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마련 못해 '눈물의 매각' 나선 기업들

머니투데이 구경민 기자 2020.11.15 15:40
글자크기

[100년기업 막는 상속세](상)상속세로 벌주는 나라

편집자주 전세계에서 대주주 상속세율(60%)이 가장 높은 나라 대한민국 대한민국. 직계 비속의 기업승계시 더 많은 할증 세금을 물려 벌주는 나라. 공평과세와 부의 재분배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전국민의 3%만을 대상으로 하는 부자세이면서도 전체 세수에서의 비중은 2%가 채 안되는 상속세. 100년 기업으로의 성장을 가로막는 상속세의 문제점을 짚고, 합리적 대안을 찾아봤다.

상속세 마련 못해 '눈물의 매각' 나선 기업들


#1973년 설립된 유니더스는 콘돔시장 세계 1위에 이름을 올렸던 중견업체다. 세계 조달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으며 연간 11억 개가 넘는 콘돔을 생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5년 창업주 김덕성 회장 별세 후 사모펀드에 결국 경영권이 넘어갔다. 2세인 김성훈 사장이 세금 분할 납부를 신청하며 회사 경영의지를 밝히기도 했지만 약 50억원의 상속세를 부담하기 어려워 결국 2017년 11월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매각했다.

#농우바이오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종자기업이다. 1995년 50만달러 수출을 시작으로 중국·미국 등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며 사세를 키웠다. 하지만 2013년 창업주 고희선 명예회장 타계 후 1200여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유족들이 회사를 포기했다. 결국 2014년 농우바이오는 농협경제지주에 매각됐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선 상속세율이 과도하게 높아 기업승계 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은 기업을 키우려는 의지를 저하시키고 경영상 불확실성을 높여 기업활동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

15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2019년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중소기업 10곳 중 7곳(66.8%)이 중소기업의 영속성 및 지속경영을 위해 '가업승계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중요하지 않다'고 답변한 기업인은 5.2%에 불과했다. 하지만 조사에 응한 대다수 기업들은 가업승계 과정에서 상속·증여세 등 '막대한 조세 부담'(77.5%)을 가장 크게 우려했다.



실제로 가업승계의 길목에서 상속세 부담 등을 이유로 매각을 택하는 사례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점유율 세계 1위를 자랑하던 손톱깎이 업체 '쓰리세븐(777)'은 2008년 창업주 김형규 회장이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면서 유족들은 약 150억원의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밀폐용기 국내 1위 업체 락앤락 창업주 김준일 회장은 생전에 상속세 부담 등을 고려해 2017년 6200억원을 받고 회사를 홍콩계 사모투자펀드(PEF)에 팔았다.


이밖에 광통신 소자제조 업체 우리로광통신, 온라인 화장품 판매사 에이블씨앤씨, 신발갑피 원단 제조업체 유영산업 등이 상속세 부담 때문에 경영권을 매각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중견·중소기업계에선 과도한 상속·증여세가 기업 성장을 위축시키고 기업가의 의욕을 꺾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매출액 3000억원 미만으로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경영한 기업에 대해 가업승계 감면을 하고 있으나, 이외의 감면 조건이 까다로워 실제 활용 빈도가 낮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율(50%)은 OECD국가 평균(26%)의 2배에 달한다"면서 "최대주주 할증 세율 60%를 감안하면 일본의 55%보다 높다"고 말했다.

그는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 상속세가 없는 나라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징벌적 과세' 차원의 과도한 상속세로 대주주의 지분 감소에 따른 경영권 우려 등 경영 장애요인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또 세계적으로 상속세가 축소되는 움직임에 맞지 않고 기업가 정신 고취, 기업의 영속성 차원에서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