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꼭 앨범으로 들어줘!

최재욱 ize 기자 2020.11.0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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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 마마무 몬스타엑스 TXT 가을 컴백

트와이이스, 사진제공=JYP엔터테인먼트 트와이이스, 사진제공=JYP엔터테인먼트



케이팝을 음악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건 이미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끝난 사실이다. 케이팝은 분명 음악을 기본으로 하지만 퍼포먼스와 그를 행하는 인물이 더해져야지만 완성되는, 다소 까다롭고 복합적인 장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장르가 음악에 소홀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특히 케이팝 앨범이 지닌 책임감은 막중하디 막중하다. 해외 팝 음악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세련되고 좋은 곡만을 모아야 하며, 노래하는 가수의 고유함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물론 진입장벽 높기로 악명 높은 앨범 또는 가수 단위의 세계관도 효과적으로 녹여내야 한다. 이 불가능한 작전에 가까워 보이는 작업을 앨범 단위로 훌륭하게 달성해 낸 갓 발매된 새 앨범 네 장을 소개한다.

트와이스 [Eyes wide open]

케이팝 가수에게 정규 앨범이란 정규 앨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데뷔 후 4~5년이 지나도록 정규 앨범 한 장 가져본 적 없는 가수가 흔한 신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데뷔곡 ‘우아하게’해서 지금까지 줄곧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룹 트와이스에게도 이 공식은 그대로 적용된다. 2017년 발표한 'Twicegram' 이후 3년 만에 발표하는 두 번째 정규 앨범에서 트와이스는 지난해 발표한 ‘FANCY’ 이후 꾸준히 이어온 성장과 성숙의 여정에 강한 온점을 찍는다. 총 13곡을 꽉 채운 앨범은 두아 리파가 작곡에 참여하고 헤이즈가 작사를 담당한 마지막 곡 ‘BEHIND THE MASK’까지 긴장 한 번 늦추는 법 없이, 마치 곡예 하듯 수많은 스타일과 멜로디를 흩뿌려 놓는다. 레트로 무드의 ‘I CAN'T STOP ME’를 지나 두 번째 곡 ‘HELL IN HEAVEN’으로 확실한 ‘단짠 모드’를 보여주는 앨범은 트와이스만의 쿨함을 전하는 ‘BELIEVER’, ‘DEPEND ON YOU’ 같은 일렉트로 팝 넘버에서 6년 차 아이돌의 여유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DO WHAT WE LIKE’, ‘QUEEN’을 넘어 작곡가 정호현(e.one), 이기와 호흡을 맞춘 그럴싸한 시티팝 스타일까지 능숙하게 담아낸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트와이스라는 이름 아래 더없이 자연스럽다.

마마무, 사진제공=RBW마마무, 사진제공=RBW

마마무 [TRAVEL]

‘믿고 듣는 마마무’라는 의미의 ‘믿듣맘무’가 처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건 무엇보다 이들의 뛰어난 라이브 실력 때문이었다. 보컬이면 보컬, 랩이면 랩, 퍼포먼스면 퍼포먼스 어느 하나 빠지는 곳 없이 대중을 사로잡는 마마무의 매력은 이제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발표하는 앨범까지 적용되어야 함이 옳다. 마마무의 열 한 번째 미니앨범 'TRAVEL'은 컨셉트나 장르가 특별히 정해진 앨범은 아니다. 오히려 앨범 제목이 의미하듯 마음 편히 여행 한 번 떠나기 어려운 요즘 마마무와 함께 어딘가로 ‘떠난다’는 이미지를 앨범 단위로 형상화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첫 곡 ‘Travel’은 그런 앨범의 의도를 무척이나 직관적으로 묘사한다. 마마무가 친절하게 열어 놓은 차 문 안으로 슬쩍 빨려 들어가 시원한 드라이브를 즐기며 시작되는 앨범은 김도훈과 박우상을 위시한 소속사 RBW의 인하우스 작곡가들과 무르익은 곡 소화력을 자랑하는 네 멤버들의 인도에 따라 떠나는 마마무식 사파리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타이틀곡 ‘AYA’도 좋지만, 정글 늪을 헤매는 파충류처럼 진득하게 감겨드는 멤버들의 농익은 보컬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Diamond’와 남국의 기분 좋은 저녁 바람을 떠오르게 하는 팝 발라드 ‘잘자’가 전하는 감성도 좋다.

사진제공=스타십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스타십엔터테인먼트

몬스타엑스 [Fatal Love]

몬스타엑스는 높은 퀄리티의 앨범으로 케이팝 신 안에서는 이미 꽤 높은 신뢰도를 자랑하는 그룹이었다. 그런 이들에게도 올해 초 발표한 영어 앨범 'All About Luv'은 분명 새로운 도전이자 성과였음에 틀림없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성과는 단순한 숫자나 성적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All About Luv'는 지금까지 몬스타엑스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던 멤버들의 피지컬을 앞세운 묵직한 퍼포먼스나 메인래퍼 주헌으로 대표되는 강렬한 존재감 이상의 무언가를 그룹에 이식한 색다른 앨범이었다. 지난 여정을 통해 부드럽고 세련된 팝 음악을 들려주는 보이 밴드로서의 자아를 하나 더 가지게 된 이들은 정규 3집 'Fatal Love]' 통해 그 새로운 자아가 비로소 그룹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음을 확인시킨다. 타이틀곡 ‘Love Killa’나 주헌의 자작곡 ‘BEASTMODE’처럼 여전히 몬스타엑스의 야수 같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곡들이 앨범의 중심에 있지만, 그 사이사이 녹아 든 ‘갈증’이나 ‘Night View’, 심지어 마지막 곡 ‘Sorry I'm Not Sorry’ 같은 곡이 보여주는 서정이 이들의 앨범에서 더 이상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모든 것이 몬스타엑스화(化)된 앨범이다.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투모로우바이투게더 [minisode : Blue Hour]

시리즈물의 작은 에피소드를 뜻하는 ‘minisode’와 해가 뜨고 지는 순간 푸른 빛 어린 시간을 의미하는 ‘Blue Hour’. 두 단어를 나열한 제목 그대로, 앨범은 TXT가 데뷔 후 1년 반 동안 이끌어온 ‘꿈의 장’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일까. 'minisode1: Blue Hour'는 거대한 이야기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 없이, TXT가 발표했던 그 어떤 앨범보다 가볍고 날렵한 몸짓으로 청춘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케이팝보다는 뉴웨이브-인디 팝 카테고리가 훨씬 어울리는 첫 곡 ‘Ghosting’에서부터 듣는 이의 고막에 탄산 직구를 던지는 앨범은 다섯 곡의 수록곡을 통해 각기 다른 이국에서 만들어진 청춘 영화의 결정적 순간들을 빛처럼 쏟아낸다. 디스코와 댄스홀, 퓨쳐 사운드까지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의 결을 묶어내는 건 타이틀곡 ‘5시 53분의 하늘에서 발견한 너와 나’ 티저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푸르고 너른 잔디밭의 이미지다. 오렌지빛 마법, 달리던 축구화와 이어폰으로 몰래 나눠 들었던 음악, 타임라인과 해시태그, 방학과 시험, 소원과 비밀과 괴물. 누구나의 10대를 가득 채웠던 오브제들까지 가득 쏟아지고 나면, 이 ‘이(異)세계’에 속수무책 당하는 수밖엔 없다.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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