강한 척하지만, 내면의 부드러움까지 감추지는 못한다. 툭툭 내뱉듯 드러내는 한마디에 “퇴고될 수 없는 사연들”(‘초대’)과 많은 “생의 뿌리”(‘녹는점’)가 가계(家系)에 뻗어 있다.

◇어디서 어디까지를 나라고 할까=조용숙 지음. 북인 펴냄. 136쪽/9000원.

[시인의 집]‘비밀의 방’이 나에겐 아직 없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