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산과 딜 무산 뒤 '메가캐리어' 탄생까지…긴박했던 '2개월'

머니투데이 박광범 기자 2020.11.17 14:59
글자크기
HDC현산과 딜 무산 뒤 '메가캐리어' 탄생까지…긴박했던 '2개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철통 보안 속에 '속도전'으로 진행됐다.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과의 협상이 결렬된 이후 약 2개월, 추진부터 공식 발표까지 모든 과정이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코로나19(COVID-19)로 끝 모를 불황에 빠진 항공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국민 혈세인 정책금융 투입을 최소화하려는 채권단과 '포스트 코로나' 이후 재도약을 노리는 대한항공,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옛 한진해운 파산을 자초했던 정책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정부 등 '3박자'가 맞아 떨어졌다.



17일 채권단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의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이하 산은)은 지난 9월 HDC현산과의 매각 협상이 결렬된 직후 곧장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에 따라 아시아나항공 재매각 작업에 들어갔다.

작업은 비밀리에 이뤄졌다. 산은은 기업구조조정실을 중심으로 설계도를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채권단 관계자는 "기밀 유지가 중요했던 만큼 산은 내에서도 극소수 인원만 관련 내용을 알 정도로 보안에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이 과정에서 한진그룹 외에 국내 5대 그룹과 항공업을 운영 중인 그룹 1곳에도 접촉했다. 구체적인 그룹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선 자산 기준 5대그룹인 삼성과 현대차, SK, LG, 롯데를 지목한 것으로 본다. 항공업 운영 그룹은 국내 최대 LCC(저비용항공사)인 제주항공을 보유한 애경그룹으로 추정된다. 이들 기업은 재무상의 어려움과 코로나19에 따른 불확실성을 이유로 산은의 제안을 거절했다.

반면 한진그룹은 채권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국내 항공산업의 위기극복과 근본적인 경쟁력 개선을 위한 항공산업 재편 방향에서 한진그룹과 뜻을 같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채권단과 정부는 속도를 냈다. 과거 산업정책적 요소는 배제한 채 금융논리만 따지다 한진해운을 파산 위기로 내몰았던 정책실패를 반복할 순 없단 판단이었다. 당시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항공산업을 살릴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최 부행장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국내 한국산업과 관련 종사자들의 피해를 감안해 실기(失期·시기를 놓침)하지 않도록 최대한 신속히 통합 작업을 준비했다"고 했다.

HDC현산과 딜 무산 뒤 '메가캐리어' 탄생까지…긴박했던 '2개월'
그리고 이 과정에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역할도 컸다는 후문이다. 김 전 위원장이 한진칼의 사외이사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산은의 제안을 한진그룹이 받아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물밑에서 정부 측과의 조율 역할도 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선 김 전 위원장이 딜의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수립하는 과정에서부터 깊게 개입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동걸 산은 회장과 경기고 동기(68기)인 인연도 거론한다.

다만 채권단과 정부 측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김 전 위원장이 이 거래 초기단계부터 깊게 관여했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산은은 전날 자료를 내고 "이 회장은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퇴임(2004년 9월) 이후 지금까지 김 전 위원장을 만나거나 통화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채권단 관계자도 "과거 이력과 현재 한진칼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김 전 위원장의 위치 때문에 여러 추측이 나오는 것 같다"며 "딜은 산은이 전적으로 주도했고, 김 전 위원장은 한진칼의 사외이사로서 한진 측 내부 의사결정 과정 등에서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