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재테크 조언 "작은 돈은 아끼고 큰 돈은 과감히 써라"

머니투데이 김재현 이코노미스트 2020.11.0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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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보고 크게놀기]좋은 기회다 싶을 때 과감하게 투자하고 작은 돈은 허투루 낭비하지 말자

편집자주 멀리 보고 통 크게 노는 법을 생각해 봅니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그래픽=임종철 디자인기자


다산 정약용은 18세기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시대 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였다. 개혁 군주인 정조의 최측근으로서 승승장구했던 다산은 1800년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면서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났고 이듬해 신유사화가 터지자 18년 동안의 강진 유배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다산의 나이는 겨우 39살이었다. 그러나 다산에게 권력의 핵심에서 쫓겨나 유배생활을 보낸 인생 후반기가 없었다면 그가 남긴 50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도 없었을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서 보낸 인생 전반기와 18년의 유배생활을 보낸 인생 후반기를 통해서 다산은 세상을 통합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다산은 자식들에게 여러 차례 근(勤), 검(儉)을 강조했다. 집안이 풍비박산된 폐족으로서 자식들이 부지런하고 검소하지 않으면 입에 풀칠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고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산의 편지를 보면 우리가 평소 생각하던 선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1810년 다산이 강진에서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 중 "뽕나무를 심어라"라는 내용이 있다. 다산은 “생계를 꾸리는 방법에 대해서 밤낮으로 생각해도 뽕나무를 키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며 제갈공명이 은거할 때 뽕나무를 심어서 생활을 꾸려간 게 큰 지혜임을 깨달았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선비로서의 체면을 완전히 버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산은 “과일 장사는 다른 장사보다 깨끗하고 점잖지만 어차피 장사”라면서 뽕나무를 심어서 누에치는 일은 선비의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큰 이익도 남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고 반문했다.

다산의 말 중 “큰 돈을 과감하게 쓰고 작은 돈은 아껴써야 한다”는 말은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다산은 유배지인 강진에서 가르친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심용담은 ‘엽전 열 꿰미 이상은 손쉽게 사용해야 하고, 엽전 1문이나 2문은 무겁게 지니고 내놓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는 지극한 이치가 있는 말이다. 큰 것을 아끼는 사람은 큰 이익을 꾀하지 못하고, 작은 것을 손쉽게 여기는 사람은 헛된 낭비를 줄이지 못할 것이니, 이런 점을 잘 살펴야 한다."


조선시대에 꿰미는 한 관(貫)을 의미했는데, 한 관은 10냥, 1냥은 100문(푼)이었다. 엽전 열 꿰미는 엽전 100냥, 즉 엽전 1만문을 의미했다. 엽전 열 꿰미는 지금 얼마나 되는 금액일까? 지난해 9월 기획재정부는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천 냥의 가치는?”이라는 글에서 18세기 후기와 지금의 쌀값을 비교해 당시 엽전 1문의 가치는 지금 돈으로 약 688원이라고 계산했다.

이렇게 따지면, 엽전 열 꿰미는 약 688만원에 달하는 큰 돈이다. 아마 조선시대 경작할 논을 사거나 뽕나무를 심을 땅을 사기에는 충분한 금액이었을 것이다.

엽전 1문이나 2문을 아끼라는 건 지금으로 치면 1000원, 2000원을 아끼라는 말이다. 작은 돈을 아껴야만 종자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모은 엽전 열 꿰미는 장롱 안에 고이 모셔둘게 아니라 뽕나무를 심을 땅을 사거나 물건을 사서 장사하는 데 써야 한다. 다산의 말을 곰곰이 씹어보면, 작은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큰 돈을 아끼지 않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일이다.

만약 작은 돈을 허투루 낭비해 왔다면 지금부터는 아껴 쓰고, 큰 돈을 아꼈다면 이제부터는 좋은 기회다 싶을 때 과감하게 투자해 보자. 젊었을 때 큰 돈을 과감하게 쓰지 못하면 나이 들어서 후회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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