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미비'로 지원금 거절, 또 거절…한국형 'RTI' 급물살

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2020.10.1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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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강종민 기자 = 김대지 국세청장이 12일 정부세종2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앞서 직원과 준비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0.10.12.    photo@newsis.com[세종=뉴시스]강종민 기자 = 김대지 국세청장이 12일 정부세종2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에 대한 국정감사에 앞서 직원과 준비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0.10.12. [email protected]




# 정부는 지난 5월 ‘1차 긴급고용안정지원금’(최대 15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COVID-19)로 소득·매출이 감소했으나 고용보험 보호를 받지 못한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등을 위해서다. 약 1300명의 기간제 근로자를 채용하며 ‘긴급 지원’이라는 목표 달성에 만전을 기했다.






그러나 2주 내 재원금 지급이 결정된 이들은 전체 11.2%에 불과했다. 한달 내 결정된 이들도 42%에 그쳤다. 결정 후 실제 지급까지 1~2주가 소요됐다. 상당 기간 당사자들은 답답함과 생계 우려를 호소했다.

이들은 바쁜 일상에도 증빙 서류들을 모아 제출했지만 자료 미비 등 이유로 신청자 중 80%의 심사가 지연됐다. 뒤늦게 고용노동부 본부와 지방관서 직원, 타부처 수습 및 임용예정 사무관까지 투입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한국형 ‘RTI’(Real Time Information·실시간 소득 파악시스템) 도입이 급물살을 탄다. 여야가 한 목소리로 장기간 묵힌 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김대지 국세청장 역시 종합 국정감사 전까지 대안을 담은 의견서 제출을 약속하면서 기대감을 높인다.

시대에 뒤처진 현행 소득파악 시스템이 국민 불편을 가중한다는 목소리를 고려했다. 근로장려금 등 신청을 위해 수십장의 서류를 들고 공무원들과 ‘씨름’ 해본 이들은 안다.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12일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김대지 국세청장에게 소득파악 체계 개혁을 촉구했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포문을 열자 같은당 홍익표·고용진 의원과 서병수·유경준 국민의힘이 가세해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8월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열린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8월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열린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한국형 RTI 있었다면, 지원금 지연사태 없었다
여야 의원들이 강조한 것은 국민 편익이다. 한국형 RTI가 일찌감치 구축됐다면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지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통상 직장인은 사업주의 원천징수를 통해 소득이 집계된다. 반면 해당 지원금 주요 대상이었던 프리랜서나 원천징수의무자(사업주)가 없는 특수고용직 상당수는 소득파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정확도도 문제다. 국내의 경우 소득세는 연간 1회, 부가가치세는 반기당 1회, 취약계층이 몰린 일용근로자에 대한 소득 지급명세서는 분기당 1회 신고한다. 실시간 소득파악이 불가능한 탓에 코로나19 전후 업종별 소득 변화를 추정할 뿐이다. 결국 신청자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고용진 의원은 “(긴급고용안전지원금 지연 사태의) 이유는 당연히 소득을 월 단위로 파악하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라며 “유사한 위기가 발생하면 이런 상황이 또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 / 사진=김휘선 기자이광재 민주당 의원. / 사진=김휘선 기자
영국은 'RTI', 한국은 '100문100답'
영국 국세청(HMRC)의 RTI 제도가 대안으로 지목됐다. HMRC가 잦은 이직과 플랫폼 노동자 확대 등 노동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13년 도입한 제도다. 고용주가 주기와 관계 없이 근로자에 급여를 지급할 때마다 소득과 일한 기간, 고용주의 기타 소득원 등 세액계산을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를 FPS(Full Payment Submission)에 기록해 HMRC에 제출한다.

HMRC는 해당 정보를 근거로 개별 납세자에 납세코드를 부여한다. 사용자와 인적공제, 연간 누적소득, 부대 수입, 미납세액, 부부세액 공제, 적용세율 등이 포함돼 월별 포괄적이고 정확한 세액계산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이광재 의원은 “영국은 이 시스템을 통해 복지국가의 기초를 닦는다. 우리 국세청 홈택스에 ‘100문100답’이 있는데 너무 어렵다”며 “RTI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해야 빠른 속도로 국민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경준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8월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열린 김대지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스1유경준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8월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열린 김대지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스1
전국민 고용보험? 소득파악도 못하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전국민 고용보험’ 제도 안착을 위해서도 소득파악 체계 개편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통계청의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 고용형태별 부가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취업자 2736만명 중 1017만명(37.2%)가 고용보험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비임금근로자 680만명(24.9%)과 5인 미만 농림어업, 65세 이상, 주 15시간 단기근로자 등 고용보험 적용제외 근로자 337만명(12.3%) 등이다. 이들은 사실상 소득파악이 불가능해 적정 수준의 고용보험을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산재보험의 폐해를 답습할 우려가 높다. 정부는 특수고용직의 실제 소득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실제 소득과 관계 없이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한 직종별 보수액에 보험료율을 곱해 산재 보험료를 산정한다.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가입률이 20%에 못 미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유경준 의원은 “준비도 안 됐는데 일을 벌이는 것 같다”며 “특수고용직을 (고용보험에) 가입시킨다는데 소득파악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원천징수, 연말정산을 하는데 파악되는 (소득) 정도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남은 과제는 '납세 협력비용'…'전자영수증' 제도 주목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 납세 협력비용이 대표적이다. 세금을 신고·납부하는 과정에서 사업주나 근로자가 부담하는 세금 외 경제적·시간적 제반 비용을 말한다. 신고 주기를 단축하면 납세 협력비용이 대폭 늘어날 것이란 우려다.

고용진 의원은 “홈택스는 물론 각 사업장의 POS 등 단말기 소프트웨어를 개선해 결제 시 품목정보가 포함된 영수증이 국세청과 거래 당사자에게 바로 전달되는 방식의 전자 영수증 제도가 필요하다”며 “증빙자료 보관, 장부 작성 및 신고, 납부 단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기재부 조세정책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이 질의를 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지난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기재부 조세정책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이 질의를 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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