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출신 방송국 PD는 왜 유튜버가 됐을까?[머투맨]

머니투데이 김지성 기자, 이동우 기자, 조동휘 기자, 김소영 기자 2020.11.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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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터뷰│아는형님PD 관두고 유튜브 '키키TV' 운영하는 허서문씨

편집자주 유튜브, 정보는 많은데 찾기가 힘들다. 이리 저리 치인 이들을 위해 8년차 기자 '머투맨'이 나섰다. 머투맨이 취재로 확인한 알짜배기 채널, 카테고리별로 쏙쏙 집어가세요!



카이스트 출신 방송국 PD는 왜 유튜버가 됐을까?[머투맨]


'카이스트 출신 PD가 왜... 유튜버를 해?'

과학 인재들이 총집합한 카이스트(KAIST)에서 산업 및 시스템 공학을 전공, 그것도 장학생으로 졸업한 뒤, 어렵기로 소문난 방송국 프로듀서 공개채용 시험을 2번 합격했으나 3년 만에 그만두고 유튜버가 된 이가 있다. 독특한 이력보다 더 독특한 발상과 행동으로 주목받는 유튜브 채널 '키키TV, 전지적 예능 시점'의 허서문씨(31)다.



허씨는 2014~2015년 종합편성채널 채널A 프로듀서로, 이어 2017년까지 JTBC 프로듀서로 일하며 인기리에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 '아는형님' 등 제작에 참여했다. 타고난 끼를 발산하고자 PD가 됐으나 카메라 뒤보단 앞이 자신이 원하는 자리라는 걸 깨닫고 방송국을 나와 유튜브라는 '개인 방송국'을 차린다.

그 자체로 예능 프로그램 같은 신혼일상과 보는 사람보다 추는 사람이 더 즐거울 것 같은 커버댄스, 방송국 PD 출신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 등을 콘텐츠로 만들어 약 2만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방송국PD, 카이스트 출신은 하나의 수식어일 뿐 저는 키키랍니다'라는 자기소개처럼 끼 많고 꿈 많은 허씨를 유튜브 가이드 '머투맨'이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달 21일 서울 마포구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PD 그만둔 이유? "카메라 뒤보단 앞에 나오는 일을 하자"
/사진=유튜브 '키키TV' 캡처/사진=유튜브 '키키TV' 캡처
-카이스트 졸업 후 예능프로그램 PD로 일하다 퇴사했다. 이력이 굉장히 독특한데.

▶댓글에도 '왜 카이스트 나와서 이러고 있냐', '왜 여기서 재능 낭비하냐' 이런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오히려 (이력만 보면) 재미없을 거라는 편견 때문에 제가 잘되는 케이스일 수도 있다. 대학에 가면 연극 동아리에 들고 싶었다. 공교롭게 점수를 맞춰보니 제일 좋은 선택지가 카이스트였다.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연극 동아리에서 밤을 새며 연습할 수 있어 좋았다.


-방송국 PD로 일하다 퇴사를 했는데, PD를 그만둔 이유가 무엇인가.

▶방송국 퇴사한 지 3년 됐다. 채널A 공채로 입사해 1년 하고, 다시 JTBC 시험을 봐서 들어갔다. '아는형님' 1년, '비정상회담' 8개월 하고 나왔다. 방송국에 계신 분들이 번아웃(burnout·소진)을 많이 겪는다. 편집이라는 게 내가 끝날 때까지 끝나는 게 아니다. 계속 만지고 집착하다 보니 스스로를 혹사하는 기간이 있었다. 사람들을 웃게 했는데 저는 웃음을 잃어갔다.

-유튜브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

▶유튜브를 계속 하고 싶긴 했지만 '대단한 재능이나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뭐라고 유튜브를 해' 이런 고민이 있었다. 스스로 검열해서 못 하고 있었는데 보다시피 끼가 많다. 어떻게 보면 끼를 표출하려 선택한 게 PD일 수도 있다. 그러다 '나는 카메라 앞에 나오는 일을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20년쯤 후에 아이들 대학 보내고서야 하겠다는 생각에 무서워지더라. 좋아하는 일을 지금 세팅해야겠다고 생각해 유튜브를 시작했다.

-최근 유튜브를 4개월 정도 쉬었다. 어떤 이유에서였나.

▶가장 큰 이유는 임신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도 공개했는데, 지금 임신 7개월차다. 다른 이유로는 유튜브 하면서 마음을 놓아야 되는 시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유튜브에 일상을 올리면 기록도 되고 좋겠다고 생각해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생기더라. '유튜브 번아웃'이라고 하지 않나. 그렇게 조급하게 쫓겨서 하다가 아기도 생기고 해서 쉬다 왔다.

유튜브가 방송국 위협?…"상생하는 과정"
/사진=유튜브 '키키TV' 캡처/사진=유튜브 '키키TV' 캡처
-유튜브 시작한 지 1년 반이 넘었다. 해보니 PD와 유튜버간 어떤 차이점이 있던가.

▶당시 메인 PD가 아니어서 결정 권한이 아예 없었다. 주로 후반 작업에 집중했다. 지금은 기획부터 촬영, 편집, 마케팅까지 다 해야 한다. 일이 훨씬 많아졌다. 편집에도 차이가 있다. 방송에서 서사를 만들고 자막 폰트를 달리하는 등 작업을 했다면, 유튜브는 그보다 편집을 덜 해도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방송국 기준에 맞춰 하려다 보니 그때랑 똑같이 번아웃이 되더라. 힘을 빼려고 노력 중이다.

-'유튜브가 방송국을 위협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둘 다 해 본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나.

▶긍정적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상생하는 과정 아닐까 싶다. 대규모 드라마 수준의 작업 등 아직까진 방송국만이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는 것 같다. 최근에 '가짜사나이' 보고 대규모 자본으로 하는 것도 유튜브가 하는 구나 싶어 생각이 바뀌고 있긴 하다. 품위 있는 콘텐츠를 원하는 분들, 보다 날 것을 기대하는 분들 등 수요가 다양하다. 방송국은 유튜브처럼 만들기보다 더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PD나 유튜버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준다면.

▶유튜브 영상 하나 올리면 PD가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준비생일 때 여력이 없을 수 있지만, 예를 들어 오늘 연희동에 갔다면 그 기록을, 하다못해 언시생의 일상이라도 일단 올리고 대중의 눈에 어떤 게 맞는지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시간을 쌓아가면 남들보다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유튜브는 개발자가 만든 사이트라 데이터 수치를 많이 준다. 수치를 보며 분석하는 과정을 갖는 게 PD뿐 아니라 모든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카이스트→방송국 PD→유튜버→?
지난달 21일 서울 마포구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키키TV' 인터뷰 현장. /사진=조동휘 기자지난달 21일 서울 마포구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키키TV' 인터뷰 현장. /사진=조동휘 기자
-카이스트, 방송국 PD를 거쳐 유튜버가 됐는데 이게 끝이 아닐 것 같다.
▶나를 세팅해두고 유튜브를 메인 채널로 이용하자는 생각이다. 유튜브는 오픈 레주메(résumé·이력서)라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오고 내가 몰랐던 나의 쓰임새를 알 수 있다. 저의 셀링 포인트는 기획, 연출, 출연, 편집까지 통합패키지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최근에도 기업 등에서 MC 봐달라고 연락이 왔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하는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은데, 유튜브를 통해 기회가 생기니 신기하다.

-유튜브를 하며 가장 좋았던 순간이 언제인가.
▶유튜브를 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 다양한 장르의 크리에이터를 만나고 가끔 구독자도 만난다. 얼마 전엔 '키득키득쇼'라고 저만의 토크쇼도 열었다. 제 토크쇼를 만드는 게 꿈 중 하나인데, MC라는 걸 기다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판을 깔자는 생각이었다. 10명 정도 초대해 제가 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1시간30분 정도 이야기했다. 유튜브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 '키키TV' 채널 운영 계획은 어떻게 되나.
▶콘텐츠 기획할 때 항상 '독특한 해방감을 주고 싶다'는 키워드를 생각한다. '카이스트 나와서 왜 저래', '와이프가 뭐 저래' 이런 말들이 꼭 나쁜 쪽이 아니라 '이렇게 해도 된다'는 말로 바뀔 수 있다. 사람들이 저를 보며 숨긴 끼가 있으면 표출해도 되고 이상하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적응하는 범위가 달라지면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머투맨 구독자와 머니투데이 독자를 위해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 3개를 추천해달라.
▶'엔조이커플' 재미있게 보고 있다. 커플 일상 얘기인데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두번째로는 '조승연의 탐구생활'이다. 이미 유명한 채널이지만, 콘텐츠가 기발하고 깊이 있다. 조승연 작가는 지식을 풀어놓는 데 일가견 있는 스토리텔러라고 생각한다. 세번째는 'Aiki아이키릿' 채널. 결혼하시고 아이도 있는데 춤을 너무 잘 추고 해방감을 준다. 여자들에게 파워를 주는 느낌이 강해서 좋다. 저도 춤추는 걸 좋아해서 영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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