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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숙원'이라는 행정, 얼마나 더 있을까

뉴스1 제공 2020.10.30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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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단비 기자./뉴스1 © News1허단비 기자./뉴스1 © News1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숙원(宿願)'. 오래전부터 품어 온 염원이나 소망을 말한다. 꼭 필요한 제도나 사업이 오랫동안 이뤄지지 않아 바람도 그 크기만큼 커졌을 때 이를 '숙원사업'이라고 한다.

광주시가 그동안 주민 불편이 컸던 광주 '순환01번' 버스 노선을 11월부터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지난 9월24일 뉴스1 보도 <"또 잘못 탔네" 하루 수십 명씩 승차했다 내리는 시내버스…왜?> 이후 개선 방안을 검토한 끝에 '순환01-A번'과 '순환01-B번'으로 개편 방안을 확정한 것이다.



시청, 버스터미널, 광주역, 조선대, 남구청, 풍암지구, 운천저수지 등 주요 거점을 양방향으로 순환 운행하는 순환01번. 세하동에서 출발해 계수초등학교까지는 똑같은 노선으로 가다가 어떤 차는 시청 방향으로, 어떤 차는 운천저수지 방향으로 순환하는 통에 잘못 타고 내리는 시민들이 많았다.

취재 당시만 하더라도 '가벼운 생활기사' 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기사가 나가자 반향은 생각보다 컸다. 버스를 잘 못 타 난감했던 경험을 한껏 풀어낸 수많은 경험담과 대안과 격려를 담은 문자메시지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얼마나 많은 주민과 독자들이 불편함을 느꼈고 버스 운행 방법이 바뀌길 원하고 소망했는지 알게 됐다.

광주시 대중교통과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순환01번' 개선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주민과 전문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쳤다. 문제를 지적한 기자에게도 자문을 해달라고 해 보도 이후 쏟아진 의견들을 안고 시청을 찾았다.

보도가 나간 지 일주일밖에 안 됐지만 담당과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미 노선도 초안을 만들어 어떤 식으로 표기할지, 1안과 2안 등 후보군을 검토 중이었다. 어떤 방안이 또 다른 주민 혼란을 줄일지 물어왔다.

광주시가 그동안 운행 방향을 놓고 혼란을 빚은 '순환01번'을 11월1일부터 '순환01-A'와 '순환01-B'로 구분해 운영한다. 사진은 새로 적용되는 노선도.(광주시 제공)2020.10.28 /뉴스1 © News1광주시가 그동안 운행 방향을 놓고 혼란을 빚은 '순환01번'을 11월1일부터 '순환01-A'와 '순환01-B'로 구분해 운영한다. 사진은 새로 적용되는 노선도.(광주시 제공)2020.10.28 /뉴스1 © News1
대중교통과가 신속히 준비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2년 전 같은 준비 과정을 거쳐 개편을 시도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한 차례 민원이 제기돼 개편안을 논의했지만 '일부의 불편'으로 여겼고 새롭게 바뀌는 걸 반대하는 시민들에 의해 자연스레 개편 논의는 물 건너갔다.

그러는 사이 시민들은 '순환01번'의 불편을 '원래 불편한 버스', '원래 헷갈리는 노선'으로 여기며 버스를 잘못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지난 9월 보도 이후 일부 시민의 민원이 아니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고 한 달여만인 10월28일 개편안이 확정, 11월1일부터 개편된 버스가 달릴 수 있게 됐다.

이번 개편 과정을 보면서 '숙원'이라는 이름의 행정이 얼마나 더 많을지 궁금해졌다. 시도했다가 이를 지켜보거나 주목하는 보도가 없어 슬그머니 지나쳐버린 불편은 얼마나 더 있을까.

그런 자그마한 불편을 조명해 일부 시민들의 단순 민원이 아닌 숙원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게 기자의 역할이라는 다소 '과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광주시의 신속한 대응을 보며 지난 20년간 비좁은 치평로에 즐비한 버스정류장이 떠올랐다. 지난 10월18일 뉴스1 보도 <'꼭꼭 숨은' 버스정류장 20년째 이전 갈등…안 하나 못 하나>로 조명한 또 다른 시민들의 불편이다.

상하행선이 한 도로를 마주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한 상가건물을 사이에 두고 버스정류장이 꼭꼭 숨어있어 주민 불편이 잦았다. 왜 상가 뒤에 정류장을 숨겨놨는지 의문이라는 생각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매월16번' 버스가 상무지구 상가 뒤편 도로를 달리고 있다. /© 뉴스1'매월16번' 버스가 상무지구 상가 뒤편 도로를 달리고 있다. /© 뉴스1
이유는 꽤 단순했다. '전부터 있었으니 그대로 두라'는 인근 아파트 주민과 상인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광주시 대중교통과가 버스정류장 이전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주민 반발이 커 수요가 낮은 노선 1개만 상무중앙로(왕복 8~9차로)인 대로변으로 옮겼고 나머지 노선은 여전히 그대로다.

일부의 다소 이기적인 논리 때문에 광주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상당수의 시민은 건물 뒤에 숨은 버스정류장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다.


어찌 보면 '순환01번'과도 닮았다. 불편을 모두가 알고 있고 개선 논의가 있었지만 이뤄내지 못한 곳. 이곳에도 광주시가 신속한 대응을 해 숙원을 풀어내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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