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탈취 뿌리 뽑겠다면서…손발 안맞는 정부 부처

머니투데이 세종=유선일 기자 2020.10.19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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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당정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술유용 근절대책 마련을 위한 당정협의를 열었다. /사진=이동훈 기자지난 2017년 당정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술유용 근절대책 마련을 위한 당정협의를 열었다. /사진=이동훈 기자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기술유용 근절’을 추진하고 있지만, 부처 간 이견으로 내년에도 관련 사건 조사는 공정거래위원회 내 ‘한시조직’이 맡는다. 공정위가 한시조직의 정규조직화를 요구했지만 행정안전부가 수용하지 않으면서 이 조직의 존속기간은 1년밖에 남지 않게 됐다. 업계는 존속 여부조차 불투명한 조직이 심도 있는 조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거부된 '과 승격'...존속기간 1년 남아
기술탈취 뿌리 뽑겠다면서…손발 안맞는 정부 부처


19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공정위가 ‘기술유용감시팀’의 정규화(팀을 과로 승격)와 정원(현재 7명) 3명 증원을 행안부에 요청했지만, 행안부는 정규화 없이 정원 1명만 늘리기로 했다. 이런 내용을 반영한 '2021년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공정위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을 목표로 2018년 10월 3년짜리 한시조직인 기술유용감시팀을 출범했다. 2017년 정부와 여당이 확정한 '기술유용행위 근절대책' 추진을 위한 조직이다. 공정위는 기술탈취 사건 감시·제재에 대한 사회 요구가 커지는 점을 고려, 행안부에 정규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행안부가 신중한 입장을 취하며 존속기간 만료(2021년 10월)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행안부는 내년 존속기간 만료를 앞두고 기술유용감시팀을 다시 평가한다. 이때 좋은 평가를 내리면 팀 유지 혹은 과 승격까지도 가능하지만, 반대의 경우 조직이 사라질 수 있다.

공정위가 불안한 이유는 지난해 ‘아픈 경험’을 겪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2017년 대기업 사건을 전담하는 기업집단국을 신설했는데, 무난하게 정규 조직이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지난해 행안부가 “2년 더 지켜보자”고 판단해 지금도 한시조직으로 운영하고 있다. 기술유용감시팀과 마찬가지로 기업집단국의 정규화 여부도 내년 결론이 난다.

이번 사안 관련 행안부 관계자는 “기술유용감시팀의 업무성과가 없다든가, 공정위가 인원을 과다하게 요구한 것은 아니다”며 “내년 존속기간 만료 시기가 됐을 때 평가를 거쳐 정규화 여부를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공정위와 협의해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난이도’ 기술유용 사건...한시조직으론 한계
지난 2018년 최무진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국장(현 경쟁정책국장)이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하도급업체 기술자료를 유용한 두산인프라코어 제재'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18.7.23/뉴스1지난 2018년 최무진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국장(현 경쟁정책국장)이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하도급업체 기술자료를 유용한 두산인프라코어 제재'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18.7.23/뉴스1
업계는 존속 여부가 불투명한 기술유용감시팀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다. 짧게는 수개월, 길면 수년에 걸쳐 이뤄지는 공정위 조사를 '1년 남은' 한시조직이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 특히 기술유용은 공정위 사건 중에서도 ‘고난이도’에 속해 처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위법성을 입증하기도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기술을 빼앗겼다는 사실조차 뒤늦게 아는 경우가 많아 법 위반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확보가 어렵다”며 “문제가 불거지면 대기업이 피해 중소기업을 회유해 공정위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공정위는 내년 평가 때에는 기술유용감시팀의 정규화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해 적어도 업무성과 부문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

지난 2년 동안 공정위가 처리한 기술유용 사건은 △두산인프라코어(과징금 3억7900만원, 고발) △아너스(과징금 5억원, 고발) △볼보그룹코리아(과징금 2000만원) △현대건설기계·현대중공업(과징금 4억3100만원, 고발) △현대중공업(과징금 9억7000만원) 등이 있다.

지난 2010년 법으로 기술유용이 금지된 이후 6년 동안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이 1개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된다. 공정위는 현재도 다수 기술유용 사건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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