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 북한 도시의 광장을 보며

뉴스1 제공 2020.10.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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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선동' 기능하는 도시 내 대규모 광장, 사회주의 도시의 특성
평양종합병원 건설로 '중심광장' 계획에 중요 변화 포착

[편집자주][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뉴스1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뉴스1


(서울=뉴스1)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프라우드 건축사무소 공동 소장 = 일주일 전 북한에서 열병식이 거행됐다. 노동당 창건 75주년에 맞춰 대규모로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예상보다는 검소(?)하게 진행되었다는 평이다.



열병식이 최초로 0시에 시작됐다는 점과 자극적인 무기가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고 여러 해석들이 덧붙여지고 있다. 그중에는 마치 신형 무기의 식별을 힘들게 하기 위해 한밤중에 열병식을 진행했다는 해석도 보인다.

정부의 모든 행사가 미국이나 일본에 보여주기 위함보다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이듯, 북한의 행사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신형 무기를 식별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한밤중의 열병식을 진행한 것이 아닌, 그저 주민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가 있을는지 모른다.



히틀러의 나치당은 1930년대에 '빛의 대성당'이라 불리는 효과를 이용한 대규모 집회를 종종 열었다. 건축가였던 알베르트 슈페어가 디자인했다고 알려진 이 152개의 빛의 기둥들은 한밤중에 어마어마한 장관을 연출하며 나치의 선전선동 효과를 극대화했다.

배트맨 영화에서나 보던 서치라이트가 152개씩이나 준비되어 하나의 빛의 기둥을 만들어 낸다니 그만한 장관이 또 어디 있었겠는가. 얼마 전 북한의 열병식에서도 수많은 LED조명과 불꽃놀이가 사용됐다고 한다.

아마도 올림픽 개/폐막식 등과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일 수도 있겠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이 밤에 진행되는 것이 선수들 얼굴을 식별하기 힘들게 하기 위함은 아니었을테니.


열병식처럼 북한에서 군사 퍼레이드와 같은 대규모 국가 차원의 집회가 있을 때나 우리는 김일성광장을 볼 수 있다. 때문에 우리에게 있어서 김일성광장은 꽤나 적대적인 공간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의 군사 무기들이 이 공간을 통해 선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김일성광장이 북한의 독재자들이 만들어낸 비정상적 공간이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꼭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하는 팩트도 있다. 만약 북한에만 이러한 상징적인 도시 광장이 존재한다고 하면, 이것은 북한만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주의 도시들에서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하면 보편성을 갖게 된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10일 보도한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열병식 사진.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10일 보도한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열병식 사진.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email protected]
그리고 여러 사회주의 도시들은 이러한 대규모 광장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했다. 물론 사회주의가 예로부터 광장을 중요시 생각하던 유럽에서 출발한 이념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사회주의 도시들에서도 자연스럽게 광장을 자신들의 도시조직 일부로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기에 새로운 기능을 입힌다.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인민의 계몽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여러 종류의 대규모 집회와 연설 등이 가능한 공간이 필요했다. 당시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이념을 전파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여기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이념을 전파하고 선전하는 과정을 치렀던 것이다.

이는 동독의 도시계획 이론에서도 잘 나타난다. 1950년대 동독의 도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16개의 도시계획 원칙이 발표됐는데, 그중 하나가 도시 내에 광장을 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앞서 말한 것과 같다.

사회주의 도시에서 인식하는 광장의 개념이 이러했기 때문에, 북한에서도 굉장히 초창기부터 광장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실제 김일성광장은 1950년대 전후 복구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복구된 공간이기도 하며, 이를 통해 평양은 기존 일제 식민지 시절의 도시조직과는 또 다른 형태의 도시조직으로 발달한다.

일제시대에는 대화정(야마토마치)과 같은 거리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했지만 사회주의 발달 시기의 평양에서는 김일성광장과 같은 상징적 광장을 중심으로 전후 복구 계획이 수립됐다.

실제로 북한의 모든 도시에서 규모는 다르지만 이러한 '중심광장'이 매우 잘 조성돼 있다. 때로는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과 함께 배치되기도 하고, 대극장 같은 인민문화시설 등과 함께 배치가 된다. 중심광장은 각 도시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으며 최근 발표되는 개발계획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평양의 경우, 전후 복구과정에서 김일성광장을 비롯해 7~8개의 중심광장을 계획했고, 이 중에는 1980년대 개발되기 시작한 류경호텔과 주체사상탑이 있는 위치도 있었다.

지금의 평양이 1950년대 전후 복구 계획도대로 개발되진 않았지만 중심광장 등은 초기에 계획했던 구성을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다. 노동당 창건 기념탑이 있는 곳도 마찬가지다. 이 곳 역시 전후 복구 계획도에서 중요한 광장으로 설정된 곳이며 1990년대에 탑을 세움으로써 대동강 맞은편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과 함께 중요한 도시축을 설정한 곳이다.

그런데 이곳이 변하기 시작했다. 올해 평양종합병원 건설이 시작되면서다. 물론 평양의 가장 상징적인 공간은 김일성광장이겠지만, 오래전부터 중심광장으로 계획됐던 곳을 다른 무언가로 개발한다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이러한 개발을 추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새로 건설하는 건물이 병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곳을 살림집 등으로 개발한다고 했으면 그 의미가 달랐을 것이다. 이 광장을 여전히 모든 인민들을 위한 종합병원으로 치환한다는 것은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 보인다.

더 이상 이념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인민들의 실리를 위한 도시로 바꾸어나가겠다고 하는 의지일지도 모른다. 확대해석일 수 있지만, 만수대에서 당 창건 기념탑이 보이는 압도적인 광경을 20층짜리 종합병원으로 가릴 때에는 이러한 정치적 효과를 고려하지 않았을까. 사실 평양에 종합병원 하나 지을 땅이 없을 리 만무하지 않는가.

이 종합병원이 왜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 중의 하나에, 게다가 만수대의 김일성·김정일 부자 동상과 노동당 창건 기념탐 사이에 놓여야 했는지 결정의 과정이 궁금할 뿐이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17일 진행된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 참석한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월17일 진행된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 참석한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email protected]
사실 도시의 광장은 예로부터 매우 중요한 정치·사회적 공간이었다. 그리스 민주주의의 태동은 광장의 원형이라고 하는 아고라에서부터 시작되었고, 프랑스혁명은 콩코드 광장에서 루이 16세를 처형하며 마무리됐다.

동양에는 광장 문화가 없었지만, 근·현대화 도시화 과정에서 서양의 도시공간이 도입됐다. 서울에는 대표적으로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이 있다.

이들 광장이 생겨난 배경은 제각기지만, 이들 공간이 함축하고 있는 정치·사회적 잠재성은 어마어마하다. 한국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뤄진 최초의 대통령 탄핵 역시 이 공간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야기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사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도시의 대규모 광장에 대해 조금은 우려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많이 잊혔지만(혹은 감춰졌지만) 천안문 사태로 불리는 중국의 민주화운동 역시 천안문 광장에서 촉발되지 않았는가.

이렇게 보면 광장은 양날의 검과 같다. 집권세력의 권력이 강할 때는 광장을 통해 더욱더 강력한 통치를 가능케 하지만, 권력이 역사와 민중을 거스를 때에는 광장을 통해 처단된다는 것이 역사를 통해 증명됐다.

앞으로 수많은 북한의 도시들에 존재하는 광장들이 어떠한 정치·사회적 역할을 할 것인가는 두고 보아야 할 문제다. 언제나 열병식을 위한 공간으로만 남아있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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