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업에 지배권 의미없어…합병하지 말걸" 이재용의 후회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20.10.21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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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미리보는 이재용 '삼바' 재판]② 지배력 강화 의도 여부도 쟁점

이재용 부회장. /사진=김휘선 기자이재용 부회장. /사진=김휘선 기자


"저는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5월 대국민사과에서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며 이 같이 밝혔다. 진정성 있는 사과였다. 이 부회장 본인이 경영권을 승계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아직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입에 담기 어려운 사안이었을 것이다.

5개월 전 대국민사과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최근 기소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 때문이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승계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수뇌부, 미래전략실(미전실)을 움직여 갖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승계를 추진하고 있었는지는 국정농단 사건에서도 오랜 시간에 걸쳐 다뤄졌던 주제다.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작성된 이 부회장의 조서를 근거로 이번 재판에서 어떤 입장을 보일지 예측해봤다.



"이건희 회장의 후계자가 맞습니까" "제 입장에서 말하기가…"
일단 주변을 살펴보면 경영권승계는 전혀 없었다는 입장을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전실 팀장을 맡았던 김종중 사장은 특검 조사에서 "1996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사건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이었다는 입장인가"라는 질문에 "그것은 맞다"고 대답했다.

특검의 질문 의도는 2015년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경영권승계 작업의 일환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 사장은 "경영권승계는 2008~09년쯤 이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오면서 적법한 것으로 결론이 난 것"이라며 "사실상 그때 실질적인 경영권승계가 완료됐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요약하면 경영권승계 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래 전에 끝난 일이므로 삼성 합병과 연결지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부회장의 입장은 어떨까. 이 부회장은 2017년 1월12일 특검 조사에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후계자가 맞느냐"는 질문에 "제 입장에서 이야기하기 힘든 질문"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특검에서 경영권승계를 위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이 부회장은 "각 회사가 잘 운영되고 제가 임직원들한테 신뢰를 받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게 기업인으로서 자리를 잡는 것"이라며 "삼성 같이 큰 기업에 지배권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본인에게 가장 유리한 비율로 합병비율(1:0.35)이 맞춰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부회장은 "합병비율에 대한 논란은 있었지만 합병비율은 임의로 정할 수 없다"며 "결과론이지만 합병이 성사되지 않았다면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는 더 떨어졌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어 특검에서 경영권승계 의혹에 대한 정치권과 학계의 비판이 높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묻자 이 부회장은 "이렇게 오해를 살 거면 합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앞으로 열심히 해서 이 논란을 종식시키겠다"고 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홍봉진 기자이재용 부회장이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하는 모습./ 사진=홍봉진 기자

"경영 잘해야 외국 투기자본에 안 당해…주주들 인정 받고 싶다"
조사 말미에 "삼성그룹 총수로서 책임이 있다고 느끼느냐"고 특검이 묻자 이 부회장은 "이번 일로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킨 점 송구한 마음"이라며 "앞으로 기업인으로서 본분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제 소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함께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린 간부들에 대해서는 "다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돼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책임을 미룰 생각은 없다. 책임 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그해 2월13일 조사에서도 이 부회장은 경영권승계 과정을 꾸준히 밟아온 것 아니냐는 특검 질문에 "제 관심은 각 회사들을 잘 운영해 성장시키고, 꾸준히 혁신시키는 데 있다"며 부인했다. 특히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의 등장으로 시장이 흔들렸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앞으로 회사 경영을 잘해서 이익을 많이 내지 않으면 외국 투기자본에 당할 수 있을 것 같아 경영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며 "하지만 경영권을 방어할 제도적 장치 도입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뒤로 이어진 조사에서도 이 부회장은 "저는 항상 각 계열사들이 혁신을 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는 것에 제 모든 노력과 시간을 들이고 있다", "저희 임직원들, 고객, 사업파트너 및 주주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지 계열사 지분을 조금더 갖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저의 소신"이라며 경영권승계라는 주제는 관심 밖이었다고 진술했다.

이 부회장은 오는 22일부터 시작되는 삼성바이오 사건 재판에서도 같은 입장을 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승계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 골드만삭스, 워렌 버핏 등 해외세력까지 끌어들이려 했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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