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하면 벌점 소멸?…대법원 가는 공정위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2020.10.2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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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사진=유선일 기자공정거래위원회/사진=유선일 기자


‘벌점이 있는 회사를 인수합병(M&A)한 기업은 벌점까지 승계받는 것인가.’

한화시스템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입찰참가자격제한 및 영업정지 요청 결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서울고법이 한화시스템의 손을 들어준 것과 관련, 최근 공정위가 대법원에 상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벌점이 승계되지 않으면 M&A가 벌점을 털어내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했는데, 서울고법은 “벌점은 승계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상급심 판결에 따라 공정위 벌점제 운영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화 손 들어준 법원...공정위 상고
(세종=뉴스1) 장수영 기자 = 지난해 7월 성경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과장(현 기업집단정책과장)이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하도급법 위반 기업에게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요청 등 제재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정위는 하도급법 위반 누산 점수가 10점이 넘은 한화시스템(주)에 대한 영업정지·입찰 참가 자격 제한을 관계 행정 기관의 장에게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2019.7.23/뉴스1(세종=뉴스1) 장수영 기자 = 지난해 7월 성경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과장(현 기업집단정책과장)이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하도급법 위반 기업에게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요청 등 제재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정위는 하도급법 위반 누산 점수가 10점이 넘은 한화시스템(주)에 대한 영업정지·입찰 참가 자격 제한을 관계 행정 기관의 장에게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2019.7.23/뉴스1
20일 공정위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지난해 공정위가 조달청 등 관계기관에 한화시스템의 영업정지 및 공공입찰 참가 제한을 요청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공정위는 하도급법 위반 기업에 벌점을 부과하는데, 최근 3년간 누적벌점이 10점을 초과하면 영업정지, 5점을 초과하면 공공입찰 참가 제한을 관계기관(조달청·국토교통부 등)에 요청한다. 당시 공정위가 집계한 한화시스템 누적벌점은 10.75점이었다.



해당 벌점은 한화시스템이 아닌, 2018년 한화시스템이 인수한 한화S&C가 받은 것이었다. 한화S&C는 2017년 7월 누적벌점 10.75점을 기록한 상태에서 석 달 후인 10월 한화S&C와 에이치솔루션으로 분할된다. 이듬해 8월 한화시스템이 한화S&C를 인수한다.

공정위는 한화S&C의 하도급 사업을 넘겨받아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한화시스템에 벌점이 승계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한화시스템은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서울고법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서울고법이 한화시스템 손을 들어준 것이다.

공정위 “부작용 우려”...법률전문가 “벌점제 개선 필요”
서울고법은 “법을 위반한 사업자는 분할 전 회사인 한화S&C고, 분할 이후 존속회사는 에이치솔루션”이라며 “분할 전 회사가 받았던 벌점이 한화시스템에 승계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벌점 부과는 공정위의 내부적 행위에 불과하다”며 “그 자체로 어떠한 법률 효과를 발생시킨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벌점 부과와 공공입찰 참가 제한 요청 등은 하도급법에 규정된 사항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이 ‘M&A를 이용한 벌점 털어내기’로 악용될 것을 우려했다. 공공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의 경우, 입찰참가 제한을 피하기 위해 서울고법 판례를 교묘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

법률전문가들은 공정위 우려를 인정하면서도, 벌점제 관련 규정이 미흡해 보완할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하도급법에 벌점 부과 등에 대한 사항이 규정됐지만, M&A 시 벌점 승계 등 구체 사항에 대해서는 시행령 등에서도 따로 정해 놓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법인의 성격을 남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기업 M&A 시 벌점을 승계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면서도 “현재로선 관련 규정이 미흡해 보인다. 영업의 동일성 등 벌점이 승계되는 기준을 법으로 정해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M&A를 하더라도 벌점을 받은 사업 부문을 실질적으로 가져가는 기업이 벌점까지 승계해야 한다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라며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이에 따라 벌점제 관련 대안을 낼 필요가 있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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