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뛰쳐나온 그 청년, 10년만에 8.5조 '플랫폼 황제' 됐다

머니투데이 조성훈 기자, 이진욱 기자 2020.11.1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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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김범수의 카카오제국 (上)

편집자주 카카오가 폭풍 성장했다. 분기 매출만 벌써 1조원을 돌파했다.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현재는 임직원 1만명, 계열사만 104개를 거느린 ‘카카오 제국’이 됐다. 2010년 3월 무료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내놓은 지 10년 만의 성과다. 커머스, 핀테크, 게임, 모빌리티 등 신사업들이 줄줄이 ‘풍작’이다. 그러다 보니 포스트 코로나 시대 더 주목받는 회사가 됐다. 카카오의 폭풍 성장 이면을 들춰보면 사업 변곡점마다 발휘됐던 창업자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승부사적 뚝심이 있다. 그의 성장 스토리를 되짚어봤다.

PC방 사장에서 8조5천억 자산가로…'카카오 제국' 세운 이 남자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 사진제공=카카오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 사진제공=카카오


대기업 뛰쳐나온 그 청년, 10년만에 8.5조 '플랫폼 황제' 됐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2007년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NHN(현 네이버)을 떠나며 당시 직원들에게 이런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결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를 향해 주변에선 우려와 걱정이 쏟아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때만 해도 오늘날의 카카오가 탄생할 것으로 짐작한 이는 드물었다. 네이버의 위세가 워낙 커졌을 때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현재 김 의장이 창업한 카카오는 유일하게 네이버를 위협하는 플랫폼이 됐다. 국내 기업 역사상 이처럼 단기간에 급성장을 이룬 사례가 전무하다.



◇PC방 사장서 재계 23위 굴지 기업 의장이 되기까지



바야흐로 ‘김범수 시대’가 꽃피고 있다. 지난 3분기 카카오는 매출 1조원과 영업이익 1000억원을 각각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4분기 연속 최대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언택트) 트랜드를 주도하며 실적이 고공행진 중이다. 올들어 주가만 2배 이상 급등했다. 재계 순위도 어느덧 23위(10월 말 공정자산기준)로 올라섰다.


이 덕분에 김 의장 본인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으로 부상했다.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9월 29일 종가(36만 4500원) 기준, 3분기 말 김 의장의 카카오 주식평가액(지분율 14.23%)은 4조5564억원이다. 연초(1조9067억원)보다 2조 6497억원(139%)나 불었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에 이어 국내 주식 부자 4위다. 포브스는 그의 전체 재산을 77억 달러(8조5000억원, 국내 3위)로 집계하기도 했다. 한양대 앞에 PC방을 차리며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30대 청년이 22년 만에 재벌가 2, 3세를 능가하는 부호가 됐다.

대기업 뛰쳐나온 그 청년, 10년만에 8.5조 '플랫폼 황제' 됐다
김 의장은 맨 주먹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했다. 가맥이나 혼맥으로 얽힌 재벌기업의 성공 공식과는 거리가 멀다. 평범한 집안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재수 끝에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했고 졸업한 뒤 1992년 삼성SDS에 입사했다. 하지만 1998년 잘 다니던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창업전선에 뛰어든다. “꿈꾸는 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좌우명을 따랐다. 서울 행당동 한양대 앞에 차린 PC방 ‘미션넘버원’이 그 시작이다. 카운터에서 모든 PC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6개월 만에 5000만원을 벌었다. 이를 밑천으로 한게임이란 벤처기업을 차렸다. 프로그램을 다운받지 않고 인터넷에서 PC게임을 그대로 실행하는 기술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 1년 6개월 만에 회원 1000만명을 모았다.

대기업 뛰쳐나온 그 청년, 10년만에 8.5조 '플랫폼 황제' 됐다
2000년엔 삼성SDS 동기였던 이해진과 의기투합해 네이버컴과 합병, NHN을 출범했다. 이후 순탄대로였다. 검색광고와 온라인게임 유료화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안착시켜 4년 만에 최대 경쟁사 다음을 제쳤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계속됐다. 2007년 NHN을 나와 다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2010년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신사업 법인 줄줄이 IPO행…‘카카오 제국’ 건설



오늘날 카카오는 김범수 의장의 승부사 기질의 산물이다. 김 의장은 메신저를 시작으로 포털과 금융, 엔터테인먼트, 모빌리티, 게임, 콘텐츠 등 다양한 영역으로 카카오를 확장하며 ‘카카오 제국’을 건설했다. 카카오톡 네트워크 효과 덕분이다. 카카오톡의 대표 캐릭터이자 김 의장을 닮은 캐릭터 라이언은 이제 메신저 속 이모티콘을 뛰쳐나와 택시, 은행, 골프공, 인형 등 오프라인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올해 카카오톡 출범 10주년을 맞아 또다른 도약을 모색한다. 그동안 적자를 감내하면서 꾸준히 투자하던 자회사들이 잇따라 시장에 안착하며 기업공개(IPO)에 나서고 있다. 지난 9월 증시에 성공적으로 입성한 카카오게임즈를 시작으로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지가 줄줄이 IPO를 준비 중이다. 가맹택시를 1만3000대까지 불린 카카오모빌리티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일각에선 카카오의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반면 자수성가한 벤처사업가이자 젊은 창업가들의 ‘롤 모델’로 그가 앞으로도 계속 그려나갈 ‘카카오 신화’ 스토리에 기대를 거는 시각이 더 많다.

조성훈 기자·이진욱 기자

"실패 두려워마라" 임직원 용기 준 한마디…카카오 성공비결 '셋'
대기업 뛰쳐나온 그 청년, 10년만에 8.5조 '플랫폼 황제' 됐다
코로나19(COVID-19)도 카카오의 질주를 막진 못했다. 4분기 연속 사상 최대실적을 갈아치웠다. 급기야 3분기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쇼핑·금융·콘텐츠·모빌리티 등 카카오가 손댄 사업마다 흥행하며 언택트 최대 수혜자가 됐다. 주가도 덩달아 뛰며 시가총액 30조원을 넘어섰다. 위기에 빛난 카카오의 성공비결 3가지를 꼽아봤다.

①“실패를 두려워 말라”…위기 속에도 투자는 계속된다



카카오가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건 아니다. 2010년 ‘카카오’는 거듭된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아이위랩(카카오의 전신) 시절 ‘부루닷컴’과 ‘위지아닷컴’ 등 내놓는 서비스마다 외면 당했다. 창업자인 김범수 의장의 승부사 기질이 발휘된 건 이 때부터다. 한게임으로 번 돈이 바닥나고 있었지만, 투자를 멈추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2009년 11월 애플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했고, 결국 기회가 왔다.

아이위랩은 다양한 시행착오 끝에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개발에 주력하기로 결론을 내렸고, 그 결과 시장에 빠르게 진입해 선점할 수 있었다. 2010년 3월 국민메신저 ‘카카오톡’은 그렇게 탄생했다. 당시 PC메신저 제왕 ‘네이트온’에 ‘마이피플’, ‘네이버톡’ 등이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카톡의 아성을 넘지 못했던 이유다.

이후에도 위기가 여러 번 찾아왔다. 게임 사업과 모빌리티·O2O(온오프라인연계) 신사업 부진으로 극심한 매출 정체에 시달렸다. 2015년엔 영업이익마저 반토막 났다. 그럼에도 신사업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는 멈추지 않았다. 김 의장은 임직원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독려했다. 카카오택시,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이 대중 서비스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는 다소 무모해보일 정도로 과감했던 도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② “결국 콘텐츠는 돈이 된다”…미래 내다본 승부수



2016년 1월 카카오가 국내 1위 멜론(현 카카오M)을 거금(1조8700억원)을 들여 인수해 업계를 놀라게 했다. 투자 당시 사내에서도 반대 기류가 더 많았다. 이사진들마저 “그렇게 비싼 가격에 왜 인수를 하려 하느냐”고 만류했다. 그러나 김 의장은 “콘텐츠가 황금알이 될 것”이라며 투자 의지를 꺾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다들 의아했지만 몇 년 후 그의 예견은 적중했다. 콘텐츠가 온라인 사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넷플릭스가 국내 유료방송 시장을 뒤흔드는 태풍의 핵으로 부상했고, 웹툰·웹소설 콘텐츠로 네이버와 카카오가 글로벌 시장을 호령한다. 음악 스트리밍은 모든 콘텐츠의 핵심 인프라다. 인공지능 스피커 ‘카카오 미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도 멜론 덕분이다.

카카오는 지난 9월 새로운 카카오TV를 출범하며 콘텐츠 왕국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 김 의장은 콘텐츠 업계의 마이더스손으로 불린 김성수 전 CJ ENM 대표를 카카오M 사장으로 직접 영입하며 영상 제작 사업을 공을 들이고 있다. 음악과 웹툰·웹소설에 이어 영상 콘텐츠 영역에서도 ‘카카오’ 돌풍을 일으키겠다는 전략이다. 이같은 카카오의 행보는 경쟁사들에게도 위협적이다. 네이버와 CJ그룹이 콘텐츠 동맹을 체결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김범수 카카오 의장.


③ 유연한 전략전술…껴안거나 정면돌파



카카오가 위기 때마다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경영전략의 유연성’을 꼽는 시각도 있다. 모빌리티 사업이 대표적이다. 카카오T 택시(택시호출) 사업에서 출발해 대리운전과 카풀 서비스 등 서비스 영역을 확장할 때마다 기존 사업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하지만 카카오는 협상에 협상을 이어가며 절충점을 찾았다. 카풀 서비스 대신 택시 사업자를 인수하고 가맹택시 위주로 사업방향을 돌렸다. 기존 방식을 고수하며 사사건건 대치했던 ‘타다’와는 다른 길이다. 결과는 180도 달랐다. ‘타다’는 사업을 접었고, 카카오는 택시 플랫폼을 기반으로 모빌리티 시장 주도권을 쥐었다.

증권·금융업 진출 당시엔 접근법이 달랐다. 제휴 방식을 선택한 네이버와 달리, 직접 사업권(라이선스)를 확보하며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이 결과, 2017년 출범한 카카오뱅크는 인터넷은행 혁신을 주도하는 메기로 자리 잡았다. 증권업에서도 지난 2월 바로투자증권을 인수한 후 카카오페이증권으로 사명을 바꿔 직접 진출했다. 이는 오히려 기존 금융권이 카카오를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 금융 당국의 규제 울타리 속에서 시중은행과 동일 선상의 경쟁이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대기업 뛰쳐나온 그 청년, 10년만에 8.5조 '플랫폼 황제' 됐다
이진욱 기자·조성훈 기자

카카오 군단이 몰려온다…상장 시동 건 계열사 IPO
대기업 뛰쳐나온 그 청년, 10년만에 8.5조 '플랫폼 황제' 됐다
카카오가 국내 증권 시장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전망이다. 핵심 계열사들이 언택트(비대면) 바람을 타고 기업공개(IPO) 시장에 화려한 등장을 예고한 것. 지난 9월 카카오게임즈가 코스닥에 상장한 지 2주 만에 카카오뱅크가 IPO 추진을 공식화하며 바통을 이어 받았다. 카카오의 다른 계열사들도 비대면 특화 사업을 앞세워 줄줄이 IPO를 준비중이다.

◇IPO 최대어 카카오뱅크 출격…카카오계열사 IPO 줄 잇는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9월 이사회에서 내년 IPO 추진을 공식 결의하고 상장 준비에 본격 착수했다. 감사인 지정 신청을 완료한 상태다. 카카오 계열사 중에선 카카오게임즈에 이은 두 번째 IPO다. 내년 하반기 상장이 목표다.

카카오뱅크는 일찌감치 IPO 시장 최대어로 꼽혔다. 출범 2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 데다, 코로나19 확산 으로 비대면 금융 서비스 수요가 늘면서 디지털 금융 시장에서 존재감이 커졌다. 최근 깜짝 실적을 기록하면서 몸값은 더 치솟는 분위기다.

카카오뱅크는 올해 3분기 당기순이익 40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무려 600%나 증가한 수치다. 특히 그동안 카카오뱅크의 약점으로 지목됐던 수수료 부문에서도 첫 흑자를 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유상증자에 대거 참여하면서 기업 가치는 이미 크게 오른 상태다. 카카오뱅크의 기업 가치는 10조원대로 전망된다.

업계에선 비대면 산업이 급부상하면서 카카오 계열사들이 IPO에 진출할 최적의 요건이 조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임, 웹툰, 핀테크, 온라인쇼핑 등 비대면 사업 중심으로 꾸려진 계열사들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증시에서 카카오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표주로 주목받고 최대 실적으로 기업가치를 키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진수 카카오페이지 대표 /사진제공=카카오페이지이진수 카카오페이지 대표 /사진제공=카카오페이지

◇비대면 중심 사업 포트폴리오…페이지·페이·커머스 등 IPO 출격 대기

카카오페이지도 IPO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초 카카오게임즈보다 카카오페이지가 먼저 IPO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던만큼 흥행 요소는 충분히 갖췄다는 평가다. 웹툰과 웹소설 플랫폼이 주력 사업인 카카오페이지 역시 비대면 시대에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이다. 카카오페이지는 이미 NH투자증권, KB증권을 상장주관사로 선정한 상태다. 올 연말이나 내년 상장을 목표로 상장 예비심사 청구를 위한 실무작업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 시기가 카카오뱅크보다 빠를 가능성도 있다. 기업가치는 2~4조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카카오 금융 사업의 다른 축인 카카오페이도 IPO 대상으로 거론된다. 카카오페이는 올 초 카카오페이증권과 함께 펀드 투자 서비스를 출시했고, 최근엔 자산관리 서비스로 보폭을 넓혔다. 지난해까지 매출이 '결제' 부분으로 몰렸다면, 올 상반기부터는 펀드나 보험판매 등으로 확장됐다. 업계에선 카카오페이가 2022년을 목표로 IPO를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 가치는 7~10조원 수준으로 평가 받는다.

카카오커머스도 2023년을 목표로 IPO를 추진 중이다. 첫 실적부터 어닝서프라이즈를 달성한 카카오커머스는 2018년 11월 주문 제작 플랫폼 '카카오메이커스'를 합병하는 등 온라인쇼핑 서비스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기업가치는 2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M과 카카오모빌리티도 IPO 후발주자다. 카카오M은 최근 카카오 오리지널 콘텐츠를 카카오TV를 통해 선보이며 이목을 끌었다. 카카오M은 지난 3월 해외 투자사 앵커에퀴티파트너스로부터 2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가 1조7000억원에 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통과하면서 국내 모빌리티 시장에서 독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시장에서는 카카오모빌리티의 기업가치를 1조원 중반대로 보고 있다.

이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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