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험실 연구하니 5조 시장 활짝…대기업도 '러브콜'

머니투데이 이민하 기자 2020.11.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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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잭, 레드윗 등 첨단기술로 연구실 물품관리 효율성↑

실험 중인 연구원 모습 /사진제공=스마트잭실험 중인 연구원 모습 /사진제공=스마트잭


#1-Hydroxytetraphenyl-cyclopentadienyl (tetraphenyl-2,4-cyclopentadien-1-one) -μ-hydrotetracarbonyldiruthenium(II). 117자로 쓰인 시약명이다. 실험·연구실에서 쓰는 시약 중에는 이름만 수십자가 넘는 것이 수두룩하다. 연구실 막내 연구원의 가장 큰 업무는 시약 목록을 만드는 일이다. 약병 라벨에 쓰인 이름, 성분, 용량, 순도 등 제반 정보를 손으로 제대로 옮겨 적어야 한다. 1000여종 안팎의 시약을 취급하는 연구실이면 목록 작성에만 두 달 가까이 걸린다. 이마저도 'i'를 'l'로 적거나 알파벳을 빠트리는 등 오·탈자가 생기지 않았을 때 소요 시간이다.

첨단장비를 갖춘 대학·연구기관 실험·연구실도 시약목록·연구기록 작성·관리는 여전히 관행대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연구원 1~2명이 수기로 품목을 작성하고, 입·출고를 맡다 보니 폭발·마약류 부실 관리 등의 문제가 끊이질 않았다.



국내 스타트업들이 이런 연구실의 오랜 관행을 바꾸는 '똑똑한' 서비스를 내놨다. 대학·정부출연연구기관 뿐 아니라 샤넬·유한양행·삼양사 등 국내외 기업에서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국내 실험·연구실 관련 시장 4조8000억원 추산
연구·실험실 연구하니 5조 시장 활짝…대기업도 '러브콜'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실험·연구실 관련 물품과 소프트웨어 시장은 4조8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화학용품, 바이오 시약, 키트, 소모품, 기계·기구 등 '연구물품'(랩프로덕트) 시장은 1조5000억원, 원·부자재와 소프트웨어 관련 시장은 3조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미국과 유럽 관련 시장규모는 각각 20조원, 19조원 수준이다.



국내 대학·기관 연구실은 시장 규모에 비해 관리체계는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로 최근 5년간 국내 기관별 연구·실험실에서 발생한 사고 10건 중 6~7건은 대학교 연구실에서 발생했다. 김건우 스마트잭 대표는 "보통 대학 연구실에서는 이름도 길고 복잡한 시약을 700~1300종씩 보유하는데, 연구원이 수기로 물품 목록을 작성하는 과정이 수십년간 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랩매니저, 샤넬·유한양행 등 국내외 기업도 도입
만 3년차 스타트업인 '스마트잭'은 아무도 손 대지 않던 연구실 시장에 주목했다. 연구·실험실에서 쓰이는 시약을 자동등록·분류해 재고관리까지 가능한 통합관리시스템 ‘랩매니저'를 개발했다.

시약병에 붙어있는 라벨을 스마트폰으로 찍는 것으로 등록이 끝난다. 이후 서버 내 데이터베이스(DB)와 연동해 CAS(화학물질 등록시스템) 번호 등 복잡한 시약 관련 정보가 자동 입력된다. 안전상 반드시 필요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도 시약 제조사별로 빠짐없이 파악할 수 있다. 반나절 정도면 모든 등록 작업을 마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18년 6월부터 시범운영을 시작해 현재 카이스트(KAIST), 고려대학교, 서강대학교, 국민대학교,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 등 대학·정부출연연구기관의 2300여개 연구실에서 도입했다. 샤넬, 삼양사, 유한양행 같은 화학, 화장품, 바이오의약 분야별 대표 기업들에서도 사용 중이다.

스마트잭은 현재 서울·경기 지역 기관을 대상으로 전문 커머스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이다. 내년 1월께 정식서비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구매·등록·사용·폐기·재구매로 이어지는 시약의 전 생애주기를 관리하는 서비스로 고도화 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원들 수기작성 '연구노트' 블록체인 관리
지난해 7월 설립된 레드윗은 '연구기록물' 관리에 주목했다. '폐쇄형(Private)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위·변조가 불가능한 간편 연구노트 ‘구노’를 개발했다. 연구노트는 여러 연구과정에서 생성된 모든 내용을 담은 기록이다. 정부 R&D(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할 때는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연구노트 작성은 필수적인 사항이지만, 정작 대학·연구기관·기업연구소에서 기피 1순위 업무로 꼽힌다. 복잡한 수식 등을 손으로 일일이 입력하거나 연구자 본인의 서명과 제3자의 서명, 타임스탬프(시간 인증 정보) 등 요건에 따른 인증까지 필요해서다.

구노는 수기로 하던 기록을 사진으로 찍기만 하면 자동으로 묶어 연구노트를 생성한다. 기록 저장부터 연구노트 자동작성, 위변조 방지, 서명인증, 자료수집·관리·제출까지 가능하다. 연구노트 형식도 제출기관별 요건에 맞춰 자동변경된다. 모든 기록은 블록체인 기반으로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레드윗는 지난달부터 구노 유료서비스 모델을 운영하고 있다. 누적 4만건의 서면 데이터를 활용, 26만건의 표지분류(레이블링) 데이터를 확보했다. 김 대표는 "연구노트를 작성하기 위해 들이는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 연구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며 "연내 모바일 앱뿐 아니라 온라인 웹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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