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빅딜의 속사정, 인텔은 왜 팔고 SK하이닉스는 왜 샀나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이정혁 기자, 강기준 기자 2020.10.2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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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세번째 승부수를 던졌다."

20일 SK하이닉스 (173,300원 ▼9,000 -4.94%)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 발표를 두고 반도체업계에서 나오는 얘기다. 2012년 SK하이닉스 인수, 2018년 일본 도시바메모리(현 키옥시아) 지분 투자에 이어 SK그룹의 반도체 포트폴리오 전략에 탄력이 붙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계산시 점유율 2배…인수효과 계산식은
10조 빅딜의 속사정, 인텔은 왜 팔고 SK하이닉스는 왜 샀나


업계에서 주목하는 것은 SK그룹이 계산한 인수 효과다. 최 회장이 인수 효과에 대한 확신 없이 국내 최대 규모인 10조원대 인수·합병(M&A) 승부수를 던졌을 리 없다는 얘기다.



단순 계산하면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이 2배가량 늘어나면서 단숨에 시장 2위 업체로 올라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 (77,600원 ▼2,000 -2.51%) 35.9%, 키옥시아 19%, 웨스턴디지털 13.8%, 마이크론 11.1%, SK하이닉스 9.9%, 인텔 9.5% 순이다.

다만 이런 덧셈 뺄셈식 예상은 반도체 제조사마다 미세하게 갈리는 공정 기술 차이나 조직 융합 문제, 인수 이후 고객사 유지 여부 등 유·무형의 비용을 고려할 때 100% 확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첨단기술의 현장인 반도체시장에선 '1+1'이 '2'가 아니라 '1 이하'가 되는 경우가 숱하다. 2013년 일본 D램업체 엘피다를 인수한 미국의 마이크론이 대표적인 사례다.



"낸드 외면하고 반도체 역사 못 쓴다"…최태원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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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M&A 시장에 정통한 최 회장도 이런 시나리오보다는 낸드플래시 시장 성장 가능성에 더 주목한 것으로 전해진다. 말 그대로 '승부수'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도 이 지점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전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이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13.2% 성장할 것으로 본다. 2024년 낸드플래시 시장 규모는 855억달러로 올해 전망치(592억달러)보다 50%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전망만 해도 낸드플래시 시장 성장률(IC인사이츠)이 27%로 D램 성장률(3%)을 크게 넘어선다.

업계 관계자는 "낸드플래시 시장을 외면한 채 반도체 시장에서 성장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고질적 편중구조 해소…"10조 투입 비싼 비용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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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내부적으로는 이번 M&A로 D램 편중 사업구조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2분기 기준 D램 매출 비중이 72%에 달하는 반면, 낸드플래시 비중은 24%에 그치는 기형적 사업구조는 그동안 줄곧 SK하이닉스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됐다. D램 가격이 출렁일 때마다 전체 수익이 들쑥날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가 이날 임직원들에게 보낸 사내 메시지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이 대표는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사업은 시작이 다소 늦어 후발주자가 갖는 약점을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며 "인텔의 기술과 생산능력을 접목해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등 고부가가치 솔루션 경쟁력을 강화한다면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급성장하고 있는 낸드 사업에서 D램 못지않은 지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텔 인수가 마무리되면 SK하이닉스의 사업 비중은 D램이 60%로 줄고 낸드플래시는 40%로 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사업 구조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딜을 주도한 실무진 사이에서는 10조3000억원이라는 투입자금을 두고 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고도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메모리반도체 생산라인을 하나 건설하는 데 10조~15조원이 들어간다. 시장 관계자는 "인텔의 중국 다롄 생산시설을 포함해 낸드플래시 사업 전반을 인수하는 가격으로 지나치지 않다는 계산이 선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도, 인텔도 윈윈…"최적 타이밍에 최선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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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빅딜은 인텔 입장에서도 최선의 선택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논평에서 "인텔이 주력 사업을 우선하는 기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메모리반도체 부문을 매각한 것이 현명한 결정"이라고 평했다.

인텔은 지난해부터 AMD 등 경쟁사에 밀려 주력 분야인 CPU 시장에서 고전하자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정리하려는 신호를 꾸준히 시장에 내비쳤다. 밥 스완 인텔 CEO(최고경영자)는 지난 4월에도 "낸드플래시 수익성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업구조 개편을 시사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1월에는 마이크론에 양사 합작 메모리반도체 개발사 지분을 15억달러에 매각했다.

인텔은 이번 딜로 확보하는 자금을 인공지능(AI), 5G(5세대 이동통신), 자율주행 기술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와 인텔이 윈윈할 수 있는 지점을 최적의 시점에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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