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백신 희소식과 빨간 립스틱의 컴백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20.11.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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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재무학]<330>코로나19 백신 개발과 여성의 보복소비

편집자주 투자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알면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사람들의 소비행태에 근거한 경제학 이론 가운데 여성의 화장품인 립스틱 소비와 관련된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란 게 있다. 립스틱 효과는 호황과 불황 등 경기 변동에 따라 여성의 립스틱 구매량과 색상 선택이 달라진다는 경제학 이론이다.



예컨대 경기 불황기에 소득이 줄어들면서 여성이 샤넬백 등 고가의 명품백 대신 저렴한 비용으로 화사한 얼굴을 연출할 수 있는 립스틱 구매를 늘리고, 특히 쉽게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화려한 색상인 빨간 립스틱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경기가 나쁘면 여자들이 빨간 립스틱을 선호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것도 립스틱 효과와 관련이 있다.

실제로 미국 화장품 업체인 에스티로더(Estee Lauder)는 2001년 9·11 테러 직후 발생한 경기 불황기에 립스틱 전체 판매량이 증가하고 붉은색과 와인색 계열의 화사한 색상의 립스틱 판매량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에스티로더는 경기와 립스틱 판매량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립스틱지수(lipstick indicator)를 만들기도 했다.



경제학자들은 경기 불황기에 립스틱 효과 외에 스타벅스 커피 매출이 증가하고 영화관 입장객이 늘거나 팬시 레스토랑 예약이 꽉 차는 현상도 경기 변동과 관련돼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경기 불황으로 소득이 줄어든 소비자가 고가 명품 대신 저렴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최대의 만족감을 얻으려는 합리적인 소비행태로 이해되며 '스몰 럭셔리'(small luxury) 혹은 '작은 사치'라고 부른다.

그런데 올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립스틱 효과가 유명무실하게 됐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일상화하면서 여성의 립스틱 사용이 현저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가 증가하면서 외출할 일이 줄어든 것도 립스틱 구매 감소에 기여했다.

실제로 국내 1위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그룹(아모레G)의 올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은 3조6687억원에 그쳐 전년 대비 –23.3% 감소했고, 누적 영업이익은 1652억원으로 –62.1% 감소, 누적 당기순이익은 1070억원을 기록하며 –69.4% 급감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해외 여행이 막히면서 중국 관광객 및 도매상이 감소한 것도 실적 부진의 주요 원인이 됐다.


그런데 지난 9일 코로나19 백신 개발 희소식이 전해졌다. 미국 제약업체 화이자(Pfizer)는 독일 바이오엔테크(BioNTech)와 공동 개발중인 코로나19 백신의 예방 효과가 90%가 넘는다는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 다우지수는 한때 1600포인트, 5.7% 넘게 급등했고 이후 유럽과 글로벌 증시도 덩달아 4~5% 뛰어올랐다.

화이자 백신이 최종 승인을 받기 전까진 앞으로 수개월이 걸리겠지만 희망적인 중간결과만으로도 코로나19 조기 종식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며 글로벌 증시 랠리를 이끌었다. 그동안 코로나19로 피해를 많이 본 여행관광주, 항공운송주, 화장품주 등은 급등했고, 반대로 그동안 많이 올랐던 비대면 업종은 일제히 하락했다.

국내에선 특히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아모레퍼시픽의 주가 상승세가 눈길을 끌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실적 부진에 빠져 있고 주가도 경쟁사와 달리 거의 유일하게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기에 화이자의 백신 뉴스가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10월 말 기준으로 –20% 넘게 하락해 베어마켓에 빠져 있다. 대부분의 경쟁사는 올해 코로나19에도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실적부진이 계속되자 급기야 13일 희망퇴직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화이자 백신 희소식과 빨간 립스틱의 컴백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11월 들어 10% 가까이 반등했다. 화장품주 가운데 상승폭이 가장 크다. 화이자 백신 90% 효과 희소식 외에도 중국 최대 쇼핑시즌인 광군제도 주가 상승에 일조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11일까지 진행된 올해 광군제 행사에서 매출이 전년 대비 100% 증가했다고 밝혔다.

또한 12일 장중에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 추진설이 나돌면서 화장품주의 상승을 견인했다. 12일 베이징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이달 말 또는 내달 초중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신임 최고경영자(CEO) 인사 소식도 향후 전망을 밝게 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12일 51세의 김승환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내년 1월 1일자로 단행한다고 밝혔다. 새로 선임된 김승환 대표이사(부사장)의 깜짝 발탁은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실적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화장품주에 호재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악재가 더 많을 수 있다. 우선 이달 7일 사회적 거리두기가 새로 개편되면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 시설이 이전보다 확대됐다. 13일부터는 대중교통, 식당, 카페와 백화점 등 주요 시설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1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그리고 10월 이후 유럽과 미국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식당·술집 영업시간 제한, 이동 제한 등 봉쇄령이 다시 내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봉쇄령은 최소 4주 이상 지속된다. 그럼에도 주식투자자들은 화이자 백신 90% 효과 등 호재에 더 주목하고 있다. 13일 미국 증시는 15만명이 넘는 기록적인 신규 코로나19 환자 발생에도 다우지수는 400포인트 가까이(1.4%) 큰 폭으로 상승했다. 특히 항공운송주, 유통주 등 경제재개 관련주의 상승이 이어졌다.

궁극적으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성공하는 날이 오면 여성들이 마스크 착용 없이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게 되고 그동안 억눌린 소비욕구가 분출하면서 화장품 구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게 뻔하다. 그러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동안 여성의 얼굴에서 사라졌던 화려한 색상의 립스틱이 컴백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연히 아모레퍼시픽 등 화장품주의 주가는 큰 폭으로 반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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