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공정거래법 개정과 시장의 역할

머니투데이 신진영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 2020.10.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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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영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사진=신진영 원장신진영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사진=신진영 원장


경제학 교과서에서 상정하는 세상은 합리적이면서, 이상적이다. 시장참여자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인 의사 결정과 행동을 실행하고 그 결과 아담 스미스가 얘기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은 효율적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제학 교과서와 같이 이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흔히 이를 시장의 불완전성이라 하며 이를 유발하는 요인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먼저, 많은 시장은 완전 경쟁이 아닌 불완전 경쟁이 주를 이뤄서 수많은 시장 참여자 간 경쟁으로 최적의 가격이 결정되기 보다는, 소수의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그들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 시장 참여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 역시 심각하여 지식과 정보가 소수에게 집중돼 이러한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시장 참여자는 원천적으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정보를 독점한 시장 참여자보다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시장 지배력을 지니고 우월한 정보를 보유한 기업이 스스로의 이익만을 추구할 경우 시장 전체적으로 비효율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시장과 경제가 효율적으로 기능하는 것에 장애가 되고 다수 시장 참여자의 경제적 후생은 훼손될 것이다. 물론 기업 스스로 이러한 문제를 인식할 수 있지만, 자발적으로 개선할 유인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이라 불리는 대기업 집단의 비중과 영향력이 매우 크며 이들 기업의 대부분은 지배주주가 절대적 경영권을 행사한다. 이들 기업의 경제적, 사회적 역할이 지대한 현실에서 기업의 경영이 지배주주 이익을 중심으로 이뤄질 경우 다른 주주가 직·간접적 피해를 보게 되고 더 나아가 기업과 우리 경제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주를 포함한 시장 참여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경영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시장의 불완전성을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방법은 두 가지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만들어진 규제를 통해 사전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방법, 아니면 정보를 공개해 시장 기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해 기업 스스로 문제점을 개선할 유인을 제공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시장 경제 체제 하에서 상황에 맞게 두 가지 방법을 적절히 혼용할 경우 효과가 가장 극대화 될 것임은 자명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제정하고, 정기적으로 상장 기업의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Environment, Social and Governance, ESG)를 평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기업의 전반적 ESG 현황을 파악하고 개선을 권고한다. 물론, 이러한 평가와 권고는 강제성은 없다. 하지만 시장에 개별 기업의 ESG 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주주·투자자·기타시장참여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게 되면, 시장의 요구에 의해 기업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개선할 유인이 커질 것이다.

지난 8월말 공정위에서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 주식소유현황 발표 역시 유사한 맥락이다. 시장 참여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도와주고, 그 판단으로 기업의 자발적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것이다. 주식소유현황 발표 이후에도, 대기업의 내부거래·지배구조현황을 연말까지 분석해 발표한다고 한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은 기업행태에 관한 보다 적극적인 개선의지를 담고 있다. 소수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이 일어나지 않도록 총수일가 사익편취규제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공익법인이 본연의 역할과 달리 총수일가의 지배력 유지에 활용되지 않도록 의결권을 제한한다.

스스로 변화하면 가장 좋다. 그게 어렵다면 다른 사람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여건에 있는 우리 기업이 당면한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면서도, 그 이후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한번 더 도약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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