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이동걸' 회장의 4년 시차를 둔 선택…운명은?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11.1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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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한진家 부자와의 해운·항공산업 구조조정 협상

이동걸 제 37대 KDB산업은행 회장(사진 왼쪽, 1948년생)과 38대와 39대 이동걸 회장(오른쪽, 1953년생)./사진=머니투데이 DB이동걸 제 37대 KDB산업은행 회장(사진 왼쪽, 1948년생)과 38대와 39대 이동걸 회장(오른쪽, 1953년생)./사진=머니투데이 DB


KDB산업은행에는 '이동걸'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명의 회장이 있(었)다.(이하 혼동을 줄이기 위해 이동걸A와 이동걸B로 표기합니다.)

지난 2016년 2월에서 2017년 9월까지 제37대 산은 회장을 지낸 1948년생 이동걸A와 그의 뒤를 이어 2017년 9월부터 현재까지 38대와 39대 회장으로 산업은행의 키를 쥐고 있는 1953년생 이동걸B다.



48년 이동걸과 53년 이동걸…한진 부자와의 연
두 산은 회장은 4년의 시차를 두고 한진가의 아버지와 아들과 연을 맺었다. 그 모양새도 비슷하다. 한번은 2016년 해운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 조양호 전 회장과, 이번에는 항공산업 구조조정에서 그의 아들인 조원태 회장과 각각 맺은 관계다.

이동걸A 회장과 조양호 회장과의 연은 결말이 좋지 못했다. 당시 조 회장은 산은이 일정 부분 지원해주면 국적선사 1위인 한진해운이 회생할 수 있다고 했으나, 채권단은 대주주들의 희생이 우선돼야 한다며 2016년 8월 법정관리를 택했다.



2016년 7월경 기자와 만났던 이동걸A 회장은 "한진해운의 부실에 대해 전현직 대주주의 책임 있는 자세를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재차 언급했지만, 이를 외면했다"고 말했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지난 4월 마지막으로 해양수산부 장관과 약속을 잡아뒀으니, 한번 찾아가서 회생의 의지를 보이라고 조 회장에게 얘기를 전했으나, 조 회장은 해외출장을 떠나 결국 마지막 기회도 놓쳤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조 회장이 한진해운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조차 발로 차버린 것으로 오해됐었다.

해운 맏형 한진해운 파산의 아쉬움
그 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이었던 조 회장의 출장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올림픽 마스코트를 호랑이에서 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반려견인 진돗개로 긴급히 바꿔야 하는 출장이었다는 게 알려졌다.


당시 출장은 IOC의 마스코드 변경 거부로 수포로 돌아갔고, 조 회장은 그 다음달인 5월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밀려났고, 한진해운은 결국 8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2017년 파산으로 끝났다.

한진해운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여겼던 시기에 조 회장이 정치권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해외출장을 가면서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뒤늦은 안타까움도 있었다. 조 회장은 2년 후 지난해 4월 비교적 이른 나이인 70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그 때 상황을 잘 아는 재계 관계자는 "당시 대우조선해양에 지원했던 것보다 10분의 1도 안되는 3000억원만 한진해운에 지원했어도 지금처럼 한국 해운산업이 붕괴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2016년 10월 4일 국회 정무위에 출석한 이동걸 당시 KDB산업은행 회장 뒤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사진 왼쪽)이 출석해 국정감사에 임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DB2016년 10월 4일 국회 정무위에 출석한 이동걸 당시 KDB산업은행 회장 뒤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사진 왼쪽)이 출석해 국정감사에 임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DB
해운산업의 구조조정도 시장지배력이 큰 한진해운에 현대상선을 맡기는 게 옳은 방향이었으나, 실제 진행은 꺼꾸로 흘러간 게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해운산업 구조조정을 담당했던 측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하겠지만, 한국해운산업의 위상이 2017년 세계 5위권에서 지난해 10위권으로 내려앉은 결과만보더라도 구조조정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건 사실이다. 여기까지가 이동걸A 회장과의 기억이다.

사외이사 이동걸B, 하이닉스의 추억

기자가 이동걸B 회장을 만난 건 이보다 훨씬 전인 2003~2004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시절이다. 2003년경 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 기자회견을 겸해 금융위 꼭대기 층 식당 점심 자리에 같은 테이블에 출입기자로서 앉았던 게 첫 만남으로 기억된다. 당시 금감위 부위원장이었던 이동걸B 회장은 부위원장을 맡기 직전에 사외이사로 있던 하이닉스를 대화의 주제로 삼았었다.

당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하이닉스의 해외매각과 관련한 이사회 결의에서 사외이사 전원이 매각을 반대해 안건이 부결되자, 하이닉스 채권단은 사외이사 전원을 물갈이 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한국금융연구원에서 일하던 이동걸B 회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었다.



2002년에서 2003년까지 하이닉스의 사외이사로도 일했던 그는 당시 왜 사외이사들이 해외매각에 반대했는지를 알기 위해 몇년치 재무제표를 분석해 본 후 하이닉스가 자생력이 있을 것 같아 그 이후에도 해외매각에 반대했다는 경험담을 털어놨었다.

사실 하이닉스의 고난은 1999년 10월 흡수합병이라는 '빅딜' 과정에서 덩치가 작은 현대전자 반도체가 자신보다 덩치가 큰 LG반도체를 떠 앉으면서 과중한 부채부담을 이기지 못한 영향이 컸다. 오랜 고난기를 겪은 후 재계 3위인 SK가 새 주인되면서 SK하이닉스는 비상하고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제32회 한미재계회의에서 고 조양회 회장의 공로패를 대리수상한 뒤 소감을 전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1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제32회 한미재계회의에서 고 조양회 회장의 공로패를 대리수상한 뒤 소감을 전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이번 대한항공 (22,950원 ▲250 +1.10%)아시아나항공 (9,610원 ▲110 +1.16%) 인수 프로젝트는 이동걸B 회장에게나 조원태 한진 회장에게나 전부를 건 일생일대의 모험이다.

벌써부터 특정 주주 밀어주기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한항공이 코로나19의 글로벌 위기 속에서 아시아나를 품고 대한민국 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을 다시 비상시킬 수 있을지의 시험대에 놓인 것이다.

기업회생의 핵심은 경영권을 두고 다투는 일부 주주들의 사적이익도, 정치적 이해득실도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고, 일자리를 어떻게 얼마나 지켜 사업을 영속시킬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조 회장을 만나본 인사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항공산업에 대한 전문지식과 시장을 읽는 눈이 빠르다고 한다. 기자가 만나본 경험도 비슷하다. 산은이 직접 아시아나항공을 운영하는 길이 아니라 대한항공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위기 속에서 아무런 희생 없이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희생이 불가피하다면 그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과거 반도체와 해운 등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성과를 이번에는 이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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