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 또 꺼낸 수사지휘권…칼은 진실을 향해야 한다[서초동 36.5]

머니투데이 배성준 부장 2020.10.22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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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많은 사건들이 서초동 법조타운으로 모여 듭니다. 365일, 법조타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인간의 체온인 36.5도의 온기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사나운 시대다.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로 구속기소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입에서 휘발성 강한 폭탄 발언이 나왔다. 핵심은 여당 정치인은 물론 전관 변호사를 통해 검사들에게 향응을 제공하고 야당 인사들에게도 돈을 주었다는 것이다. 폭로 직후 여당은 공수처 설치를 외치고 야당은 특검을 주장하며 정쟁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도 반색하듯 감찰을 지시하고 의혹 일부가 사실임을 확인했다면서 헌정 사상 3번째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했다. 윤 총장은 “수사를 뭉갤 이유가 없다”며 분노를 표출하고 수사팀의 철두철미한 수사를 당부했지만 이제 관련된 수사에는 일체 관여할 수 없게 됐다. 이로써 짜여진 판에서 검찰이 원하는 답만 하도록 강요받았다고 주장한 김 전 회장의 폭로에 추장관이 힘을 실어준 격이 됐다.



그의 말은 신뢰할 만한가?

이번 파문은 휘발성이 강하다. 검사의 향응 접대, 전관 변호사의 수사 개입과 비위, 정관계 인사의 부패 고리까지, 사실이라면 가히 경악할 수준이다.



아직은 한 피의자의 폭로일 뿐이라는 점, 그가 검사들에게 향응을 제공했다는 시점은 라임 사건 전이며 당연히 수사팀조차 꾸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첫번째 합리적 의심이 든다.

파문의 동심원이 커질수록 범위도 넓이도 크게 번져나간다. 파문에 떠밀려가면 시작이 어디인지,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은 무엇인지도 알기 힘들다. 의혹의 진원지인 김 전 회장은 라임 펀드 사기 사건의 몸통으로 중형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여vs야, 법무부vs검찰의 싸움이 격화될 수록 김 전 회장 본인에 대한 주의가 분산되고 검찰의 수사동력은 흐려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그의 말이 기획폭로라는 합리적 의심을 낳게 하는 두 번째 이유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김 전 회장이 검찰을 믿지 못하겠다면서 서울 남부지검 수사팀의 조사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검찰 전체에 대한 모욕이다.


그럼에도 확증편향으로 흘러가는 김봉현의 폭로를 지켜보면서 개탄하게 되는 지점은 그의 입에서 ‘검찰개혁’이란 단어가 나왔다는 점이다. 그의 폭로성 발언이 사실이라면 검찰은 개혁되기는 커녕 오히려 퇴보한 것이 맞다.

뇌물도 향응도 준 사람이 터트리지, 받은 사람이 터트리는 법은 없다. 과거 검찰에서는 ‘옷로비 사건’, ‘조폐공사파업유도사건’, ‘이용호 게이트’ 등으로 장관과 총장이 물러나고 검사장이 구속되는 등의 홍역을 치른바 있다. 이런 사건들은 지금의 그가 터트린 의혹이 의심을 넘어 확신으로 치닫게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역사를 아는 자는 무너지는 담장아래 서지 않는다’라는 말이있다.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면 실패한다. 역으로 역사를 알고 깨달음을 얻는다면 과거의 어려움을 겪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검찰은 엄정한 수사를 다짐했지만 ‘뭉개고 시간을 끌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권에 대한 로비의혹이나 청와대 윗선 개입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가뜩이나 불신의 늪에 빠진 검찰에게 또 한 번의 실망을 남겼다.

현재 일각에서는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이 모두 배제된 상태에서 특임검사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나오고 있는데, 중립성과 신뢰 확보 차원이라고 하니 대한민국이 법치주의국가가 맞나?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수천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무려 2조1000억원이 공중으로 사라졌으며 사기꾼들은 권력의 검은 힘을 이용해서 위기를 넘기려고 했다. 추 장관의 칼끝은 윤 총장이 아닌 사건의 실체와 주도자를 향해 겨눠져야 한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철저한 수사를 통해 성역 없이 진실을 밝히고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하고,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을 정부가 함께 모색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야 모두 진실이 가려지도록 협조해야 한다. 소모적인 정쟁이나 프레임을 씌워 누군가를 겨냥한 수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수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지켜지도록 함께 감시해야 한다.

검찰도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제발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었으면 좋겠다.

배성준 부장(법조팀장)배성준 부장(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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