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살기'부터 '학캉스'까지, 호텔 패러다임 바뀐다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2020.10.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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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장기화에 인바운드 수요 끊기자 입지·호텔 특성 고려한 호캉스 패키지 봇물

/사진=파르나스호텔/사진=파르나스호텔


코로나19(COVID-19) 확산 방지를 위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움츠러들었던 호텔업계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호텔 수요가 최고조에 달하는 연말을 앞두고 각종 식음·부대시설의 영업을 재개하면서 내국인 고객 공략을 위한 투숙 상품 개발에 나섰다. 입지·호텔 특성에 맞춰 '한달 살기'부터 '학캉스(학부모+호캉스)'까지 패키지 다양화를 꾀하며 호캉스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도심 특급호텔들이 호캉스 수요를 세분화해 맞춤 패키지를 만드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여행) 비즈니스·여행 수요가 막히며 내국인 투숙객이 활로로 떠올랐는데, 전반적으로 여가 심리가 침체되며 단순한 호캉스 상품으론 고객을 이끌어낼 수 없어서다.



호텔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상반기부터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며 나온 대실(데이유즈) 패키지가 대표적이다. 콧대 높던 자존심을 버리고 모텔과 특급호텔을 구분 짓던 대실 상품을 재텔(재택+호텔)로 바꿔 내놨다. 코로나 사태로 오갈 곳 없어진 직장인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잠을 자야하는 장소'란 기존의 틀을 깨고 '일상 속 언제든 들르는 공간'으로 변화를 꾀한 것이다.

명동에서 한 달 150만원에 사세요
/사진=롯데호텔/사진=롯데호텔
데이유즈 패키지는 '집콕'으로 답답함을 느낀 직장인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투숙 기간을 늘려 호텔을 내 집처럼 만드는 장기투숙 상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하는 시간만 머물 것이 아니라 회사와 가까운 호텔에서 장기간 호캉스를 즐기며 거리두기 하라는 취지다. 호텔의 기능을 레지던스처럼 바꾸는 것이다.



서울 명동에 위치한 이비스 앰배서더 서울 명동은 한 달짜리 장기투숙 패키지를 내놨다. 주요 은행과 기업 본사 등이 밀집한 시청과 광화문, 남산 인근에 위치한 이점을 살린 것이다. 정병우 호텔 총지배인은 "워라밸을 넘어 삶과 일이 통합되는 '워라인(Work, Life Intergration)'이 화두인 시대"라며 "일과 생활이 모두 가능하면서 독립적이고 안전한 투숙을 바라는 직장인과 비즈니스 고객 니즈에 부합하기 위해 준비한 프로모션"이라고 말했다.

이비스 명동에 따르면 이번 패키지의 가격은 150만원이다. 30일간 이용하니 하루 5만원인 셈이다. 이 기간 동안 호텔 피트니스와 사우나, 주차 서비스가 무료다. 코인 세탁실 세제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호텔 레스토랑 이용 시 2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주 2회 침구류 교체 및 객실 클리닝 서비스가 제공되고 무료 짐 보관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취사가 불가능하단 단점을 빼면 거주성과 가격 측면에서 상당히 합리적이란 평가다.

30일 장기투숙 레지던스 상품은 코로나 위기 타개를 위한 자구책의 일환이다. 평소 이비스 명동은 일본·중국·동남아에서 온 개별 여행객과 업무 차 찾은 비즈니스 여행객으로 객실점유율(OCC)가 높지만 코로나19 이후 인바운드가 끊기며 투숙률이 급감했다. 마냥 객실을 놀리는 대신 호텔 일부를 레지던스화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 이 같은 프라이빗과 프리미엄에 가격 합리성을 충족하는 상품을 내놓게 된 것이다.


비즈니스맨 대신 학부모 노린다
이비스 앰배서더 명동이 한 달 장기투숙 패키지를 150만원에 판매한다. /사진=앰배서더 호텔이비스 앰배서더 명동이 한 달 장기투숙 패키지를 150만원에 판매한다. /사진=앰배서더 호텔
강남 권역에 위치한 호텔들은 수능을 바라본다. 통상 삼성동과 역삼동 등에 위치한 호텔들은 전형적으로 비즈니스 수요에 집중한다. 코엑스를 중심으로 기업행사는 물론 글로벌 컨벤션이 자주 열려 항상 넥타이를 맨 투숙객이 끊이지 않는다. 강남에만 국내 유수의 비즈니스 브랜드 신라스테이가 4개나 몰려 있는 이유다. 지난해 이맘때에도 세계변호사협회 총회, 방탄소년단(BTS) 콘서트에 따른 해외팬 입국으로 이 지역 호텔이 붐볐다.

하지만 올해는 수능 시즌이 대목이란 설명이다. 대치동 등 수능을 전후해 입시설명회가 열리고 대학별 시험이 치러지는 시기에 맞춰 지방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이 서울로 올라오는 수요가 급증하 것이란 전망에서다. 이비스 스타일 강남 관계자는 "학부모들이 입시설명회 등을 이유로 단체로 호텔 객실을 장기간 잡고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한 만큼 관련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상품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강남의 경우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공부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데이유즈 상품을 적극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내국인 매출이 절대적이 된 상황에서 단순히 호캉스에서 벗어나 고객 특성에 맞춰 세분화한 상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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